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당신
김선우
당신 꿈을 꾸었어요 지상에서 유일하게
야생 낙타와 야생 당나귀가 사는 곳
모래바람 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길을 잃지 않는,
보이는 것으로 지도를 삼지 않는 사람들
샘에 이르자
양과 말과 낙타가 먼저 물을 먹도록
뒷전에서 기다리며 조용히 웃는 당신의 눈빛,
가축으로 길들였으나 가축만은 아닌
서로 보살피는 쪽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품위를
당신은 가계로부터 물려받았더군요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비를 맞던 순간을 오래 기억할게요
순식간 훑고 지나갈 뿐이지만
한 방울 한 방울 들꽃이 되는 비
물 귀한 곳에서 극진으로 생생해지는
물의 환희가
피톨처럼 온몸으로 전해졌지요
때로 당신 꿈을 꾸고 기도합니다
메마른 도시 너무도 메마른 날에
고비의 당신이 오래도록 안녕하기를
당신의 안녕으로 어떤 아름다움이
지상에서 끝내 지켜지기를
양과 말과 낙타와 가만가만 멀리 닿는 구음과
야생 낙타와 야생 당나귀와 함께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웹진》 202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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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金宣佑) / 1970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6년 《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녹턴』 『내 따스한 유령들』,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 청소년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청소년시집 『댄스, 푸른푸른』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산문집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부상당한 천사에게』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등을 펴냈고, 그밖에 다수의 시해설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