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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는 약방에 성도 여덟 사람을 벌여 앉히신 뒤 사물탕 한 첩을 지으시어 그 봉지에 사람을 그리시고 2 두 손으로 약봉지를 받쳐 드시며 시천주주를 세 번 읽으시니라. 3 이어 여덟 사람으로 하여금 차례로 돌려서 그와 똑같이 하게 하신 후에 4 “남조선배가 범피중류(汎彼中流)로다.” 하고 노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5 “갑오년(甲午年)에는 상륙을 못 하여 풍파를 당하였으나 이제는 상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6 장차 조선이 제일로 좋으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388)
박정희 대통령의 부친 박성빈씨는 동학의 접주였다. 동학은 당시 희망을 던져주었지만 동학운동의 실패로 그 후손들에게는 매우 많은 시련을 주었다. 박대통령께서도 부친처럼 살지않겠다고 나폴레옹처럼 일본육사로 가서 훗일을 기약한것이다. 하지만 박대통령도 피는 못속인것일까 ? 훗날 초라한 역사의 들에 아무도 보살피지 않던 그때 그는 동학혁명기념탑을 세우고 뜻을 기렸던 첫 대통령이었다. 시천주주는 동학의 강령주이다.여덟사람은 8방위에 펼쳐지는 대한의 국운을 말하며 그 봉지에 사람을 그렸다는 것은 세운에서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을 말하며 도운에서는 참동학 증산도의 지도자를 말한다. 동학의 역사를 아는것이 근대역사를 아는 길이고 동학의 정신을 통해 대한민국이 개벽의 종주국으로 발 돋움하는 길을 보게된다. 그래서인가 ? 미래를 연구해온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이홍범 교수를 통해 세계미래를 알려면 한국을 알아야하고 한국을 알려면 동학을 알아야 하니 동학을 연구하라는 숙제를 내렸던것이다. 그리고 훗날 아시아이상주의란 책이 하버드대학 3년연속 연구교재로 채택되고 세계유수대학에서 연구교재로 선택된다.
남조선배가 범피중류라는 것은 세계무역으로 이뤄지는 교역로가 바다를 통해서 힘차게 전진하고 경제 외교차원에서 지구촌의 상등나라로 향해가는 역사의 길을 말한다. 갑오년의 꿈은 동학혁명으로 꿈을 이루지못한 첫 갑오년은 실패를 했지만 갑오생으로 와서 세번째 갑오년에 대한민국의 꿈은 인류의 꿈을 안고 세계속에 상등나라가 될것을 말한다. 또한 개벽의 새역사운수가 펼쳐질 개벽실제상황에서 세계를 건지는 남조선배가 출항하는 것을 말한다. 시속에 남조선사람이라 동서 각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사람에게 길운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 사람을 잘 가르쳐라. 는 말씀이 증산도 도전 6편 60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조선배는 앞으로 인류 동서통일과 남북 개벽통일로 가는 과정은 개벽실제상황 제3부 개벽의 문에 대한민국의 국운을 매우 잘 나타낸다. 남조선배는 절대절명 세계개벽의 운세속에서 인류의 희망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역사의 배이며 진리의 배인것이다. 북한은 워낙 살기가 강해서 개벽상황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공산권국가는 신을 부정하고 인륜을 파괴한 역사가 너무 심해서 보은줄에 다걸려 대세에 다 넘어간다 오죽했으면 동남쪽은 살아날 사람이 많고 서북쪽을 살아날 사람이 없다고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셨을까 ?
눈앞에 닥쳐온 개벽을 맞기전에 세계문명사의 흐름을 바꾸게 될 한국의 경제계발은 매우 중대한 남조선국운 회복공사이며 통일을 향해서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쥐고 나서게되는 중요포인트이기도 하다.세운의 국운상승의 전개는 도운으로 결말짓는 인류개벽으로 향하는 대세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 동안 세상운로의 전개 세운世運을 살펴보자.
통일과 상등국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독일은 2차대전 때 로켓, 전함, 제트기, 잠수함, 탱크 등등. 세계 최고 과학을 자랑하던 나라였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미국 영국과 더불어 독일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었을 정도로 기술력과 지식이 탄탄했었다. 그러므로 라인강의 기적은 기적이 아니고 필연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는 항모를 그것도 2차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는 제조능력을 가진 나라였다. 제조력 넘버원의 타이틀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朴正熙와 46년 전에 만나 “한국 10大 강대국 된다”고 했던 美미래학자, 그는...
河周希 月刊朝鮮 기자 2014.03.22.
1973년 11월 13일 박정희 대통령과 허먼 칸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여전히 들리는 건 그의 통화대기음(컬러링)뿐이다. 영남대 최외출(崔外出) 부총장 얘기다. 최 부총장의 통화대기음은 새마을운동의 주제가인 <새마을노래>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를 맡았던 최 부총장은 대선 직후부터 2014년 3월 중순 현재까지 언론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림자 실세’ 최외출, 4월에 책 출간
《월간조선》은 칩거기간 중 최 부총장이 쓴 책의 원고를 출간 전 입수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학 교수, 허먼 칸(가제)>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될 이 책은 4월 중 출간 예정이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최 부총장과 박영숙(朴英淑) 유엔미래포럼 대표, 《영남일보》 이영란 기자다. 책의 추천사는 허먼 칸의 제자였던 제롬 글렌(Glenn)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이 썼다.
책은 크게 6장에 걸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미래학자 허먼 칸 박사의 인연, 허먼 칸 박사가 한국의 발전에 미친 영향, 2014년 이후 국가리더십이 가야할 방향 등을 기술했다. 책을 발간할 4월은 마침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 44주년이 되는 달이다. 칸 박사는 새마을운동의 태동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과 허먼 칸의 관계를 살펴보자.
허먼 칸은 어떤 사람인가. 1922년 2월 15일, 유럽에서 넘어온 유대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석사를 마쳤다. 경제 사정상 박사 과정은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미국 최초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Land Corporation)에서 근무했다. 허먼 칸의 아이큐는 매우 높았다. 학창 시절은 물론 그 이후까지 ‘천재’라는 별칭이 그를 쫓아다녔다.
랜드연구소 근무 당시, 허먼 칸은 에드워드 텔러(Teller), 한스 베테(Bethe) 등과 함께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나리오기법이라는 미래예측 기법도 개발했는데, 이 방법으로 허먼 칸은 핵전쟁 가능성을 예측해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Kubrick)이 이때의 허먼 칸을 모델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를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61년 랜드연구소를 나온 허먼 칸은 허드슨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미국 국방정책에 조언을 하는 동시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정부 기관, 민간 기관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열핵전쟁론》(1962)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1962) 《에스컬레이션》(1968) 《세계는 이렇게 변하고 있다》(1972) 등 핵전략, 안전보장, 사회변동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의 저서 중 《세계경제발전, 1979년과 그 이후(World economic development 1979 and beyond)》는 한국에서 《대전환기》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번역한 이는 김윤환(金潤煥) 전 신한국당 대표였다.
대통령과 미래학자의 만남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하는 미래학자 허먼 칸이, 당시만 해도 낙후된 분단국이었던 한국의 지도자 박정희를 만난 계기는 무엇일까.
기존에는 김성진(金聖鎭) 전 문화공보부장관이 허먼 칸을 박 전 대통령에 소개한 걸로 알려져 있다. 《월간조선》 2009년 11월호에 실린 김 전 장관의 인터뷰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인터뷰는 김 전 장관이 암으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였다. 관련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만년에 전통문화 복원과 관련, 김성진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김성진 전 장관의 말이다.
“우리나라가 계속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면 유구한 문화전통을 가진 나라란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물으세요. 궁리 끝에 미래학자 허먼 칸 박사를 박 대통령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는 전국을 조사했고, 그 결과 ‘전통문화가 밀집돼 있는 곳은 경주이고, 경주 일대를 종합개발하는 게 첩경’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지요.” 박 대통령은 허먼 칸 박사에게 현대건설이 유조선을 처음 만들어 시험항해하는 항공사진을 보여주며, “이 유조선을 우리가 만든 것이다”라고 하자, 허먼 칸은 “바로 이거다, 유조선의 시험항해를 경주 일대에서 한다면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첨단 기술력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책에는 김 전 장관의 주장과 달리 두 사람의 인연이 더 일찍부터 시작됐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칸 박사와 함께 근무했던 준 이소무라(Isomura)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증언에 바탕한 주장이다. 내용은 이렇다.
1966년에서 1968년까지 칸 박사는 미국에 군사전략 자문을 맡고 있었다. 핵전쟁 반대운동을 하던 칸은 핵폭탄 피폭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일본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와카이즈미 게이(若泉敬) 교토산업대 교수가 세운 세계외교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와카이즈미 교수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내각의 외교자문에 응하면서 일본 총리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허먼 칸과 와카이즈미 교수는 친분이 깊었다고 한다.
핵전쟁 저지 방법과 함께 베트남전쟁 전략을 연구하던 허먼 칸은, 베트남전쟁을 들여다보면서 한국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는데, 파병 연인원은 총 31만 3000여 명에 달했다.
“한국은 반드시 10大 강대국 된다”
1968년 일본을 방문한 허먼 칸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와카이즈미 교수에게 전했고, 와카이즈미 교수는 그와 함께 한국을 찾아 박 전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 와카이즈미 교수가 사토 내각의 외교안보자문관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허먼 칸과 박 대통령이 비밀리에 만난 이유는 당시 국내에서 일었던 베트남전 파병 반대 의견을 의식해서였다고 한다. 베트남전 전략을 연구하는 미국의 학자가 베트남에 많은 군인을 보낸 나라인 한국의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을 터다.
허먼 칸의 다른 지인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우주공학자 테드 고든 박사와 유엔미래포럼의 회장이자 밀레니엄프로젝트의 회장인 제롬 글렌 박사는 “허먼 칸이 60년대부터 이미 한국을 자주 왕래했다”며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 가난하고 발전하려면 멀었다고 했지만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이 10대 강대국이 될 것이라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이들의 증언이 사실일까. 기자는 예전 신문 보도를 살펴봤다.
1973년 8월 10일 조흥은행 강당에서 열렸던 허먼 칸 박사의 강연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
1968년부터 허먼 칸은 갑자기 한국 신문에 단골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논문이나 발언을 인용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1968년 3월 14일 자 《경향신문》은 ‘미국의 핵전략 전문가 허먼 칸 씨가 멀지 않아 월남을 방문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제롬 글렌 회장은 허먼 칸이 베트남 방문 길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증언했다.
1970년부터는 거의 매해 허먼 칸의 방한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허먼 칸은 1970년 8월에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서울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에 참여했고, 1972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박 전 대통령이 허먼 칸을 접견했다는 기사도 자주 나왔다. 1973년 11월 13일 자 《경향신문》의 기사다.
<박정희 대통령은 13일 상호 방한 중인 허먼 칸 미 허드슨연구소 소장의 예방을 받고 환담했다. 허먼 칸 박사는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개발에 대한 가치관을 기초로 한국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개발의 가치관과 이념에 대해 인식을 더욱 북돋워 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담 내용은 이들의 만남이 처음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허먼 칸, 새마을운동 조언
신문 보도를 고려해 보면 김성진 전 장관의 주장처럼 박 전 대통령과 허먼 칸의 첫 만남이 1970년대 후반에 이뤄졌다기보다는 1960년대 후반이나 적어도 1970년대 초반에 있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한 듯하다.
허먼 칸은 어떤 식으로 박정희 정부를 도왔을까. 당사자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 살아 있는 이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이가 허먼 칸의 제자였던 제롬 글렌 박사다. 그의 증언을 인용하면 이렇다.
“허먼 칸은 한국 방문에 앞서 내게 많은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나도 젊은 시절에 그런 내용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도 잘 모르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정리해 줬다. 미래에 부상할 산업과 기술 발전에 대한 예측이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한국의 지리적 조건이나 사회 현상, 한국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전략을 짠 것은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래기술 예측에 가장 관심을 가진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기술, 어떤 산업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는지, 언제 부상하는지, 세계시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한국이 잘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디에 투자하고 어떤 정책으로 어떻게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지 등을 정밀하게 허먼 칸에게 묻곤 했다고 한다.”
칸 박사와 박 전 대통령, 두 사람의 협력 관계가 잘 드러난 예로 어떤 사업이 있을까. 바로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들 수 있다.
1970년 11월 13일 젊은 노동자 전태일이 청계천변에서 분신 자살을 했다. 글렌 회장의 전언에 따르면 분신 사건 직후 허먼 칸을 만난 박 전 대통령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박 전 대통령에게 허먼 칸은 “앞으로 도시노동자운동이 더욱 격렬하게 벌어질 것”이라며 “농촌에 있는 인력을 훈련시켜서 도시노동자로 유입시키되, 이런 일을 녹색운동과 정신개혁운동과 함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막 시작한 새마을운동에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조언이다.
1973년 7월 24일 자 《매일경제신문》은 ‘한국을 방문한 허먼 칸 박사가 김현옥(金玄玉) 당시 내무부장관을 만나 약 1시간 동안 새마을운동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브리핑을 들은 허먼 칸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농촌주민의 일대정신 개혁운동”이라며 “한국은 멀지 않은 장래에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여 농촌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허먼 칸의 저서 중 《세계경제발전, 1979년과 그 이후》란 책이 있다. 앞서 설명했듯 《대전환기》라는 제목으로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가 번역한 책이다. 허먼 칸은 1970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에는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있다. 글렌 박사는 그 부분에 대해 “허먼 칸 박사가 박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책에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과 환경 발전의 병행 강조한 허먼 칸
책 속에서 허먼 칸은 “한국 정부가 도로, 철도, 항만, 통신시설 등 인프라 확충에 힘쓴 것은 미래적인 시각이었다고 칭찬하며,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 국영 금융기관이 나서고, 화폐가치를 절하하는 등 그야말로 힘이 센 한국이 되도록 꾸준히 정책을 추진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한국은 국민들의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 즉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통합이라는 훌륭한 문화가 있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단호하고 자유 신경제학자가 등장해 대통령을 지원하므로 박정희 정권은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계획 외에 ‘그린벨트’ 정책에서도 박 전 대통령과 허먼 칸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정식 명칭이 ‘개발제한구역’이지만 그린벨트로 통용되는 환경보전 정책은 박정희 정부의 최대 치적 중 하나다. 20세기 여러 나라의 국토계획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허먼 칸은 1970년대 당시 ‘그린 프로젝트’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한 강연에서 지구촌이 개발과 함께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다. 개발과 환경보호의 조화다.
칸 박사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환경운동의 논리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성장에 따른 지구멸망의 가능성은 환경보존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지구촌이 그린 프로젝트를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 국가를 돌면서, 비료로 질산염을 과용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그린벨트 정책이나 녹색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서도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했다. 허먼 칸은 1961년 랜드연구소를 나와 허드슨연구소를 설립할 당시 ‘과학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인재양성이 너무나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인문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래사회 변화는 과학기술이 이끌어 나가는 데 미국은 준비가 안 돼 있다. 교육 변화를 이끌기 위해 허드슨연구소를 만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후에 간행된 저서 《세계경제발전: 1979년과 그 이후》에도 같은 요지의 기술이 나온다. ‘미국은 과학기술교육 중시 쪽으로 선회했고, 아시아도 이제는 과학기술교육, 기술인재 양성 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식이다.
한국 지도층에 희망 심어 주다
기자는 허먼 칸에 대해 알고 난 후 한국의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을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구상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한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 국민, 특히 사회 지도층에게 ‘우리도 발전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준 것이다.
허먼 칸은 70년대 내내 수없이 한국을 방문하며 강연을 하고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시종일관 “한국은 반드시 발전하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다”고 주장했다. 허황한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예측이니 그의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희망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1972년 8월 전경련과 《동아일보》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허먼 칸의 강연 내용을 보자. 《동아일보》 1972년 8월 10일 자 내용이다.
<허드슨연구소의 연구 활동 중에는 한국에 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중략) 한국은 퍽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몹시 가난한 나라도 아니다. 중국 본토를 제외하고 중국문화권에 속하는 나라, 이를테면 한국, 일본,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연 7%로 잡고 인구증가율을 연 2%, 연간 국민소득 증가율을 5%로 잡아 본다면 한국은 10년 후에는 중진국의 수준에, 25년 후에는 대중소비단계에 도달할 것이며, 그 후 10년이면 농업, 공업, 대중소비단계의 다음 단계인 탈공업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예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시나리오다.>
‘유교적 자본주의’ 개념 제시
허먼 칸은 왜 반복적으로 한국의 발전을 독려하는 주장을 펼쳤을까. 고은(高銀) 시인은 《경향신문》 1996년 1월 21일 자에 쓴 칼럼에서 ‘허먼 칸이 돈을 받고 그런 주장을 했다’고 썼다.
<한국에서는 박정희를 추켜세우기 위해서 허먼 칸이라는 뚱보가 자주 왔다. 국제 사기꾼이라는 악평을 듣기까지 하는 그는 언제나 한국을 핑크빛으로 찬양했다. 그것은 경제학자 로스토의 한국경제 이륙단계설과는 다른 무조건적인 찬양이었고, 그 찬양의 보수는 꽤 고액이었다 한다.>
제롬 글렌 박사는 “허먼 칸이 한국정부로부터 고액의 보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며 “허먼 칸이 한국이 발전할 거라 외친 데에는 다른 요인이 있다”고 했다.
허먼 칸은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했다. ‘21세기가 되면 서구적 자본주의의 자리를 유교적 자본주의가 대체할 것’이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친 이가 바로 그다. 또한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경제발전이 더욱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된다는 주장도 폈다. 허먼 칸은 자신의 예측이 옳다는 근거로, 한국의 성장을 들고자 했다는 것이 글렌 박사의 설명이다.
허먼 칸과 박 전 대통령, 비슷한 시기에 삶의 정점을 찍었던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등졌다.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4년 후인 1983년 7월 8일, 허먼 칸이 세상을 떠났다. 61세, 많지 않은 나이였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허먼 칸은 생소한 이름이다. 허먼 칸이 20년만 더 오래 살았다면 지금쯤 앨빈 토플러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능가하는 미래학자나 전략가로 알려져 있지 않을까. 허먼 칸의 행적을 좇던 기자에게 문득 든 생각이다. 그가 40여 년 전 한국 사회에 보여준 밝은 미래를 2014년의 한국은 어떻게 이뤄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은 독자들의 몫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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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심이 양심을 이기고 비양심으로 승리한자를 부러워하고 정위롭지 못한 세력이 정권을 잡고 공공제는 민영화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두고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르는 이 현실이 과연 올바른건가요?
장황하게 글로 표현할 필요도 없더 생각해요 양심과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가 희망있는 나라죠
그건 님이 가진가치관의 기준점입니다 최악이던 최선이던 어디가 기준점이냐 이죠 !
양심과 비양심을 개인의 가치관으로 나누는게 맞나요?? 보편적 가치관에 따라 나누는게 옳지 않나요??
가령 신호대기하고 있는데 끼어들기하는 것 같은 행위를 비양심이라 하는게 맞지 않나요?? 끼어들기해서 먼저가고 잘되는 세상이 인류보편적 가치관에 비춰볼때 정의로운 새상은 아니죠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치는 부패한 독재정치보다 그 자체로 더 나쁘지는 않지만 국민성에는 더 나쁜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부랑자, 극빈자 광신자 등 계층 또는 구걸하지 않으면 훔치거나 굶어야 하는 계층이 선거권을 갖게되면 파괴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권력의 승계나 세습이나 추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간혹 현명하고 정의로운 권력자가 더러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자는 더 악한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무슨 이야기 하시는지 ? 이정부던 김대중 노무현시대던 다 똑같습니다
해피아 관피아 검피아도 있고
역사의 대세에선 그놈이 그놈이지요 !
제도가 바뀌먼 뭘 하냐 ?
사람이 그 사람들입니다 대국적차원에서 국가경쟁 인프라를 깔았던 그 시대 이후엔 적어도
지 사람 만들기 줄세워서 연결하기
입니다!
제가 글을 인용한 이유는 핸리죠지가 말한 사회현상이 대한민국의 사회와 닮아 있어 남긴겁니다
또 노암춈스키가 말했죠 부패한 정부는 모든것을 민영화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 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 최저질의 전제정부로 변화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 분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는 먼 훗날의 경우가 아니다.
핸리죠지
진보와 빈곤, 1879
그래서 부의 평등을 외친 사회주의가 독점 자본주의가 성공했나요 ?
부의 평등이 무조건적인 평등을 말하는걸로 오해마세요
고른 분배와 무조건적인 평등은 다르다 생각합니다
세세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제님께서도 앞으로는 가난한자들의 세상이라고 하셨던것이 생각나네요
논점이 비켜간듯한데
저는 인용구에서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현상에 주목하는게 아니라 비양심 정의롭지 못한자 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사회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싶네요
전 어느 정당을 지지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권력을 가진자들의 다수는 비양심과 정의롭지 못한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권력을 가지자들은 양심이 있던자들이었기에 그 동안 해양경찰과 청해진 등등의
관피아 하나 처결못해서 그대로 있었나요 ?
누구 옹호하진 않았은데 제가 누굴 지지했나요?? 그렇지만 굳이 따져보면 새누리당 한나라당 정권보단 권력을 나누려했고 언론에게 중립성을 강요하려했으며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았던 지금 야당이 나아보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잘하진 않지만 최악보단 차악이 낫죠
어떤 것들때문에 예전에 권력을 가진자들니 비양심이라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자료들 찾아 상세히 알려드릴 용의가 있네요
@자연in도시 제가 보기엔 차선책으로 야당을 지지하시는데 그것이 잘못된건 아닙니다 ! 다만
다양한 시각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동방땅 네 ~ 동방땅님도 다양한 시각에서 선택하고 지지하시고 판단하시는것이길 바랍니다
박정희를 추켜세우는데 초점인것 같은 기사
객관적으로 봅시다.
발전. 잘살자. 박정희의 카리스마로 국민의 그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집중시킨것은 공로로 칩니다.
경제인과 미국의 조언을 받아들여 농업에서 공업으로 선회시켜서 공업발전에 가열차게 열심히 한것도 공로로 칩니다.
그때는 그것으로 성장을 쭉 하게되었습니다.
지금와서 봅시다. 지금은 정체기죠. 무엇이 정체를 만들고있고 손실을 일으키고 있나요.
정치 불안정, 사회 양분화, 좌우 분열...
근데 이런걸 만든데 기인한 사람은 누군가요. 박정희가 큰 몫을 차지하죠.
그때 그 환경에서 성장하는데는 공로가 있지만, 지금의 정체를 만든 원인으로써는 박정희의 해악은 크다고 볼수있습니다.(이승만이 시작이죠)
정경유착, 정치에 비리가 만연되고, 권력이 국민들을 짖누르는 분위기를 조성시킨것, 좌우이념을 가지고 친일파들과 권력자들의 보호막을 치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의 정치개판, 국민분열, 좌빨종북타령, 국가정보기관이 정치공작하는 일, 이런것들의 원인을 많이 제공하고 키운 자입니다.
지금 이때에서 보면 너무 큰 폐단이고 손실을 발생시키고있습니다. 친일파(박정희 본인도 해당)를 두둔하고 사실은 축소 조작 은폐하는 흐름은 또한 국내역사왜곡을 만들어냈고, 근현대사를 국민들은 있는그대로 알지못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 상고사에도 연관이 되는데, 일본의 역사왜곡 차이나의 역사왜곡에 우리정부와 우리역사학계가 제대로 대처하지못하는 지경을 만들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외교에도 심각한 손실을 일으키고있습니다. 돈좀 벌면 뭐하나요. 역사와 외교에서 밀리면 다 끝나는건데 말입니다. 이건 미래에 통일전략에도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차이나 의존성을 높이고 차이나는 동북공정과 국경선 근방에 대규모 군을 주둔시키고 훈련도 하는등 북한땅을 집어삼킬 계획과 기회가 오면 집어삼킬 준비도 하는 마당인데...
우리가 돈만 좀 벌고 북한땅을 빼앗긴다면? 미래의 후손들은 어떤 한국에서 살까요. 또다시 조선시대처럼 차이나에 사대하지않으리란 장담을 할수있을까요? 미개한 원시인에서 중국문화 받아 겨우 문명인이 되었다고 역사교육시키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옛부터 사대만 해왔다고 아는 아이들이 북한땅마저 없는 상태로 차이나의 중화주의(차이나가 세계 짱이다. 차이나가 대빵이다 나머지는 다 꿇어서 말들어라)에 당당하게 목소리낼수있을까요
예언에 나온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고 생각이 머저리같은데 저절로 그게 이뤄질까요? 어림없습니다.
약자를 짚밟는 자들이 승리하고, 사람을 해치는걸 권력의 이름으로 당연시하고, 잘못을 지우고 거짓으로 포장해서 선전하고
그것을 아무렇지않게 받아들이는 국가가 세계1류가 된다? 지구망할일있습니까. 그딴 나라가 1류하는건 지금동안의 역사입니다.
그거 답습해봐야 뭔가요. 예언에 나오는게 그런 나라인가요? 왜곡된 역사를 고치지못하고, 권력의 왜곡 역사를 고치지 못하고
문제의 심각성에 눈뜨지 못하는 국민들이 지도자 뽑는이상...
지구의 일은 신이 해주는게 아닙니다. 인간이 하도록 신이 도와주는것뿐
결국은 인간이 해야하는겁니다.
예언속에 왜 지구 갈아엎는게 나올까요? 바로 그거때문에 갈아엎는것일겁니다. 왜곡과 거짓과 잘못 흉악의 인간들이 도저히 고쳐지지 않으니 고쳐지지 않고서는 예언속의 미래세상이 불가능할테니까 (환경포함)갈아엎는거죠. 돈주고 직책얻고, 국민의 돈을 훔쳐쓰다가 걸렸는데 고발한 사람을 뭉게고 바른말하는 자들을 뭉게버리고 뿔난 국민마저 빨갱이니 뭐니 덮어씌워서 두들겨패는 놈이 미래에도 계속 산다면? ㅎㅎ 그러니 갈아엎는게 필요한겁니다. 상식적으로... 인간의 인성은 신이 짠!하고 바꿔줄수있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하죠. 그 영역은 신도 범접할수 없는 신이 허락한 제공한
신성의 영역입니다. 그 영역은 인간 스스로 각개인이 갈고닦고 다듬고 발전 성장시킬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경험하는것이고 겪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반성하고 목표를세워 노력하는겁니다. 여러생동안... 예언에는 때가 머지않았다고 나오죠. 근데 이 인성을 미래세상에 준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엄청 나간 사람들 죄를 지금도 계속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할까요? 미래에 같이 가면 거기서 잘해나갈까요? 적응할까요. 아님 거기서도 습관대로 개망나니 버릇나올까요.
예언을 가볍게 생각하지맙시다. 그리고 신이 다 알아서 해주겠거니라거나, 자연히 될것처럼 생각지도 맙시다. 본인들이 혜택을 입을수있다고 생각지도 맙시다.
노력없이는 다 패할겁니다. 준비된 자들만 도달할수 있을거에요. 자격이 있는 자격을 갖추기위해 노력한 자들만이... 이또한 예언에 나오는 부분인데 보통 자기생각과 달라서 간과하죠! 지나치고 보질 못하죠.
지금 우리 사회의 불합리함부터 볼수있어야하고, 노력하기 시작해야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그 아름답다고 말해지는 세상에서 살수있는 인간으로 준비될테니까요. 준비를 해야 적응하지. 전혀 성향이 다르게 살면서 어찌 적응을 하고 불협화음 만들지않고 살수있을까요.
세계적으로 봤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예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히들러가 있겠지요....
서양강대국간의 식민주의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1차대전에 휘말리고, 패배한뒤 굴욕과 경제파탄에 허덕이던 게르만 민족을
다시 잿더미에서 부흥시켜 위대한 아리안 제국을 이루려던 대야망을 가지셨던 분이지요. 물론 약간의 희생을 감수해야했지만.
안타깝게도, 히틀러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중에 하나는 바로 '패전'의 죄지요.
승리는 모든 걸 정당화 시킵니다. 패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은 '종전'이라 우기듯이
승리만 했으면 다 잘풀렸을 일이겠지요. 덩달아 열등한 조센진들도 더 빨리 근대화 되었을
테고, 찢여죽여도 분이 안풀릴 이순신때문에 일본은 패배를 맛보고, 조금만 더 빨랐어도 핵폭탄 먼저 만들어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빌어먹을 놈의 원자탄 때문에 또 다시 패전을 맛보고
승리만 했으면 다 잘 풀렸을 텐데, 그랬으면 열등한 조센진들도 당당한 황국신민으로 조금이나마 종자가 업그레이드 되었을 텐데..물론 약간의 희생은 있었겠지만...
그깟 영혼이 좀 썩으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몸둥이도 다 썩을것인데. 결국은 선이 악을 무찌르고 빛이 어둠을 밝힐거라는 미신은 열등한 넘들이 자위하는 짓거리고
힘이 곧 정의임을 증명해온게 인류역사 아니겠습니까.. 강한 인간들이 약한인간들 짐승처럼 잡아죽여
개먹이로 쓰고 씨를 말렸던게 어차피 인류의 역사 아니겠습니까. 더 많이 가지고 더 잘 살기위해 암요 더 잘살아야지요. 베풀고 청빈하게 살라는 것들은 성자가 아니라 실은 나사 빠진 병신들인거지요.
부와 권력만이 이 지상에선 최고의 덕목이며, 구세주라는 것들이 올지, 우리보다 300만년 앞선 외계인들이 올지, 인간을 만들었다는 여호와라는 족속들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라는 이 별에 사는 족속들 다 잡아죽여다 지들 키우는 애완견 사료로 쓰던, 지구 자원 약탈해가고, 인권이네 자유네 평등이네 선이네 악이네 따지는 것들 다 신식무기로 몰살시키더라도
그래도 다 지들 잘 살려고 하는 것이니 이해해줘야죠.
물론 그때가 되도 외계인 편에 빌붙어서 인간사냥을 위한 충실한 사냥개로 봉사해 신임을 얻으면, 혹시 압니까 지구총사령관으로 임명해줄지, 그러면 정말이지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즐길수 있을텐데,
물론 어느정도 인간들의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암요 잘 살아야지요.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습니까...누이 좋고 매부좋고.. 나머지 것들은 다 뒈지더라도.
신식 외계인 무기로 깔끔하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아니 '인간적'인 방식이 아닌 선진적이고 신식인 '외계인'방식으로..
우월하고 강하고 뛰어난 게르만 정신을 본받아, 열등하고 미련하고 못생기고 병신인것들은 다 깔끔하게 솎아내는 새지구 운동을 펼쳐나가야겟지요.
아름다운 지구별이 되겠지요. 부와 명예와 권력이 충만한..... 어차피 히틀러가 됬던 스탈린이 됬던 어떤 인간들이 나섰던, 예수가 왔던 부처가 공자 맹자 별놈들이 왔던 뒤질넘들은 뒤지고 잘 살 넘들은 잘 들 살았지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면서. 잘사는게 중요합니다. 예수든 미륵이든 누구든 다시 오든 말든. 그게 대수겠습니까. 그저 잘 살아야지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하라던 그 개풀뜯어먹는 소리를 이해하려면 이 인류라는 종자들은 앞으로도 300만년은 더 걸릴듯... 한번 싹쓸어없애고 종자개량이 되지않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