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니 …
갈라 45,1-6; 루카 11,37-41 /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2020.10.13.; 이기우 신부
어제 성찬경의 시 <부활>을 인용하면서 “세상에 의인이 가득 찰
그 날이 바로 땅에 하늘나라가 세워지는 때”라던 시인의 통찰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의인이 가득 차기는커녕 적어 보입니다.
악인들이 설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악인들에 빌붙어 사는 속물(俗物)들이 더 많아 보이는 까닭입니다.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일컬어 속물이라고
낮추어 부르거니와, 이들은 부족한 교양과 좁은 식견과 세속적 욕심을 감추려고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는 데 익숙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형식과 절차를 지나치게 따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snob’이라는 말이 속물에 해당합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는 자를 일컫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속물들이 주류를 구성하고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섬김의 리더십으로 기여해야 할 사회의 공동선이 훼손되기 때문에 세상이 불공정해지고
약자들이 불행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맞닥뜨린 바리사이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그분은,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고 평하셨습니다.
그분의 공생활 중에 사사건건 그들과 부딪히자
어떤 바리사이가 그분을 식사에 초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점점 더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관계를 좀 개선해 보려고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준사막 지형의 스탭 기후 지역이라서 먼지가 많이 날리니까,
외출했다가 귀가하면 손과 발을 씻는 것이 위생 상으로도
필요했지만 그들은 이 관행에 종교적 의미까지 덧붙였습니다.
죄를 씻는 이른바 정결 예식으로 간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자선을 베푸는 마음이 아니라 탐욕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아무리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 한들 그런 형식적 절차가 성에 찰 리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식사 자리에서도 먼저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흉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이 속물적 관행은 바리사이들에게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 듯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바리사이 출신이지만 그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려는 이방인들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회개를 강조하면서, 형식적 할례를 폐지했습니다.
소아시아 중부 내륙에 위치한 갈라티아 지방에서 선교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랬더니 그곳 디아스포라에 살던 바리사이 출신들이
소문을 냈고 이것이 예루살렘에 머물던 사도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던 동안에
기성 사도들이 보낸 자들이 갈라티아 지방에 세워진 공동체들의 신자들에게
사도 바오로가 폐지한 할례를 주장하고 다님으로써 일대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감옥에서 전해 들은 바오로가 부랴부랴 편지를 써 보낸 것이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사실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962년에 소설가 전광용은 ‘꺼삐딴 리’를 잡지 <사상계>에 발표했습니다.
‘꺼삐딴’은 영어 ‘캡틴’(captain)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카피탄’(Капитан)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주인공인 이인국 박사는 시류에 영합하기로 이름난 작자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잠꼬대를 일본어로 할 정도로 열성 친일이었다가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친일파로 몰려서 감옥에 갇히지만 이 감옥의 의무관이었던
스텐코프 소령을 잘 치료해 준 덕분에 감옥살이에서 풀려나게 된 것은 물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소련군 소령이 붙여준 별명이 ‘꺼삐딴 리’였습니다.
그 후 친소 노선을 걷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청진기 하나만을 들고
남한으로 월남했고 이후에는 미국 대사관으로 파견되어 와 있던 브라운씨에게
접근하여 딸을 미국으로 유학보낼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4.19 혁명
미국에서 귀국한 후 그가 어떤 처신을 했을지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으로 넘겼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딸도 미국으로 유학간 김에
반드시 미국인 교수와 결혼하려고 노심초사합니다.
나라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일제 치하에서나 소련 군정 치하에서나
또 미국이 사실상 상전 노릇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기만의 영달을 꾀하는
카멜레온 같은 기회주의자 꺼삐딴 리는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료인들 대부분이 과로와 격무로 지쳐가는 이즈음,
병원 문을 닫고 환자를 돌려보내면서 파업에 돌입한 의사들과 이에 동조하여
의사국가고시도 응시하기를 거절했던 의대 졸업반 학생들도 생각나고,
일류 의대에 자녀를 보내려고 고액 과외를 시키다가 집안을 지옥으로 풍지박산
내버린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도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의 꺼삐딴 리들을 생각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