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행동이다》김형석 교수와 어머니
19-02-25 10:58 3,505회 0건
제3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김형석 교수와 어머니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 학창시절 강의도 몇 번 들었으니까 나의 은사님이시기도 하다. 올해 99세임에도 아직도 집필을 하시고 정정하게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70~80세가 넘으면 대개 사회 활동을 접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학창시절 그 분의 에세이집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김교수님의 어머니도 오래 사셨던 것을 보면 집안 전체가 장수 DNA를 타고 난 것 같다. 교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60세 전후의 나이에도 퇴근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노모의 방에 들어가셔서 안부를 여쭈었다고 한다. 그냥 인사만 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를 30분 남짓 들어주면서 맞장구도 쳐 주곤 했는데, 그것이 그분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팔순의 어머니께서 교수님께 하는 이야기는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라 불리는 김 교수의 지식의 깊이에 비추어봤을 때 별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얘야. 오늘 옆집 개가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참 이상도 하지.”
“뭐가 이상한데요? 어머니!”
그러면 김 교수님의 어머니는,
“새끼를 일곱 마리 낳았는데 그 중에 두 마리는 누렁이이고, 세 마리는 검둥이고, 두 마리는 얼룩이를 낳았다더라. 세상에 이상도 하지. 우째 새끼를 그렇게 낳았을꼬?”
김 교수에겐 들을 만한 가치도 없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였지만 매일 저녁 노모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들이 있기에 어머니는 하루 종일 한, 두 가지 이야기 할 거리를 준비하고는 저녁에 아들이 오면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려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기억력의 감퇴로 종종 얼마 전에 했던 적이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만 김 교수는 어머니의 작은 행복을 지켜드리려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어머니의 방에 가서 하찮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그러다보니 그 일은 본인의 행복 중의 하나였다고도 했다.
김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김 교수님처럼 부모님 방에 가서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나중에 암 투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 마지막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시는 어머니를 거의 매일 새벽에 출근 전에 찾아뵈면서 쭈글쭈글한 어머니 젖가슴도 장난스럽게 만지고 나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젖이 가득 담겨서 탱탱했을 때 내가 이 젖을 빨아먹고 이만큼 자랐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얼마 전에 겪은 나의 이야기이다.
“형님! 그 이야기 이제 그만 하세요. 그 이야기는 지난번에도 한번 했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98번만 더하시면 100번입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하던 중에 후배가 큰 소리로 면박을 주는 바람에 머쓱해져서 신나게 하던 이야기를 중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후배가 나쁜 감정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님은 알지만 그 이후로 몇 달이 지났는데도 후배의 면박이 뇌리에 남았고 이번에 펴내는 책 속에도 담는 것을 보면, 그 면박은 나에게 상당히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소위 말하는 꼰대 수준의 나이가 되다 보니 내가 이야기했었던 것을 잊어먹고 같은 이야기를 또 했던 모양이었다.(꼰대: 세상이 바뀌는 데도 자기 자신의 생각은 조금도 바꾸지 않으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바뀌어야 한다고 침 튀기며 역설하는 피곤한 인간)
그런데 비즈니스로 만나게 되는 고객과 저녁자리를 같이 하다보면 그분들도 얼마 전에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심지어는 같은 이야기를 거의 열 번 가까이 하는 분도 있다. 때로는 인터넷에서 몇 년 전부터 돌아다니던 이야기나 아재개그를 마치 자신만 아는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하는 썰렁한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이야기를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그 이야기는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 입니다.” 하면서 상대편의 말을 막지 않는다. 거래업체 사장은 고객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친구나 회사의 임직원이 이야기해도 대체로 끝까지 경청을 하면서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감탄도 하고 유머인 경우에는 바보같이 매번 잘 웃는다.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면 어떤가?
그 이야기를 하는 분은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려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같이 즐거워하고 감탄해주면, 이야기 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자리한 모든 분들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쨌든 그날 후배가 면박을 준 이후로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마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안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표현을 쉽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남이 무안해 할 말을 아무생각 없이 쉽게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쉽게 하는 게 특별히 나쁜 뜻으로 그런건 아닐 것이다. 본인의 일상적인 표현이 항상 그런 것 같다.
며칠 전 기업인들과 저녁 술자리를 같이하던 중 나보다 나이가 7~8세 어린 사장이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며칠 전에 했던 일도 기억을 못할 때가 있다”면서 걱정을 한다. 그러다보니 술자리에 함께 있던 분들도 모두 같은 경험을 했는지 동의를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후배들 앞에서 그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한 것도 기억력의 감퇴로 인했던 모양이었다. 말이 많아지면 나도 모르게 말로 인한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라는 명언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있어서 호주머니를 열심히 여는 것은 좋지만 말의 실수를 안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 역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때문에 말을 적당히 조절해서 적당하게 잘 해야 한다는 상당히 어려운 숙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면박을 준 후배는 외모도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나름대로 타인을 위한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건전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후배인 것이다. 당연히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판단이 되는데 아직까지 사업적으로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어쩌면 본인이 가진 말투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악의는 아니지만 상대에게 기분이 좋지 않게 언행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나 농담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면박수준으로 끊어버린다면 누가 비즈니스를 연결해서 같이 하고 싶어 하겠는가?
이런 기분 나쁜 느낌은 한, 두 번만 느껴도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성적인 측면보다 감정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준 것도 없이 괜히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같이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다. 당연히 이성이 지배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감정이 개입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어떤 지인은 본인 스스로는 정치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모이면 특정 정당에 대하여 쌍욕에 가까운 표현을 곧잘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숭배자에 대해서는 극 존칭어를 써가며 마치 하나님 동기동창 대하듯 한다. 보수와 진보에 상관없이 그렇다는 말이다. 좌우지간 극좌나 극우는 극단적인 말과 폭력적인 행동을 수반하기에 서로를 닮았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프롤로그에서 언급을 했던 내용인데 나의 어머니는 종교에 대해서는 오픈된 생각을 가지셨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종교인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생각을 하지도 않으며 어쩌다가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결혼식 행사도 그렇고, 해외 배낭여행에서 그 지역의 대표적 종교(예를 들면 인도의 힌두교나 시크교)의 성전을 방문할 때도 나름대로 예를 다한다.
서로가 기분 좋으라고 하는 즐거운 이야기는 상대에 대한 호의로 하는 이야기이기에 여러 번 하더라도 들어주고 즐거워하지만,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차이는 ‘틀림의 개념’이 아니고 ‘다름의 개념’이기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면 안 된다는게, 나의 종교와 정치에 대한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우와 극좌 또는 특정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보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주변에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김형석 교수님의 노모는 팔순의 나이에도 옆집 개가 낳은 강아지의 외모 차이도 기억을 하실 만큼 기억력이 좋으셨던 것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자로 또 단체의 협회장으로서, 다양한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는 등 사회활동을 하다 보니 내 머리의 용량을 넘어서는 대규모 정보의 입력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항은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전에 했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나의 지인들이 김형석 교수처럼 편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지혜를 가졌다면, 서로가 모두 행복했을 걸 하는 생각이다.
가수 서유석의 ‘너 늙어봤니? 나 젊어봤다’란 노래 가사처럼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던 것(예를 들면 기억력 감퇴, 컴맹, 불면증, 괄약근의 약화로 아무데서나 방귀를 잘 뀌는 것, 노안, 이명, 고집이 느는 것 등)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든 사람들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삼가야 하겠지만 젊은이들도 세대 차이에서 오는 핸디캡을 이해해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친구의 말을 끊었던 확실한 기억이 있다.
월급쟁이로 정년퇴임한 친구인데 이 친구는 나를 만나면 기업경영은 어떻게 해야 하고 직원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영업과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나를 가르치려고 했다. 하도 그렇게 잔소리를 하니까 한번은 왕짜증이 나서 “CEO를 35년 동안 한 사람에게 월급쟁이로 정년퇴임한 사람이 기업경영에 대하여 무슨 충고할게 그렇게 많나” 하며 면박을 준 적이 있다. 하여튼 세상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나도 인간이라서인지 그런 경우에는 끝까지 인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대화에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인간존중이고 배려이고 따뜻한 마음이란 것을 김형석 교수님의 에세이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99세인데 강연도 하고 집필도 하시면서 멋진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신다. 얼마 전 김 교수님은 자신의 삶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멋진 6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씀을 했다. 내가 지금 바로 그 나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