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간단하게 정의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육체로 쓰는 시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댄스 교습소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한 [쉘 위 댄스]의 평범한 회사원 야쿠샤 코지가, 직장 의자에 앉아서도 테이블 밑에서는 쉴 새 없이 두 발로 스텝을 밟으며 연습하는 것은 춤의 중독성을 잘 보여준다.
춤을 등장시키는 영화들은 한결같이 육체의 감각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유교문화의 지배 아래서 오랫동안 성장해 온 우리들은, 육체를 정신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해서 육체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영화들을 불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한 몸이 아닌가? 왜 쾌락이 죄악시되어야 하는가?
1987년 개봉된 [더티 댄싱]은 몸을 밀착시킨 남녀 주인공들의 감각적인 살사 댄스로 우리를 매료시켰다. 서로의 심장과 심장을 밀착시키고, 허벅지와 두 뺨을 부딪치며 삶의 아름다움을 관능적으로 표현하던 춤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보는 관객들에게 삶의 환희를 전해주었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이 영화로 청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으며, 그의 상대역이었던 제니퍼 그레이를 번쩍 들고 춤을 추던 [더티 댄싱]의 마지막 씬은 카피 불가능한 명장면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른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패트릭 스웨이지가 청춘물의 주인공을 다시 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탄력적인 몸을 유지하고 있다. [더티 댄싱2]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제작을 맡고, 그의 아내 리사 니에미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서 함께 출연한 영화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어머니 패치 스웨이지는 안무가이고 무용수여서, 리사는 패트릭의 어머니에게 춤을 배우다가 패트릭을 만나 결혼하였다.
[더티 댄싱]이 관능적인 살사춤을, 그리고 쿠바 혁명기를 배경으로 춤에 몰입된 청춘 남녀의 사랑을 보여준 [더티 댄싱:하바나 나이트](2003년)가 살사, 맘보, 탱고 등을 보여주었다면, [더티 댄싱2](원제:One Last Dance)는 현대무용극을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 온다. 93분 런닝타임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무용극 장면은 패트릭 스웨이지와 리사 니에미 부부의 완벽한 호흡으로 우리를 황홀경으로 인도한다. 젊음의 파괴적인 힘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질풍노도의 삶을 경험한 현자의 지혜는 깃들어 있다.
저명한 안무가 알렉스의 [침묵의 몸짓]을 연습하던 금발의 크리사와 그녀의 연인 트래비스, 그리고 맥스는 연습하던 중 사고를 겪게 된다. 각자 상처를 안고 흩어진지 7년 후, 알렉스가 죽자 추모 공연이 준비되며 그들은 다시 모인다. 과연 그들은 예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호흡을 맞춰 성공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트래비스는, 크리사가 자신의 아이를 낳은 뒤 혼자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열 너댓 살 때 난 내 안의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세계였으며, 내 영혼의 밑바닥은 끝없이 깊고도 깊었다. 많은 사람들도 이것을 느낄 것이다. 그건 바로 모든 인간이 소유한 능력과 위엄이며 상상할 수도 없는 심오한 것이다. 그것이 내 춤의 원천이다.]
[더티 댄싱2]에서 들을 수 있는 크리사의 이 대사는, 사실은 그 역을 연기한 리사 자신의 솔직한 내면적 독백이다. 이 영화는, 패트릭 스웨이지 부부가 춤에 관한 자신들의 삶과 철학을 쏟아 부은 작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이 있다. 특히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침묵의 몸짓]을 공연하는 라스트씬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만약 영화를 보는 까다로운 눈을 가진 당신이라면, 미학적 완결미라든가 극적 구조의 치밀함 같은 것은 잠시 잊어버리고, 오직 춤 그 자체의 황홀한 소용돌이에 몰입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우리들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