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한글 공원을 찾아
올해 장마는 뒤늦게 칠월 첫날 시작되어 비다운 비는 한 차례만 내리고 마른장마로 끝을 맞는다. 우리 지역은 예년 장마에 비해 강수량이 엄청 부족해 농사나 생활용수 공급에 심각한 물 부족이 예상된다. 태풍이라도 내습해 비를 흠뻑 뿌려줬으면 한다. 앞으로 남은 여름날 더욱 기승을 부릴 폭염과 열대야에 건강을 잘 지켜 더위를 지혜롭게 넘길 일이 모두에 안겨진 공통 과제다.
유월 하순 장마가 오길 기다리다 예년과 달리 칠월에 들어 시작되었다. 자연학교 학생에게는 강수는 야외 수업에 지장을 받는지라 비가 오는 날이면 도서관에 머물 날이 많을 걸로 예상했는데 그러하지 않아도 되었다. 비가 안 온 관계로 한 가지 못다 한 숙제가 있었는데 고향을 찾아가 큰형님을 뵙고 문안 인사를 여쭈지 못해서 차일피일 미뤘다. 벼르고 벼른 비는 오지 않는다.
칠월 하순 일요일은 미뤄둔 고향 방문하는 날이다. 팔순 고령에 지병을 안고 농사일에 수고가 많은 형님 문안이다. 이와 함께 진주 근교 사는 여동생도 친정으로 오게 해 얼굴을 같이 보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 예기치 못한 득병으로 수도권으로 오르내리며 병마를 떨쳐 내려고 고생이 많다. 형제와 안부를 여쭈고 산골 식당에서 점심을 한 끼 나누려고 일전 그곳에 예약을 해두었다.
형제와 안부를 나누는 일정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 부여가 한 가지 더 보태졌다. 이달 초순 고향 행정 관서에서는 ‘한글 공원’을 조성해 개장이 된 보도 기사를 접했다. 동향 시조 시인 김복근 선배가 이끄는 국립 국어사전 박물관 건립과도 맞물린 사업이다. 읍내 서동 행정 타운 한글 공원에는 우리나라 근대사 의령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세 인물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의령 읍내 한글 공원을 먼저 둘러보고 고향집을 찾으려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올여름 여름 숲에서 찾아내 말리는 영지버섯을 두 봉지 챙겼다. 큰형님과 진주 매제가 약차로 달여 먹을 건재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의령행 첫차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함안을 지난 군북 나들목으로 내려 국도를 따라 남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다 솥바위를 바라봤다.
읍내로 드니 남산 기슭 의령인의 혼이 깃든 의병탑이 보였다. 의령 터미널에 닿아 바로 인근인 한글공원을 찾아갔다. 훈민정음과 관련된 몇 가지 조형물에 이어 자랑스러운 세 분 행적을 새긴 빗돌을 대면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고향에서 상당한 재력가였던 이우식 선생이 먼저다. 비밀리에 상해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백산 안희제와 궤적을 같이한 애국지사 남저 선생이다.
동상으로 세운 분은 남저 외 이극로와 안호상 박사도 나란히 앉아 계셨다. 두 분은 암울했던 시기 독일로 건너가 경제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저와 함께 국어사전을 편찬하려던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 옥고를 치뤘다. 이극로 박사는 남북 협상단 김구 선생을 따라 평양을 방문 그곳에 머물러 북한 어문 정책을 이끌었다. 안호상은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의령에는 삼성을 이끄는 이재용 조부 이병철은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뒤를 이은 기업가로 사재 1조 7천여 억 윈을 출연 관정 장학재단을 세운 고 이종환도 있다. 고향에서 이 두 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선각자가 이우식과 이극로와 안호상 박사다. 우리 말과 글이 일시 사라진 일제 강점기 한글을 온전히 지키려 애쓰신 분 세 분 동상 앞에 서니 선열이 자랑스웠다.
한글 공원에서 십 리 떨어진 고향집을 찾아 큰형님과 진주 여동생 내외를 만나 산골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귀로에 ‘읍내 한글 공원’을 남겼다. “의령읍 행정 타운 근대사 향토 인물 / 이우식 이극로에 안호상 동상까지 / 해방 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기린다 // 암울한 식민 시대 우리말 지키려고 / 사전을 편찬하다 옥살이 마다않은 / 뜨거운 나라 사랑에 눈시울을 적셨네” 26.07.26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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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인의 혼이 깃든 의병탑...
45년 전이었을까..
6학년 여학생을 데리고
의령 의병탑 아래 <백일장>에 참가했었지.
그때 자네가 옆에서 좋은 말도 해주었던
그날 기억하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