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7년전인 1996년 1월 다시 미국에 갔을 때 썼었던 글을 발견하게 되어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특히, 고국을 떠나 먼 이국 땅에서 공부하고 있는 예수회의 후배 신부님, 수사님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드리며 나눕니다
3년 반 만에 다시 못다한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보스톤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갈아타는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연착이 되었다. 기계 고장이라고 한다. 무려 9시간만에 뜬 비행기는 다시 폭풍 때문에 착륙을 하지 못하고 두어 시간 하늘을 선회하다가 가까스로 보스톤에 내렸을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폭풍은 많이 가라앉았다고 하는데도 겨울비가 거칠게 내리고 있었다. "아, 여기 다시 돌아왔구나, 비가 나를 마중하고 있구나." 악천후에다가 지칠대로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몇년 만에 이곳 보스톤에 돌아온 것이 감회가 새로웠고 가벼운 흥분마저 일었다. 전에 이곳을 떠날 즈음은 몹시도 고국이 그리웠고 돌아가고 싶은 향수에 젖어 매일 귀거래사를 읊었었다.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자 여장도 풀지 않은채 먼저 챨스 강으로 달려갔다. 챨스강은 보스톤과 캠브리지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그리 크지 않은 아름다운 강이다. 바다가 가까워 갈매기가 강을 거슬러 찾아든다. 얼어붙어 있을 줄로 예상했던 강은 아침 햇살에 비친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물새들이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유희를 즐기고 있고, 강뒤에 있는 자작나무 숲은 흰가지를 하늘로 올리고 춤추듯 가볍게 떨고 있었다. 강물에 두손을 담구니 물컹 이곳 캠브리지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라고 읊었던 어떤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왔다. 고국에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거의 잊고 살았지만, 강물에 손을 담구니 이곳 캠브리지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또한 강물이며 나무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전에 5년 동안 이곳 캠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었다.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거나 고국이 그리울 때면, 자주 이곳 챨스 강으로 나왔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기도 하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었다. 강가에 앉아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고 그 이름들을 강물에 띄워보내는 놀이(?)를 즐겨했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는 하나로 이어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4년 전에 그렇게 그리던 고국에 돌아갔었고, 그 사이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내야 했고, 이제 다시 이곳 이국 땅에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흐르는 챨스 강의 물결을 바라보니 이제는 이곳이 낯선 이국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난 곳 만은 아니다. 거기 추억이 있는 곳이면, 거기 그리움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가 그리워해야 하는 고향은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곳,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돌아간 그곳이리라. 공산 루마니아에서 14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리챠드 범브란트라는 목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산 디에고 동물원에 있는 알라스카의 새는 언제나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우리도 우리의 진짜 고향인 하늘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강가에 산책을 나왔던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이지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정말 언제 비바람이 몰아쳤느냐는 듯 맑게 갠 아침이었다. 폭풍이 걷히고 눈부신 아침이 찾아오듯이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리라. 때로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고 느껴진다하더라도 알라스카의 새가 북쪽을 바라보듯 우리도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힘차게 살아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