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4. 9. 15. 일요일.
점심 식사 전에 수원 인근에서 사는 작은딸네가 왔다.
사위, 작은딸, 외손자(유치원생.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 예정)
점심밥을 같이 먹었고, 오후에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쉼터로 나갔다.
사위가 사온 냉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딸네는 내일 충남 태안군으로 내려가서 시부모님을 뵌단다.
* 작은사위는 외동아들
바깥사돈은 태안군 백화산 남쪽 아래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고, 안사돈은 알아주는 여류시인.
외손자는 외할머니네 잠실 아파트에서 자야겠다고 떼를 쓰고 울고....
저녁밥을 먹고 그들은 되돌아갔다.
2.
<한국국보문학카페> '등단 시인방'에는 김병환 시인의 '추석'이 게재되었다.
조금만 인용한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시련은
주름이 되고
역경은
한숨이 된다.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
시의 제목이 '추석'인데도 본문에서는 시련 운운하며, 한숨이나 내쉬나요?
왜?
한가위 추석은 오곡이 익어가고, 농산물이 풍부한 수확의 계절이며,
객지에 사는 자식들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선산에 올라가서 조상 묘에 절을 올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이지요.
풍요롭고 넉넉한 계절이지요.
1960 ~ 70년대를 떠올립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고향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려고 몇 시간 동안 서울역전 광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지요.
겨우 입석표를 구입했으나 열차는 만원..... 사람들은 열차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해서 일부는 기차 지붕 위에 올라갔지요.
위험스럽게 기차 지붕 꼭대기에 앉아서......
석탄 태워서 운행하는 완행열차는 연기통에서 시꺼먼 매연을 날리고.....
철도 굴속을 통과하면?
지붕 위에 걸터앉은 사람의 얼굴은 온통 시꺼먼 끄으름이 묻어서...
그래도 추석에 고향 가는 게 즐겁고 마냥 신이 났지요.
그 당시 추석은 정말로 신이 나는 명절이었지요.
지금은 자가용 등으로 교통이 아주 편리해졌는데도 저는 올해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텅 빈 시골집...아무도 살지 않기에.
내가 기억하는 1960~ 70년대의 서울역 광장
1977년 추석 연휴에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이 귀성객으로 붐비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서울역 광장에서 밤 새워 가며 기차를 기다리며
*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임.
사진 게시를 용서해 주실 게다.
* 나는 1960년대 말경에 서울에 올라와 대학교 다녔으며, 1970년대 말부터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직장 다니기 시작했다.
음력설과 추석 때에는 서울역 광장으로 나가서 기차표를 사전 예약해야 했다.
정말로 고난스러운 열차표 구매였다. 운이 좋아야 겨우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고....
2024년 9월인 지금 나는 추석 명절이 이틀 뒤에 있는데도 서울에서만 머문다.
고향에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2015년 2월 말에 만95살이 된 지 며칠 뒤에 저너머세상으로 여행 떠나셨기에, 나 혼자서 시골에서 살기가 뭐해서 그참 서울로 올라왔다. 그 이후로 고향집은 텅 비었고.....
나는 종가종손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 아파트에서만 머문다.
추석 차례상을 간략하게 진설하고, 술 대신에 청량음료수로 대신한다.
조상 영혼이 있다라고는 전혀 믿지 않으며, 단지 한때 지구상에 존재했던 조상님에 대해서 내가 잠깐만이라도 한번 더 생각한다는 뜻에 불과하다.
차례상을 아주 간략하게 진설한다.
아내한테 늘 부탁한다.
"제발 조금만 준비해."
수십 년 전에는 서울역, 용산역에 나가서 명절 기차표를 사전에 예약하려면 정말로 힘이 들었다.
지금은 기차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면 되는데도 명절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서울에서 머물면서 간략하게 차례를 지낸다. 음식물이야 재래시장, 마트에 가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지갑만 열면 차례 음식물이 택배로 배달되는 세상이다.
.....
2024. 9. 15. 일요일.
나중에 보탠다.
잠시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