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 풍의’ 피아노 트리오
작곡가로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던 라흐마니노프는 13세 무렵 이미 안톤 아렌스키의 화성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러시아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젊은 날에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열망을 지닌 채, 끝없이 선배 작곡가들을 모방하면서 가슴 아픈 헌정을 바쳤다.
라흐마니노프는 선배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을 듣고 바로 작곡을 시작해서 단 6주 만에 피아노 트리오(Piano Trio, No.2, D minor, Op.9, 1893)를 완성했다. 이것은 누가 보나 루빈스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차이코프스키가 쓴 피아노 트리오,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었다.
작곡 이듬해 초연을 보았지만, 불과 20세 청년의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까지 여러 번에 걸쳐 이 작품을 고치고 손보게 되었는데, 정식 악보출판은 1950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그 동안 이루어졌던 자잘한 개정은 무시하고 1917년 판, 세 번째 버전을 완성본으로 본다.
3악장 구조를 지닌 이 작품에서 심금을 울리는 대목은 역시 엘레지 풍의 1악장이다. 오랜 개작을 거쳐 청년 라흐마니노프가 지녔음직한 소비적인 감상성이나 작곡 기법상의 미숙함은 완전히 걸러지고, 이슬처럼 순수하고 영롱한 눈물 한 방울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