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6일 걸프전 첫날. F-117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세계는 스텔스 전투기의 존재와 위력을 알게 된다. 그때까지 적을 공습하려면 방공망 제압기, 초계기, 전자전기, 호위기, 공격기 등 40여 대로 구성된 대규모 편대를 동원했다. 그걸 단 두 대의 F-117 스텔스로 대체한 것이다. 이후 스텔스는 5세대 전투기의 기준이 됐고 미래 항공전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18년 뒤인 2009년 4월 13일, 미 공군 장관 마이클 돈리와 미 공군 사령관 노튼 슈워츠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수년 내에 우리는 미래 공중전을 지배할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시작할 것”이라고 기고했다. 5세대의 대표 스텔스기 F-22와 F-35도 좋지만 더 앞으로 나갈 것이란 발표였다. 움직임은 이어졌다.
2010년 11월 1일 미 정부는 차세대 전술항공기 연구(Next Gen TACAIR-CRFI)’라는 자료를 통해 미 공군이 F-22를 대체해 2030~2050년에 사용할 차기 유인 전투기에 대해 개념을 연구 중임을 공개했다. 11월 22일 한 개인 블로거는 “미국의 항공체계연구소(ASC)의 능력개발 및 계획 본부(XRX)가 최근 차세대 전투기를 위한 개념과 연관 기술을 찾기 위해 시장 조사를 진행 중”이란 내용을 올렸다. 12월 6일엔 미 조달청이 시장조사를 위한 관련 공고를 했다. 9개 항목에 걸쳐 필요한 기술에 대해 준비하라고 민간에 제기한 것이다.
이런 과정은 ‘하늘의 지배자’로 불리는 F-22 스텔스기의 초기 컨셉트 연구가 시작된 80년대를 연상시킨다. 당시는 F-15가 최고의 전투기로 이름을 날리던 때였다. 개발엔 20년 앞선 눈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 공군은 비밀 예산으로 6세대 스텔스기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F-22를 대체하는 차기 스텔스기는 2015년 이후 개발을 시작, 2027년 이후 F-22를 대체하기 시작할 전망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미국이 구상하는 6세대 전투기는 현재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전방위 스텔스기다. 적진에서의 공중전(OCA), 방어용 공중전(DCA), 통합 미사일방어 능력(IAMD), 근접항공지원(CAS), 전장차단(AI), 무인기 통제, 전자전 공격, 정보감시정찰(ISR) 능력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기다. 여기에 레이저나 전자기파무기(HPM) 같은 에너지빔 무기를 적용하고 아시아권의 작전 환경에 맞춰 현재보다 더 긴 항속거리를 갖게 하려 한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술적 문제는 전방위 스텔스이면서 동시에 전투기에 요구되는 고기동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방위 스텔스기는 날개로만 이뤄진 전익기였다. 전익기는 자체의 특성상 고기동이 어렵지만 전방위 스텔스는 가능하다. 꼬리 날개가 없으면 고기동이 어렵다. 그래서 정찰기나 폭격기에만 전방위 스텔스 기술이 적용돼 왔다. 여기에 ‘통합 미사일방어 능력’은 현재 5세대 전투기급에서도 구현된 적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방향이 될지 공개된 자료는 없다. 항공 전문지인 ‘미 공군’ 2009년 10월호에서 존 티르팍 국장은 “6세대 스텔스기는 거의 SF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5세대보다 스텔스 기능이 강화되고 ▶능률적 비행을 위해 비행 중 형태를 변화시킬 것으로 봤다. 초음속·아음속 비행을 위해 비행 중 엔진 전환도 가능하며 에너지빔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3대 항공사의 하나인 노드롭의 파울 메이어 고등 프로그램 및 기술 본부의 본부장 겸 부사장은 정보의 수준을 가장 큰 차이로 꼽았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6세대 항공기 내 혹은 외에 앉아 있을 조종사에게 전달되며 그 디테일과 명료성은 5세대와 엄청난 수준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봤다. 전방위 감시가 가능한 센서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 분석해 조종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며 인공지능을 통해 조언을 하고 무장제어 등 특정임무를 인공지능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무기 면에서 특징은 에너지빔이다. 민첩성을 결정적으로 향상시킨다. 조준되면 빛의 속도로 공격한다. 재래식 미사일의 ‘기동 시간’은 없어진다. 그래서 포착된 적기는 달아날 수가 없다. 빔 무기로 땅이나 하늘 가릴 것 없이 공격 가능하다.
보잉사의 달리 데이비스 고등 체계 연구본부의 본부장은 “전자가 광자에게 자리를 내 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전선 대신 광섬유를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텔스기 내를 채운 전선 더미가 줄어든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처리하고 무게도 적어진다.
스텔스의 효시는 미국의 SR-71 초음속 정찰기다. 60년대 후반 SR-71이 정찰을 나설 때 독특한 형상(사진) 때문에 소련의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게 됐다. 뜻하지 않게 스텔스 효과와 스텔스 기술의 유용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기초로 미국은 독특한 형상과 스텔스 도료로 레이더 전파를 회피하는 F-117이라는 스텔스 공격기를 극비리에 개발해 운용했다. F-117은 레이더 반사파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기 위해 다리미와 같은 독특한 형상을 가지고 있어 비행체의 외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이 스텔스 전투기는 91년 걸프전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그 이후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 F-22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 배치했고 보급형인 F-35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미 해군은 현재 운용 중인 F-18을 대체할 F/A-XX라는 차기 함상전투기에 대해 개념 연구를 한다. 한편으론 2025년 퇴역하는 F-18을 대신할 F-35/C와 항모 탑재형 무인전투기(UCAV)를 개발 중이어서 F/A-XX의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F-35와 UCAV로 작전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F-35 가격이 너무 치솟아서 충분한 대수를 확보가 어렵고 UCAV는 아직 제한된 역할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텔스 기술을 적용해 항공기를 제작하는 데는 매우 큰 비용이 든다. 그러나 예산은 한정돼 있어 결국 결국 생산 대수 축소로 이어진다. B-2 폭격기는 초기 수요를 132대로 잡았지만 비용 상승으로 21대 생산에 그쳤다. F-22도 초기 예측은 700대였지만 가격 상승과 유지비 과다로 187대 생산으로 축소됐다. 스텔스 헬기로 각광을 받았던 RAH-66 코만치도 늘어가는 예산을 감당할 수 없어 프로젝트 자체가 포기됐다. 이번에 오사마 빈 라덴 공격 작전에 투입된 스텔스 헬기는 코만치 헬기 기술을 적용해 개량한 MH-60 헬기다.
스텔스 전투기가 너무 비싸 미국도 스텔스 전투기로만 공중전력을 구성하지 못한다. 현재 미 공군전투기 중 10% 미만만 스텔스다. F-35를 1800여 대 생산해 공군전력의 80% 이상을 스텔스로 채우려던 야심 찬 구상은 사라졌다. 미 정부 예산회계국(GAO) 보고서에 따르면 2034년까지 계획된 F-35 생산을 하려면 같은 기간으로 계획된 공군 일반 전술기 구입 예산의 110%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2009년 5월 미 의회 예산국 보고서(CBO 리포트) ‘미 공군기 현대화를 위한 대안’에는 “감축할 경우 모자라는 수량을 기존 전투기의 개량형으로 채울지 무인기로 채울지를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는 러시아·중국도 200여 대 정도의 생산을 구상한다. 1500~2000여 대인 전체 전력의 10~15 % 내외다.
그러나 미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중전에서 확실한 우세를 보장할 고성능 전투기 확보를 포기하지 않고 적은 수량이더라도 계속 개발 생산한다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80~90 년대 하이급 전투기였던 F-15는 미국 배치 후 일본·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만이 보유할 수 있었고 2000년대 들어 한국과 싱가포르가 구매했다. 2000년대 하늘의 제왕인 F-22는 미국만 보유하고 있고 2015년까지 수출 자체가 금지돼 있다. 그런 미국이 다시 2030년대 하늘을 지배할 미래 전투기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