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여름을 안고 사라져 가려 합니다.
올 8월은 백여년만의 큰 비로 여기 저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고 가는가 봅니다.
한여름 밤의 꿈같은 달콤한 시간은 없었지만 또 한 계절이 지나감은 아쉬움의 잔해를 남기게 되나 봅니다.
가끔씩 한여름에 내리는 하얀눈을 상상해 봅니다.
비현실적인 생각들을 가능의 세계속으로 대환해 보는 상상들이 흥미로울 때가 있습니다.
시쎌(Sissel)이라는 가수가 부른 썸머스노우(Summer Snow)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 입니다.
깊고 푸른 바다의 썸머스노우(Summer Snow)~~
만져보려 하지만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그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꿈인지도 몰라요.
마치 당신을 위해 울고 있는 내 사랑 처럼요.
견딜수 없는 아픔을 느끼지만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뿐이랍니다.
난 영원한 사랑과 운명적으로 당신을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노래 가사의 일부 이지요.
정말로 사랑한다면 한여름속에서도 하얀 겨울눈을 내리게 할수 있다는 그런 애뜻한 마음을 표현한 노래랍니다.
새삼스럽기도 하고 이나이에 진부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의 서울인 경성(京城)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경성의 중심부인 혼마찌(本町)는 지금의 종로거리에 해당합니다.
혼마찌의 약간 외곽에 위치했던 "T"라는 권번(일제시대 요정의 호칭)은 당시 정재계의 인사들과 문화 예술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명소였습니다.
여기서 막 동경유학을 마치고 온 25세의 젊고 잘생긴 청년(그당시 그의 키가 185 ㅎㄷㄷ~)과 양반가의 규수였으나 집안의 몰락으로 권번의 기생이 되었던 재색을 겸비한 19살 처녀가 첫 만남을 하게 됩니다.
청년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고국의 어느 여고에 영어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를 환영하는 친구들의 환영회가 그곳에서 열리게 된것입니다.
비록 권번의 기녀 신분으로 전락한 처녀 였지만 영리하고 아리따웠던 그녀에게도 그 자리는 첫번째로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 였다고 하네요.
두사람은 누가 뭐라 할것도 없이 첫눈에 호감을 가지고 서로의 존재를 가슴속에 새기게 됩니다.
먼 함흥의 학교로 발령받은 청년은 방학때면 어김없이 그녀를 만나러 경성으로 내려 왔으며 두세달 정도 둘만의 생활도 가졌다고 합니다.
학교로 돌아 가면 청년은 수시로 편지를 보내 왔으며 멀리 떨어진 거리를 안타까워 하며 사랑의 마음을 전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 속에 지금 우리들이 너무도 잘알고 있는 詩도 담겨져 있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
너무나 유명한 백석(白石)의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詩의 一部입니다.
白石은 한때 월북작가라 하여 작품이 금기시 되기도 하였지만 근자에 이르러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우리 문단사에 뛰어난 詩人입니다.
당시의 풍습상 당연 하기도 했겠지만 둘의 사랑은 백석 집안의 반대로 맺어질수 없었으며 비극의 한국전쟁(6.25)으로 둘은 영영 이별을 하게 됩니다.
혼자 남겨진 여인은 긴세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며 뛰어난 재능과 사업수완 으로 큰돈을 모아 후에 우리의 3공 시절 요정 정치가 횡행 할때 3대 요정으로 위세가 대단 했던 대원각(大苑閣)의 주인이 됩니다.
백석을 그리워 하며 평생 혼자 살았던 그녀에게 북쪽의 백석이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이 전해 집니다.
그녀 나이 8순에 접어든 시점이었지요.
그녀는 평소에 존경하던 무소유의 스님으로 유명했던 법정스님을 찾아가 그녀의 전재산을 시주할테니 대원각을 절로 바꿔서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사랑 받는 터전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처음에는 부담을 느낀 법정스님이 거부하기도 하였지만 완고한 그녀의 마음을 거절할수 없어 스님은 그 뜻을 받아 드리고 대원각은 지금의 "길상사(吉祥寺)로 거듭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인터뷰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말이 있었지요.
기자들이 그녀에게 어떻게1000억원(지금돈이면 3천억원이상)이 넘는 큰 전 재산을 시주할 마음을 갖게 되었냐고 물었을때 그녀의 대답이 "천억원도 그사람(백석)의 시 한줄 값어치가 안돼요"라고 했지요.
그 한마디로 그녀가 살아온 평생의 삶과 백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읽을수가 있었던 거지요.
대원각이 길상사(吉祥寺)로 거듭난것이 '95년도의 일이네요. 벌써 오래전의 일입니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절의 한켠에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吉祥華)비를 세우고 그녀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게 해두었습니다.
그녀는 백석이 지어준 아호인 "자야"라는 이름을 가진 김영한女史입니다.
길상사라는 이름은 법정스님이 그녀에게 지어준 법명인 길상화에서 따온 이름이고요.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두사람이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 못다한 사랑을 나누었을 까요?
사랑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동서양의 차이가 뚜렷함을 알게 됩니다.
동양의 사랑이란 백석과 자야와 같은 지고 지순한 오랜사랑이 많고 서양의 사랑은 짧고 불같은 것이 많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사랑도 하룻밤 사랑이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3일간의 사랑얘기 입니다.
그 사랑이 길고 짧음을 떠나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아름다운 일이 아닐수 없겠지요.
그건 내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가족만큼 아름다운 인연은 없지요. 바닷가 모래알 같은 수많은 사람중에 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자녀를 가지게 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흰머리를 빗겨 가면서 함께 가는 길은 참으로 뜻깊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어떤이는 그날밤 소주 한병(?)만 덜 마셨어도 내 인생은 달라 졌을거라 푸념하기도 하지만 한번 맺어진 인연의 끈은 끊어 낼수록 아픔만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늘 하는 얘기이지만 인생길은 되돌아 갈 수없는 편도차표(One-way Ticket)길 입니다.
이세상 종점에 이르러 뒤늦은 후회일랑 하지 않도록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시간여행이 꽤 길어 졌네요. 한 여름밤의 꿈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 갈 시간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늘 공존 합니다.
우리의 운명도 그러한 것입니다.
다음 주말에는 성북동 길상사에 한번 다녀와야 될것 같습니다.
모두들 남은 8월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날의 백석과 자야의 모습 자료사진♤
The end.
첫댓글 자야와 백 석 시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울립니다.
'행복과 불행은 늘 공존합니다.
우리의 운명도 그러한 것입니다.'
옛날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오지요.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해선 안된다고~~더 많이 사랑하고 가야 할듯 싶습니다. ^^
해피엔딩으로 완성되는 사랑과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하는 길상사
길목 상사화 꽃말같이 애절한 사랑도 있지요
사랑의 실체는 사람에 따라 엇갈리므로 내 사랑이 최고라는 단정은 성립되지 않지요 다만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만이 우리가 공감하는 최고의 사랑으로
뇌리에 남기도 하며 예술로 꽃피워 후세에 남게 되지요
사람들이 生을 마감할때 누구나 왜 더많이 사랑해 주지 못하였나 하며 후회 한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때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될듯 싶습니다 ^^
마음에 와닿는 글한편 읽고갑니다.
인생길은 되돌아갈수없는 원웨이 티켓이란 잊고있었던 언어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을은 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 오겠지요. 기차가 얼마나 더 달린지는 모르겠으나 내리는 순간까지 열심히 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