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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도행전 RSG 전람집회를 마치고 1장부터 28장까지 저 자신을 위해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을 앞에 둡니다. 행15장의 글은
2000년 8월에 쓴 글입니다.
사도행전 15장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들를 위해 봉사집회를 하게됩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봉사집회의 본이 있는데 사도행전 15장 이더라구요.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하는 안디옥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회심한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므로
적지않은 다툼과 변론이 생겼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외적 규례를 실행하고/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게되고/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또 여러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과 장로들의
이른바 국제 장로동역자 집회가 열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간것은
그곳이 하나님의 움직이심의 본부여서도 아니고, 통제하는 우두머리
교회여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이 할례에 관한 이단적 교훈이 나온
근거지이므로 근원을 근절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봉사 집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 바리새인이었지만 이제 믿는이가 된 한 무리가 일어나 왜 할례를
주어야 하는지 말했습니다. 교회는 누구의 말도 말살하지 않습니다.
미약한 말이나 무관한 말 같더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의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교회는 두아디라와 같은
독재주의가 아니며, 라오디게아와 같은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한참후 베드로가 일어나 성령께서 어떻게 이방가운데 역사하여 은혜로
구원얻은것에 대해 자기 체험을 말합니다. 그는 많은 의견에
전혀 만져지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다음 바나바에게 안디옥에서 상황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들을
말하여 하나님의 임재, 곧 하나님의 나타남을 가져옵니다.
베드로와 바나바, 바울의 간증을 들은후 하나님의 권위있는 사람
야고보를 통해 결정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가결하니" "성령과 우리는...가결하니"
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투표로 처리되지 않고 교회의 최종적인 결정은 영적 분량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지며 성령은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결정을 내린 후에는 교회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그 일을 이행하는
한 사역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은 교파의 총회나 연합회와 전혀 다릅니다. 안건을 처리하는
문제만도 아니요, 총회장을 선출하여 최고의 권위를 주는 사람의 일
곧 조직적인 방법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우리는 성경의 영을 만져야 하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변론하는 영에 의해
만진 바 되지 않았으며 (일단 변론에 참여하면 권위로 남을 인도하는
사람이 될 자격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왔습니다. 다툼을 멈추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또 야고보는 하나님 앞에서의 느낌을 가져왔습니다.
문제에서 시작되어 한 사역을 이끌어온 봉사집회였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아름다운지! 아멘
이제까지 항상 사도행전을 추구하려면 베드로의 사역은 이해하기가
쉬운데, 바울의 사역은 많은 지명들로 인해서 숲이 보이지 않고 나무들만
무성한 것이 질서있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RSG 사도행전에서는 본문과 지도를 함께 가지고 여행을 했습니다.
비로소 바울의 1-4차 여행이 그림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기쁨을 누렸답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 안에서, 그 영에 의해,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들을 산출하시기 위해 번식하심'입니다.
베드로의 사역
1장부터 12장까지에서 9장의 다마스쿠스에서 사울의 회심을 제외한
나머지장은 베드로의 사역인데, 제가 가장 누림이 있던 부분은,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기도할때에, 강한 바람이 세차가 불어
집 전체를 가득채워 불꽃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분배되어 각사람 위에
내리었으며, 그들은 성령으로 충일되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이 광경을
기이히 여기며 어떤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냐고
조롱하였지요. 바로 그때 베드로의 첫번째 메시지가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함께서서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합니다.
"유대인 여러분, 그리고 온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지금은 오전 9시이니
이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언자
요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것인데, '마지막 때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줄 것이다.'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을 인용하는 베드로는 더이상 사복음서에서의 어부인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요엘서에서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요. 이 능력과 기이한 일들과 표적은 바로
하나님의 의결대로, 미리 아신바에 따라 넘겨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불법자들의 손을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살리셨으며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의 오른편으로 높이시고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들은 그즉시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사도들에게 왔습니다.
"회개하십시요.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침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들이 용서받도록 하십시요."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결박한
바울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이 그 이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많은 믿는이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그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그들이 범한 죄들을 씻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과
사람앞에서 그들의 죄를 씻게 하려고 그렇게 미워했던 그 이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3000명 5000명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두번째 메세지의 배경 또한 베드로와 요한이 정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고 있을때 모태에서부터 서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 "은과 금은 나에게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주겠으니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기가막힌 기적적인 일을 보고 온 백성이 크게 놀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치료된 '그 일'만 보고 놀랄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마치 우리 자신의 능력
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합니까?"
"여러분이 생명의 창시자를 죽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 그분이 바로 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아셔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이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어 여려분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주신적이 없습니다" 말씀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었는데 남자의 수가 5000명 이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께서
죄인들의 양심을 만질때마다 그들은 구주가 필요하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부어진 후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사도행전 13장에서부터는 안디옥에 있는 교회를 통해 보내어진 사도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집니다.
바울의 1차 사역여행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시고, 안디옥교회가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에 보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전파하는 사역의 위임을 위해 이방땅으로 여행하게 됩니다.
실루기아- 키프로스- 살라미- 바보 (이곳에서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때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신언자 엘루아=마술사가 대적하면서 총독을 믿음에서
빗나가게하려고 하므로 바울이라는(처음 바울의 이름이 나옴) 사울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온갖 속임수와 악행이 가득 찬 마귀의 자손이여...지금
주님의 손이 그대위에 있으니 그대가 눈이 멀어 한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즉시 그는 안개와 어둠이 덮이게 됩니다. 이광경을 보고 총독은 주님을 믿습니다.
- 바보에서 배를타고 밤빌리아의 버가(여기서 마가는 예루사렘으로 돌아갑니다.)
바울과 일행은 비시디아의안디옥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시편2:7절의 예언의 말씀을 말해줍니다.
-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여기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치고 무리는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 부르고 황소를 가지고와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기회로 삼아, 바울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다시)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되돌아가 제자들의 혼을 견고케하고, 항상 믿음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유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합니다."라는 말을하게 되죠.
- 비시디아 - 밤빌리아-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 배를타고
안디옥으로 가 1차 여행을 마칩니다. 앗달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옴(13:5-14:28)
15장의 할례에 관한 분쟁
바울의 2차 사역여행
사도행전15장 후반부에서 다시 사역을 위해 출발할때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툽니다. 이 문제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인해 엇갈린 것인데,
마가는 바다바의 생질로, 그 분쟁의 원인은 바나바의 천연적인 선호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령의 권위는 바울에게 옮겨지고, 그 이후 바나바의
행적인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선택한 후에 형제들의 축복
가운데 사역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시리아- 길리기아에서 교회들을 견고케하고- 더베- 루스드라(여기에서 디모데를
만납니다.)- 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여기서 우회하여 상방향인 비두니아로
가려던 중, 예수의 영께서 허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이상을 본 뒤 바울은 마게도니아로- 드로아- 사모드라게-
빌립보(유럽에 최초로 루디아의집이 구원을 얻고 빌립보 간수의집이 구원을 받습니다.)
-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세 안식일 동안에걸쳐 교회가 일으켜집니다.)
- 베뢰아- 아테네(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과 바울의 논쟁)-
아레오바고('알지 못하는 신에게'제단을 기회로 우주와 그안에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전에 살지 않으시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으로 전파합니다.)
- 고린도(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1년6개월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데살로니가전서등을 씁니다.)- 에베소("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떠납니다. - 가이사랴- 예루살렘- 안디옥
바울의 3차 사역 여행
갈라디아, 브루기아(모든 제자를 견고케합니다.)- 다시 에베소(요한의 침례만 아는
아볼로를 주예수님의 이름안으로 침례를 주어 성령을 받게합니다. 그리고 2년동안
날마다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전하고 토론하여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헬라인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아픈사람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이 떠나고 악한 영들이 나갔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은전 오만의 가치의 책을 불태웁니다.*은전하나 하루일당.
이곳 에베소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그의 영안에서 작정합니다. 또한
로마에도 가야한다고 결정합니다.
-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바울은 얼마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다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것은 신들이 아니라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자
아데미신전 모양을 만드는 직공들의 소요에 휘말립니다.- 헬라- 시리아(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칠 음모로 마케도니아로 다시 돌아서)- 빌립보- 드로아(다락방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바울이 살립니다.)- 앗소-
미둘레네- 기오 - 사모- 밀레도(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를 밀레도에 불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함에 대해 부탁합니다.)
-두로(제자들이 그 영의 지시를 받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돌레마이(바울은 항상 형제들을 문안하고, 형제들집에서 수일 머물고
항상 몸의 이상을 실제로 살아낸 본이었습니다.)- 가이사랴(아가보라는 신언자가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손발을 묶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 허리띠의
임자를 이렇게 결박하여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심을
신언합니다. 바울은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뿐 아니라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 바울은 항상 1,2차 사역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안디옥'이었습니다. 그러나
3차여행의 종점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믿는이 들이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지켰고, 구약시대안에 머물러
유대교의 강한 영향 아래서 하나님의 신약경륜과 낡은 구약 경륜을 혼합시키는
것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갔을때 기다렸다는듯이 야고보는 바울을 나실인의 성원, 정결의식
에 함께 참여케하여 바울자신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고자 했습니다. 이 분위기는 너무도 강하여 그곳에 있었던 베드로나 요한
도 어떤 모우션을 취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은 우리의 율법과 성전을 반대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온 도시가 소동하게 되고,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내칩니다. 야고보의 타협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나실인의 서원에 참여함으로 곤경에 빠진 그를 구출해 내십니다.
이 와중에 천부장은 소요를 잠잠케하고 바울을 유대인 앞에서 자신을 해명하라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9장에 기록된 다마스커스에서 주예수님을
만난 것을 다시 증언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 누구
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사람 예수다" "주님 내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가거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낼것이다." 바울은 <단체적인 나>에 대한
이상. 오, 이땅위에 그리스도 자신과 동일한 생명과 본성을 가진 몸에 대한 계시를
분명하게 본것을 말했습니다. 이말을 하자마자 유대인들은 고함을 지르며 옷을
벗어던지고, 천부장은 그를 가죽끈으로 묶었고,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사용해
자신을 변호합니다.
위의 상황에서 유대종교의 어둠과 눈멂과 증오와 위선/ 로마정치의 불공정함과 부패함/
그러나 사도의 투명함과 밝음과 신실함과 용기/ 주님께서 자기의 증인을 격려하시며
돌보심과 그분의 목적을 위해 모든 상황에 대해 주권을 행사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천부장은 로마총독 벨릭스에게 넘겨지고- 베스도에게- 아그립바왕에게-
로마가이사에게. 이러한 과정안에서 바울은 언제나 담대하게 자신을 해명합니다.
주님의 증거를 널리 확산하기 위하여 그의 지혜로 심지어 로마에까지 가려는
갈망을 이루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에 상소하기전에는 여섯서신을 쓰게되지요.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를 쓰고,
로마에서 첫번째 투옥되었던 기간에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빌립보소, 빌레몬서를
쓰게되고, 감옥에서 나온 후에 디무데전서, 디도서, 히브리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투옥된 기간에 마지막 서신 디모데 후서를 쓰게됩니다.
바울의 4차 사역여행
사도행전 27장에 왔을때, 사람(유대인)의 방해에서 막히자 사탄은 자연(바람,폭풍)
으로 그의 길을 막습니다. 배를타고 이탈리아로 가는데 유라굴로 폭풍이 몰아쳐
모든사람이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로하여금 가이사앞에 서게한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그로인하여 바울은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몰타라는 섬에 정박했을때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아 원주민들에게 신으로 영접되고,
추장의 아버지의 열병과 이질을 고쳐주어 그들의 도움으로 로마에 무사히
도착하게되고, 로마에서는 바울을 지키는 군인 한사람과 함께 그의 셋집에서
이년동안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주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가르칩니다.
결론
사도행전의 강조는 성령에 의해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를
산출하고 번식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믿는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번식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성령의 일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땅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들을 산출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고, 그분의 몸으로 조성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이루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땅에 제자들과 하나된 단체적인 그리스도) 나!!"
이 이상이 바울의 일생을 통제하였습니다. 아멘!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왕국으로 마치게 되는군요.
"바울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가르쳤다."
첫댓글 아멘...
아멘 할렐루야~~ 수고하셨습니다. 자매님 반가워요~~
귀한 글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