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는 호남문학의 산실 면앙정 이다
무등산 한 활기 뫼가 동족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쳐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무변대야(無 邊 大 野)에 무슨 짐작 하느라
일곱 구비 한테 뭉쳐 우뚝우뚝 벌려논듯(..........)
넓고도 길구나 푸르거든 희지말고
쌍룡이 뒤트는듯 김깁을 펼쳤는듯
어디로 가느라 무슨 일 바빠서
닫는 듯 따르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듯(........)
위시에서 볼수 있듯이 면앙정은 광주 무등산 자락의 동쪽으로 뻗어 제월봉으로
향한 벌판을 바라보고 시냇가에 위치한 송순(宋純 1493~1582년)이 이정자의
주인공이다.
나는 지난가을에 영남문학의 맹주이신 농암(聾 巖) 이현보( 李 賢輔 )선생의 종택을
낙동강 상류에서 찾을수 있었으며, 천암만학(千 巖 萬 壑)의 아름다운 낙동강의 상류에서
농암의 계산풍류(溪 山 風 流)의 흥취를 느껴 보았다.
여기에 대응하는 호남문학의 산실을 지난 가을철에 광주에서 담양으로 향해서
답사를 한적이 있었는데, 어제도 시립남산도서관과 내가보던 여러가지 책을 읽어보고
또한 지금까지 소장한 책들을 참고하면서 답사기를 쓰고 있다.
송순은 전남 담양군 기곡면(현 봉산면) 기촌리마을에서 1493년도에 태어나셨다.
본인은 호남 제일의 가단을 형성한 장본인이며 강호가도(江湖 歌道)의 선구자라
할수 있으며 ,호남시가뿐만이 아니라 고전문학사에 빛나는 위치를 찾이하고 있다.
십년을 경영하야 초려(草 廬 )한 칸 지어내어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을 드릴듸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은 담양부사인 눌재 박상(朴 祥)의 문하에서 사사하였으며, 박상은 송순에게
"남을 다스릴때는 경(敬)으로서 하고 일을 처리할대는 직(直)으로써 하라"고 굳게
가르침을 받았다. 송순은 면앙정가를 지어 정자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그 산하에서 하서 김인후 ,금호 임형수, 옥계 노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백호 임재
등수많은 호남의 문인들이 배출한 인물이기도하다.송순은 면앙정가를 지었으며
수많은 시조문학과 한시도 많이 남기셨으며.면앙정기를 기대승이 짓고 임재가 면앙정 부를
지었다 또한 송강정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송강문학을 낳게 하였다.
특히 면앙정가는 그의 작품중에서 강호(江 湖)는
만년에 은둔(隱 遁 )은 벼슬길을 자의로 물러난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인 도피라기
보다는 '열린공간'으로서 현실과 자연을 함께 영위할수 있는 문학의 공간이기도 하다
은둔의 사상은 선비의 고결성과 물아 일체를 느끼면서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선비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면앙정가는 총146구로 되어있으며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정자를 중심으로 삼아노래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그문하에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성산별고" "사미인곡""속미인곡"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 담양에는 송강정도 그 부근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나라 문학의 정수를
느낄수 있는 속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효시로 볼수 있을 것이다.
백리에 뻗어내린 산맥 평야를 끄러안아 百 里 郡 山 擁 野 平
시냇가 모옥이 이제막지어졌네 臨 溪 茅 屋 幸 初 成
이몸은 창생의 원망에 앉아 此 身 不繫 蒼 生 望
백구와 더불어 좋은친구 되리라 宜 與 沙 鷗 結 好 盟
이글은 송순이 사간원(司 諫 )으로 있다가 파직되어 이 곳 담양에 정자를 짓고 자연속에서
풍광을 즐기고 안빈락도를 했던 것이다.
이곳 호남지방은 조광조를 비롯하여 16c 기묘사화때 죽고 또는사화를피해 명현(明 賢)들이
향리에 은둔하여 호남문학의 꽃을 피우게 된다.
돌아와 강호제현들과 풍류를 즐기고.특히 양산보의 소쇄원 김성원의 식영정과 서하당,
김윤재의 환벽당은 그가 시심을 키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며 문학의 산실이
기도 하다.무등산 북쪽의 원효계곡에 집중적으로 세워졌으니 가히 누정문학의 본고장이라
할 만하다.
나는 원래 누정문학을 공부해보고자 나주향토문학에 관심이 많아 영산강 줄기를
따라 답사를 계속해서 다녔다.또한 나주향토문학회에서 발간한 "樓 亭 題 詠"을
확보하여 나주지방 정자를 찾아 공부를 나름대로 공부하게 되었다.
거기에 물론 저의 12대조 시서 김선(金 璇)도 나주금성산변의 죽림에 오락정(五樂 亭)을
세우시고 한시대를 풍미하면서 수많은 한시와 상소문 그리고 시대를 걱정하는
글들을 쓰시면서 올바른 선비로써 당후대에 추앙받는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또한 나주지방의 정자만 공부하고 있는것이 아니고 호남지방을 주축으로
공부를 해볼 작정이다.
영산강 구비따라 한정자(亭 子)를 찾아드니
돌하나 기와 한장 고색이 창연하여
오늘도 선인의 문기(文 氣) 훈훈하게 감돌고
편액에 새긴 시정(詩 情) 풍류가 넘치는듯
청아한 목소리에 속진(俗 塵)이 씻기는듯
지나는 바람 한점도 예사롭다 하리오.
이 글은 나주향토문학 연구회장님이신 이재홍 회장님이 저에게 주신 " 慕 亭" 이란
책에서 나온시이며 영산강 유역 18대 연혁기가 정자를 관리하는 후손들에 의해
발간 된 책이기도 하다.
나주지방의 영산강의 줄기따라 수많은 정자가 산재되어 있으나 영모정을 비롯하여
현존하는 정자가 44개와 현존하지 않는 정자가 180개 정도가 문헌에 나와 있다
(樓 亭 題 詠 --나주향토문화연구회 발간 2002년발간 참조)
여기 나주지방에 16c에 두두러진 문인으로써는 백호 임재, 금호 임형수 시서 김선
남간 나해봉 등...으로 유독 나주지방에는 정자와 서원이 전라도에서 제일 많은 곳
이기도 하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나주에서 김천일 광주에서 김덕령장군 고경명 의병장들이
임진왜란시에 의병을 이끌고 국난에 대처한 고장이기도 하다
호남은 특히 유배지의 고향으로 최남단 해남에는 고산 윤선도가 우리 국문학에 거봉으로
우뚝솟아 "오우가" '어부 사시가" "산중신곡"등 주옥같은 글들로 우리들의 곁에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호남문학을 더 한층 심도있게 공부를 앞으로 계속 할 것이며
특히 남은 시간을 문학과 역사를 더듬고 카페 회원님듣과 함께 문학의 일부를 알게 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더 연구하고 탐구하여 우리문학의 삶의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로 삼고져 한다
참고문헌 :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정명헌. 이지영공저
樓 亭 題 詠 ---나주향토문화 연구회 저 2002년
고전시가 강독 ---방송통신대 출판부 (손종흠.윤덕진공저)
慕 亭 ----영산강 유역 18대연혁기 모정회
고전문학의 논리와 체계--- 임형택 교수저
|
첫댓글 선배님은 진정한 향토사학자 이십니다
호남의 역사적 문물 잘 이끌어 주시어
후학들이 밝은 길이 되 주실것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향토사학자라 .....
저의꿈이지요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