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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수 아우 이야기
굴비 한 마리 올린 밥상을 들고 온 마이가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말과 여섯 성조 자기 나라말로 비빔밥 언어를 만들어 종알거린다.
오빠가 듣거나 말거나 중언부언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계속 질질 흘린다.
하루 저녁 받아 놓으면 능히 이불 빨래도 가능하겠다. 이럴 때 주방을
총괄했던 마이 사부님 <도수> 아우가 있었더라면, 따발총 말투로 소리
질러 단박에 뚝 그치도록 수리를 했겠지만, 오빠에게는 그럴 재주가 없다.
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주방에서 도마 소리보다 현지어가
더욱 난무하면 도수 아우는 냅다 <에라이 썩을 것들> 소리를 질렀다.
적벽대전에서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휘두르던 도수 아우의 그 한마디는
뜨거운 한낮을 적시는 시원한 한줄기 스콜 같아서 현무도 아우의 무기를
빌려서 심심찮게 건방을 떠는 마이를 향해 힘껏 휘둘러보았다.
“에헤 라이 썩을 것”
그런데 빌려오는 동안 무엇이 어디로 샜는지 똑같은 소리를 듣고도 마이는
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에이, 옵빠는 헤헤” 허리를 비틀면서 실실 웃기까지 했다.
하긴 도수 아우가 들었던 칼, 도마 치는 소리가 드럼 치는 소리보다 더 감미롭던
그 칼을 내가 잡았다손 치더라도 나는 망고 하나 제대로 깎지 못한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베트남에서 전세기로 모셔온 개성이
강한 많은 한국 사람들과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얼러가면서 영화 촬영을
하려면 도수 아우처럼 따발총 말투가 필요했다. 상대가 자세히 알아듣든가
말든가 그건 차후 문제고, 먼저 내 속에 쌓인 스트레스부터 풀어야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차분히 얘기할 때보다 따발총 수법이 더 잘 통했다.
어차피 션찮은 현지어 대신 내 월급 받는 너희가 정신 차려서 눈치로
때려잡으라는 것이 먹힌 것이다.
국교 정상화 전에 그들과 치룬 전쟁 영화 촬영을 시도한 그 자체가 무리였다.
그것도 그들 안방에서. 우리들만의 사고와 잣대를 들이대고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 금방 들어났다. 일본, 프랑스, 미국, 거슬러 올라가 몽골의 칭기스칸이
저지른 오판을 우리도 답습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정부의 끝없는
딴죽과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귀신은 사전에 손발을 맞추었는지 낮과
밤을 나누어서 찾아왔다. 그들은 흡사 흡혈귀처럼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삶의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푸념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마이 오빠들이었다. 마이 큰 오빠는 팔레스 호텔
사장이었고 바닷가 빌라를 관리하는 사람은 마이 작은오빠였다.
그러므로 촬영 팀이 이거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탈탈 털고 필리핀으로
철수 해버리면 호텔에 손님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뿐이랴
들불처럼 일어나던 롱하이 경제도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므로 동병상련끼리 어우러진 술자리는 더욱 차지고 동지애까지 가미돼
해만 떨어지면 입에 붙은 술잔은 이슬이 무거워 구를 때까지 떨어질 줄 몰랐다.
술안주로는 마이가 잡아 온 마른 한치하고 투구 게 알이 전부였다.
투구 게를 통째로 구워 앞쪽을 헤집으면 그곳에 팥알 크기의 알이 들어있다.
오들오들 짭조름한 것이 술안주로 너무 맘에 든 나머지 우리는 투구 게 알을
일러 “롱하이 캐비아”라고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안주가 부족했다. 마이는 식당일로 바다에 나갈 수
없는데도 눈치 없는 두 나라 오빠들이 툭 하면 뭉쳐 남국의 밤까지 팬 결과였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잃어 돈독한 우정을 다지는 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부실한 안주 때문에 술잔을 들고 입맛을 다시자 마이 오빠들이
손사래를 치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소련제 AK47 소총을 들고 일어섰다.
원시시대 때부터 내려온 남자의 본능이 꿈틀됐다. 개머리판이 어깨를 때리는
짜릿함을 만끽하려고 따라나섰지만, 퇴화된 인간의 사냥 본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냥감은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조금만 부주의 하면
뱀을 밟아 질겁하고, 베트콩처럼 소리 없이 옷 속으로 파고 든 산거머리는
경계대상 1호였다.
사냥감으로는 멧돼지·노루·고슴도치·야생 닭 등속을 잡았는데, 아무것도
못 잡은 날 총구는 으레 나무 위 원숭이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잡아 온
사냥감을 까맣게 불에 그슬린 다음, 설 휘어 놓은 갈퀴 같은 원숭이
손을 정글도로 툭 쳐서, “알로우 안 박!”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툭 던졌다.
다음 순서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질겁하는 내 꼴을 보고 자기들 배를 안고 뒹구는 것으로.
자기 오빠들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나에게 언제부턴가 마이가 오빠라 불렀다. 자기 큰 오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나를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 무슨 문제겠는가 마는, 이것이 툭하면 노처녀 푸념으로 이어져 끝 간 곳을 몰랐다.
“옵빠 생선 뼈 조심해, 조기 대가리엔 단단한 뼈가 들어있어.
한국 사람들은 밥을 왜 그렇게 빨리 먹어, 밥 먹기 시합해?
그리고 술은 왜 또 그렇게도 무지하게 퍼마셔,
아침에 콩나물은 어디 있다고 찾아,
설령 콩나물을 구해서 끓여주면 먼 고춧가루는 그렇게 많이 넣어?
어제 술로 망가진 속이 또 요동을 치잖아.
또 된장도 아닌 붉은 고추장에 푸른 고추도 아닌 붉은 고추는 왜 찍어 먹어?
가만 보니까. 생마늘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한국 사람들은 승질이 그렇게 급한거야.
맞지 옵빠?”
이럴 때 마이 태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는 어느 성인께서 사이공 초라한 내 밥상 앞에 강림하신 것이다. ‘어쭈구리, 이 녀석 봐라. 이거 모조리 내 얘기가 아니더냐? 옴 핑계 대고 사타구니 긁는다더니 이것이 시방 은근히 이 옵빠를 갈구고 있어야, 월급은 제때 지급했는데?’
마이가 한치를 잡으러 바다에 나갈 때는 앞도 없고 뒤도 없는 한 평쯤 되는 둥그런 멍텅구리 대바구니 배를 타고 나간다고 했다. 파도에 요동을 치며 고기를 잡던 마이는 육지에 두 발 단단히 딛고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에이 이까짓 것> 취급을 했다.
그러기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자기 생각과 다르면 말 방귀 소리로 넘겼고, 건넛집 병아리 한 마리 잊어먹었다는 소리로 여겼다. 거기다 감방까지 경험한 처자니 일러 무엇 하리오. 이는 곧 전쟁을 치른 병사를 예비군 훈련장에 모셔다 놓은 꼴인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마이의 이런 고약한 버릇은 내 밥상 앞까지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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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의 달밤을 불면으로 지새우도록 활약한 하얀 아오자이 차림의 공가이 귀신부터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영화 하얀전쟁 촐영 배우들이 묵은 호텔에 나타나는 귀신 이야기가 고국 신문에 실렸단다. 기자들이 촬영현장을 다녀간 뒤에 들려오는 소식이었다. 신문에 났다고 해서 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걸, 나는 미련하게도 영화를 만들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나는 내가 본 것 만 이야기 할 것이므로..,
수시로 정전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그 계절은 롱하이의 4월에 해당된다. 뚜렷한 사계절 사이클에 적응된 우리의 감각 기관은 건기와 우기뿐인 남국에서는 계절 감각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국은 그야말로 하룻밤이 천금이라는 사월이었다. 날이 새면 귀신을 보았다는 배우들이 하나 둘 늘어만 갔다. 옥상에서 본 그녀를 복도에서도 마주쳤으며, 어느 때는 침대 옆에서도 나타나는 바람에 배우들이 그야말로 미치고 폴짝 뛸 지경이었다.
그녀는 검은 생머리에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옥상에 자주 출현했기에 전망 좋고 시원한 옥상은 기피 장소 1호였다. 4-5월은 건기 끝이라서 하루건너 정전이 되었다. 온종일 땡볕에 촬영을 하고 물먹은 휴지 같은 몸을 뉘다가도 전기가 나가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사자를 만난 하이에나 눈빛으로 야자수 아래를 어슬렁거렸다.
낮에는 불볕에 시달리고, 밤이면 귀신을 피해 밖으로 내몰렸다. 편히 쉴 수도 없는 무더운 월남의 달밤은 그 자체가 바로 악몽이었다. 인간이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귀신이 아니다.
점차 해괴한 일들이 일어났다. 피우다 놓은 담배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물은 어디에도 흐르지 않은데 자고 일어나니 방안이 질퍽하다. 샤워하고 나오던 통역 이*왕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 알몸으로 바나나를 앞세우고 밖으로 냅다 뛰었다.
이*왕은 사이공에서 탈출해 부산에서 살다온 난민 출신이었기에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악센트 강한 사투리와 뒤섞인 여섯 성조 베트남어는 성능 좋은 따발총 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왕이 샤워를 한 방은 내가 도수 아우하고 지난밤에 함께 자던 방이었다. 통역이 너무 더워서 샤워 좀 하고 나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키를 건네준 뒤 벌어진 일이다.
급기야는 오줌보 약한 배우 하나가 그 유탄에 맞아 외국인 전용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촬영이 어려운 배우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나의 손목에 감겨있던 침향 묵주를 벗겨 입원환자의 팔에 끼워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봐 잘생긴 친구, 이건 한국 신부님이 축성해 주신 거야. 이걸 차고 있으면 귀신이 안 나타날 거예요.”
“예!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은 부잣집 막내처럼 힘차게 했지만, 차도가 없어 결국 귀국하고 말았다.
인석이 귀신에 쫓겨 귀국하기 전 이런 일로 내 혼을 쪽 빼놓았다. 자기 엄마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 하도 애절하게 사정하는 통에 병원 간호사를 선물로 구워삶고 통화료를 두둑이 내는 조건으로 병원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직항도 없고 펙스도 사이공 중앙 우체국에서만 부칠 수 있을 때라서 한국과 전화가 쉽지 않았다. 한 30분 교환하고 씨름 하다가 드디어 서울하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런데 자기엄마하고 통화하는 소리를 곁에서 듣던 나는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엄마 정지영 감독하고 *일필림 사람들 삼촌에게 말해서 혼내주세요.” 엥, 이 녀석 봐라 아파서 엄마하고 통화 한데서 연결해 주니까. 애먼 사람들을 갈궈야. 통화가 끝나자 물었다.
“이봐. 삼촌 뭐하는 사람이야? 왜 정감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네 삼촌한테 혼나야 하지?” 녀석이 뭐라고 궁시렁 거렸다. 그 순간 아하! 치료가 어렵겠구나. 귀국 조치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입원했던 배우가 귀국한 뒤 함께 점심을 먹던 젊은 배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한국 간 친구 삼촌은 뭐하는 사람이예요?” 그는 앓던 이 빠졌다는 듯이 시원한 표정으로 날름 말을 받았다.
“그애 삼촌요? 신문기자예요. 스포츠 신문 *기자”
“오호! 그래 한국은 스포츠 신문기자가 그렇게 쎄나? 자기 엄마에게 정지영 감독하고 나머지 모두 죽여 버리라고 해서 난 공항 출입국 파견 안기부 계장 정도는 되는 줄 알고 떨었잖어?”
“아니, 그런데 사장님이 왜 떨어요?”
“나? 왜냐하면 내가 외무부에서 발행한 특정국가 여행허가 기간이 벌써 넘어 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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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녀석은 갔어도 귀신은 계속 출현했다. 귀신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나면 베트남 정부의 딴죽이 기다리는 아침이 왔다. 둘은 사이좋게 교대로 우리를 발광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해가 떠도 걱정 달이 떠도 걱정인 날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밤이면 설치는 귀신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베트남 관료들의 행태를 고발하겠다. 촬영이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이런 일도 있지 않았겠느냐. 공중전을 촬영하려고 베트남 파트너에게 미군이 사용했던 헬기를 빌려 달랬다. 그들은 미군 헬기는 없다고 한마디로 딱 잘라버렸다.
“에이, 그러지 말고 빨리 가져와라. 촬영 늦어진다.” 채근하는 우리에게 “아니야 정말로 없어, 유엔 감시 하에 모조리 캄보디아로 넘겼다니까?” 손사래까지 치며 제법 논리적으로 나왔다.
“그럼 다른 나라에서 빌려와서 찍어야겠구먼.” 나중에 딴소리 못 하도록 앞을 꽉 눌러 놓고 등을 떠보았지만 “그렇게 해”라고 대답이 아주 뚝 부러졌다. 수소문 끝에 서울항공에 의뢰해서 헬기는 싱가포르에서 오게 되었다. 서울항공 노사장님과 공군 일호 헬기를 몰았다는 황이사님(영화 하얀 전쟁 중대장 역 분신)사이공에 오시고 드디어 약속한 날짜에 헬기는 붕다우 항구로 배에 실려 왔다.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서 헬기를 격납고에 옮기고 공중전을 촬영하려는데 덜컥 문제가 발생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미군 헬기는 한 대도 없다고 방방 뜨던 놈이 헬기가 있다며 촬영을 가로막았다. 자기들이 보유한 미군 헬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협조가 조금 어려울 것이라고 한 자락까지 깔았다. 놈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국교정상화 전이라서 호랑이 잡는 곶감보다 더 무섭게 들렸다.
베트남 관계자의 변덕으로 헬기는 다시 배위로 내려졌다. 하늘을 날려고 만든 헬기가 배에서 육지로 상륙하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후퇴했다. 독수리가 단 한 번도 하늘로 솟지 못하고 멀쩡한 날개 두고 뒤뚱거리며 기어가는 꼴이라니….
물새 떼를 가르며 맹그로브 숲 너머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헬기를 보고 있노라니 나무칼로 귀를 베어내도 모를 만큼 울화가 치솟았다. <이런 쌍놈의 베트콩 새끼들> 소리가 튀어나오는 순간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송곳니는 방석니가 되도록 우두둑우두둑 갈렸다.
헬기는 그렇게 붕다우 항을 떠나버렸다. 그럼 이제 저희가 보유하고 있다는 미군이 사용했던 헬기가 도착해서 촬영을 해야지 않느냐. 그런데 모두가 목이 빠질 지경인데도 헬기는커녕 고추잠자리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이런 시팔 놈들, 우리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이제 더는 못 참아.”
“전쟁 한 번 더 나면, 나 지원 해가 와서….”
“오! 콜 동지 나도 온다.” 콧구멍으로 유황냄새를 물씬 풍기는 육두문자가 봇물 터지듯이 사방에서 터졌다. 필리핀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베트남 파트너가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 주변에 깔려있는 비밀경찰로부터 보고를 받고 온 것이다.
“미안하다. 미군 헬기는 있는데 인제 보니 일부 부품이 없어서 못 뜬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헬기 부품을 가져와서 띄우면 된다.” 그것도 방법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놈 소행이 저게 사람인가? 저놈 찌르면 과연 빨간 피가 나오는가? 촬영이고 나발이고 간에 확인부터 해보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부처님 손바닥 일지라도 둥글게 말리고 손등 가운데 뼈마디가 하얗게 툭 튀어 나올 것이다.
귀신보다 더 변화무쌍한 놈에게 이제는 화낼 근력도 없어 멀거니 쳐다 만 보니까.
“촬영이 끝나면 그 부품 힘들게 가져갈 것 없이 선물로 주고 가세요.”라고 빙글거렸을 때는 인내심이 한계치를 넘는 바람에 내 묵주 차고 간 녀석을 대신해서 ‘쩌라이’ 외국인 전용 병원을 통째로 빌려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그 자리에서 월남 파병 지원자를 모집했더라면, 중대병력 정도는 야자 하나 뚫어먹을 시간도 안 걸렸을 것이다.
국교정상화 전이라서 베트남에 영사 한 명 없었고, 단단해서 단추도 만드는 야자 껍질 일지라도 어느 곳에는 볼펜을 꽂을 수 있는 숨구멍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풋내기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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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가 중대가리 깐다는데 오늘도 만만치 않겠구먼.” 주방 쪽이다.
“그러게 오늘은 또 얼마나 육수를 흘려야 하나?”
“그나저나 지금 춘삼월 맞아?”
누군가 이렇게 쉰 소리로 변죽을 울리면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썰렁한 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오늘 저 멋지게 죽여주세요.”
한국서 치료받고 온 배우다. 얼핏 보니 손목에 묵주가 안 보인다.
“야 인마! 네가 멋지게 죽어야지.” 녀석은 죽여 달라? 감독은 네가 멋지게 죽어라? 이리저리 말귀를 찾는데 앞에서 밥 먹던 배우가 이렇게 설명했다.
“또 맛이 갈까 봐 오늘 저놈 죽는 장면을 먼저 찍어버리기로 했어요. 밤이면 부적을 꺼내놓고 중얼거려서 잠을 못 자겠어요. 방 좀 바꿔 주세요.”
“아하! 자네가 귀신에 쫓긴다는 저 친구 룸메이트야?” 이해한다는 의미로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자네 번지수 잘못 짚었어, 턱도 없는 소리 마, 방 절대로 못 바꿔줘> 그렇지 않아도 베트남 정부가 별 트집을 다잡아 촬영이 부지하세월인데 거기에 귀신까지 설친다는 소리가 대일필름 관계자의 귀에 자주 들고나면, 계산 빠른 그는 틀림없이 촬영 장소를 필리핀으로 옮겨 버릴 것이다.
그럼 꿩 떨어진 매 신세로 전락할 자 뉘며, 그 피해를 오롯이 안아야 할 사람들은 또 누구더란 말인가? 그런데 방을 바꿔 달라니, 그럼 귀신을 인정하는 꼴이 돼 버리는데 우리가 귀신에 씌었나? 설령 귀신을 보았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눙쳤을 것이 틀림없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말고,
그 처녀 귀신 만나거든 나에게 보내 주 삼, 그럼 내 한 달 치 마사지 값 준다.”
“저 좀 멋지게 죽여주세요.” “네가 모양 나게 죽어라.” 아침부터 이상한 흥정이 오가더니 끝내는 경악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소련 헬기가 학교 지붕 위를 너무 낮게 나는 바람에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져 학생들이 집단으로 부상을 입는 사고도 우리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 않았다
사건은 38도가 넘어 살갗이 따가운 오후에 터졌다. 스트레스가 킬리만자로 정상 만년 설 만큼이나 쌓인 배우가 40도가 넘은 독한 밀주를 조갈 병든 놈 물마시듯 목에 들어붓고 호텔을 때려 부수는 일을 저질렀다. 그것도 힘 좋게 홀로서 두 호텔을 때려 부수는 괴력을 발휘했다. 자칫 촬영은 중단되고 벌금에 추방까지 감수해야 할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때려 부순 호텔은 베트남 국영호텔이었고, 거기에 작두 위에 오른 무당처럼 시퍼런 칼까지 들고 날뛰어 롱하이 인민들을 집단으로 경악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국가에 경제적 피해를 입히면 총살까지 시켰는데, 그 피해액이라는 것이 고작 미화 2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세금 포탈로 법망에 걸려든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님들이 베트남에 살았더라면, 목이 몇 백 개라도 온전하지 못할 그런 국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마당임에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사이공을 다녀온 내가 도수아우에게 물었다.
“형 그게, 내가 시장을 다녀오니까. 아래 민동 호텔 앞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고 경찰과 민병대가 AK47 소총을 사방에서 겨누고 있더라고요. 위에 팔레스호텔은 이미 엉망진창 이었어요. 주방용품 중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고….”
“자식이 주방 살림까지 아작을 내?” 내가 핏대를 올리며 성급하게 물었다.
“제가 아래로 뛰어갔을 때는 아래 호텔까지 때려 부수고 피발이 선 눈으로 칼을 꼬나 쥐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어디서 총성이 금방이라도 울릴 것 같더라고요.”
“팔레스 호텔을 부셔놓고 아래 호텔로 갈 때까지 왜 모두가 바라만 보고 있었지?” 내가 아우 말을 재차 가로막고 물었다.
“그놈이 한 등치 한데다가 영화에도 없는 예측불허 취권을 펼쳤고, 거기에 내가 사용하던 ‘사시미’ 칼까지 들고 있어서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야외 촬영 중이라서 한국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요. 불현듯 촬영이 더 이상 진행되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법은 하나, 우선 저놈을 인민들 아가리에 재물로 던지자. 그래서 현 위기를 넘기자. 그렇게 된 거예요.”
“구름 같은 구경꾼들에게 박수까지 받았다면서? 재물 하나는 최고였던 게야. 그런데 박*규 동기라는 저 친구 말이야 아우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허벌나게 터졌다면서 왜 얼굴은 저리 말짱 한 거냐?” 도수아우의 표정을 살폈다
“세숫대야 팔아 묵고 사는 친구들인데 밥그릇이 깨지거나 ‘기스’가 나면 안돼지라.” 과묵한 아우가 술 한 잔을 목에 털어 넣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 그 와중에도 그런 지혜로운 생각을 다 하다니, 이제 보니 아우 프로구나. 수많은 구경꾼들 사이로 총을 겨누던 민병대들까지 환호작약하며 난리가 났다고 마이가 입에 거품을 물더라. <요렇게 엎어 치고 나서리 저렇게 내던지고, 고놈, 쫙 뻗는 꼴이 회초리 맞은 개구리 꼴>이었다며 영화 찍는 것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고 롱하이가 난리야. 그 친구 충무로 출신이라서 깡 좀 있지. 몸도 좋잖아, 내가 20대 초반에 대연각 앞에 살아서 닐바나 나이트 챔피언 다방을 수시로 들랑거려 그 바닥 생리는 좀 알아” 내말에 도수가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 치는데 안 맞나요. 두 호텔 부수느라고 힘 다 써서 보릿자루처럼 물컹했어요.”
“보릿자루 하하, 현지인들의 감정이 폭발 일보 직전이었는데 아우의 현명한 행동이 우호적인 저울추를 우리 쪽으로 기울게 한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촬영 더 이상 못 했다. 몽골, 미국을 이긴 자존심 강한 놈들이 가만있었겠냐?” 어깨를 두들기는 나에게 아우가 이렇게 말했다.
“형, 사람패고 칭찬 받기는 내 생전 첨이우.” 아우가 입 꼬리를 말았다. 그 모습이 마치 나의 인생에서 10년을 제외 시켜놓은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우야 애들보다 우리가 더 하느님과 가까운 것 같지 않니? 그 증거로 우리가 매번 씹히고 당하고 있잖아? 우리가 꿀이고 저놈들은 파리 같아서 그래.”
“형, 예수 믿수?” 도수 아우가 뜨악하게 쳐다보았다.
“그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조상님들이 대대로 찾던 하느님 말이야. 이놈의 나라에 오고 나서는 어떻게 된 것이 <아이고 하느님!> 소리를 아예 입에 달고 살잖니?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대들고 뜯길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잖아. 소리 없이 다가와 독을 주입시켜 버리는 독사 같고, 자기 몸보다 더 많은 피를 빠는 거머리 같은 놈들을 우리는 다시 정의해야 할 때가 온 거야, 때로는 우리가 커다란 뻐꾸기에게 미친 듯이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작은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 끝나고 나면 우리들 몸에서 틀림없이 사리가 나올 것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형, 이번엔 부처님이우? 난 빼주세요. 사람 팬 놈에게 무슨 사리가 나오겠소.” 도수 아우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망가진 주방용품은 또 구해야 하고 내일은 또 어떤 놈이 불거져서 사고를 칠는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 입에는 전혀 반갑지 않은, 향이 진한 남국의 재료를 가지고 까다로운 고국 배우들 입에 맞추려고 애쓴 아우의 공간, 그 아성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놈 앞에서 아우는 기르던 고양이에게 할퀴어서 퉁퉁 부은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 같았다.
“그나저나 그 놈은 왜 그렇게 독주를 퍼 마신거야?” 옆에서 안주만 먹고 있는 홍 아우에게 물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데 도수 아우는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요? 그놈이 촬영 도중에 자꾸 NG를 내는 바람에 열라 짜증 난 정감독이 “야! 그냥 넘어가자. 나중에 검열할 때 그 장면 잘라버리면 돼.” 이렇게 소리쳤대요. 자기가 맡은 역에서 대사는 그 장면 딱 한 마디뿐인데, 그걸 감독이 잘라버리라고 해서 맛이 간 거예요.” 사건을 마무리 하느라고 골머리를 앓던 홍 아우가 두덜거렸다.
“아니 그 친구 술을 어디서 구해서 마셨지? 오늘 모두가 야외 촬영 나갔잖아?”
“촬영장 옆 민가에 들어가서 밀조 주를 얻어 마셨다고 베트남 운전기사들이 말했어요.”
“그래! 베트남어 한마디도 못하잖아 그런데 술은 얻어 마셨다고? 거참 묘한 재주를 가졌구나. 그래서?” 다음이 궁금해서 홍 아우를 채근했다.
“술이 취하자 촬영장에 다시 나타나서 난리를 피운 거예요. 어쩔 수 없어서 큰 사고 치기 전에 등 뒤로 손을 묶어서 호텔 방으로 데려다 놓고 촬영을 했대요.”
“그런데 뒤로 묵인 밧줄을 또 어떻게 푼 겨?”
“그건, 호텔 아이들에게 아프다고, 오줌 마렵다고 풀어달라고 사정했대요. 촬영 현장에서 난리친 걸 보지 않은 호텔 아이들이 풀어 주었고 그다음부터 쑈가 시작되었지요.”
“그렇다고 사시미 칼까지 들고 롱하이를 휘젓고 다닐게 뭐람, 영화를 찍으라니까 NG나 연발하는 못난 놈이 밖에서 무술영화를 실감나게 찍었네 그랴, 이거 막아야 해. 롱하이는 마이 오빠들 앞세워서 인민위원장과 거하게 한잔하면 가능 하겠지만, 신문이나 방송을 타서 하노이 쪽 위정자들에게 알려지면 우리 모두 강제 출국 감이야. 내쫒기만 하겠냐? 그동안 하는 짓을 보면, 먼저 우리 여권부터 빼앗고 전셋돈 빼서 막아도 부족할 정도로 벌금을 왕창 물릴 걸, 공항에 도착한 민항기에 검문하겠다고 뜬금없이 AK47들고 기내를 돌아다니는 것 봤지?”
“누가 아니래요. 소총 들고, 권총까지 차고 들어와서 얼마나 썰렁했는지” 홍 아우가 맞장구를 쳤다. 홍 아우는 좋은 머리에다 어려운 일을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재주까지 있었다. 지혜가 뛰어난 현자도 피할 수 없는 난관을 요령이 좋은 사람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요령도 지혜 못잖은 재주고 그런 면에서 홍 아우는 뛰어난 재주의 소유자였다.
일전에는 손님을 맞으러 공항을 갔는데 공항경찰이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바람에 홍 아우하고 한판 싸움이 붙었다. 홍 아우가 하노이 소속 경찰보고 소리쳤다.
“야! 너 이리 나와 싸가지 없는 놈, 목아지를 작신 꺽어 놀라.” 양손을 무릎에 대고 꺾는 시늉까지 하는 바람에 권위적인 공항 경찰들에게 불만이 많은 주변 베트남 사람들에게 박수세례까지 받았다.
“환호! 랲짜이 여의 와”(잘 한다! 잘생겼는데 되게 사납네) 홍 아우는 피부도 하얗고 여자처럼 곱상하지만 생김새와는 달리 성마른 데가 있어서 일단 화를 내면 사람이 확 바뀌어 물불을 안 가려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격차에 아연했다.
“지금 찍는 영화보다. 찍는 과정이 더 리얼하다. 일전에는 배우들 전투복 위로 검은 전갈이 기어 다녀 촬영이 중단되고, 어제는 ‘클레이모어’를 잘못 터트려 젊은 친구 한쪽 눈을 베트남 땅에 묻어버리고, 나중에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다. 그때는 도수 아우가 주인공해라. 영화 제목은 *배는 강물을 건네주고 지혜는 생사를 건네준다.* 어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강한 남성을 느끼게 하는 넓은 도수아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가 사이공 ‘탄손 낫’ 공항 활주로까지 마중 나가서 픽업해 오기 전까지 도수 아우의 삶에 대해서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 아우가 친구라며 소개 했고 영화 시작 전에 서울서 두 번 만나 차 한 잔 마신 기억뿐이다. 곰 등짝 같은 아우의 등에서 내가 허기와 추위를 피하려고 산속으로 파고들어 피운 낙엽 타는 냄새가 났다. <이 아우도 동상 걸린 발을 끌며 낙엽 밑에서 들려오는 서리의 울음소리를 들었을까.>
진정한 도수 아우의 진가는 사이공 밤거리에서 빛났다. 하얀 전쟁 영화 촬영 팀들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 셋은 자축하는 의미로 렌터카를 타고 사이공에 하나 뿐인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국교정상화 전에 한국 식당을 준비하고 이층에 가라오케 까지 만든 용감한 한국 처자는 패티 김의 가시나무 새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주고받은 술잔 속에서 전시에 미8군 가수로 위문공연을 온 사연까지 알게 되었다.
셋은 가시나무 새를 안주삼아 귀한 소주를 양껏 마시고 귀가 길에 올랐다. 자정은 훨씬 넘어 아침으로 가는 거리는 한산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여러 대의 시클로(인력거)가 우리 렌터카 진로를 막고 있었다. 시클로를 치워 달랬더니 돈을 달라고 했다.
“무슨 돈?” 내가 물었다. 전신에 문신을 도배한 놈이 나서서 “주차비” 라고 했다.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주차비를 받아?” 재차 따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놈이 “차를 지켜주었으니 돈을 내.”라고 앙상한 팔을 흔들며 핏대를 세웠다
“운전사가 부탁했어? 그럼 운전사에게 받아”
“....,” 차를 타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야! 시동 걸어 그리고 안 비키면 밀어버려 내가 책임진다.” 그런데 운전사가 하얀 얼굴로 시동이 안 걸린다고 밖으로 나가 차 앞뒤를 살피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이공에 택시가 한 대도 없을 때라서 밖에서 낄낄대는 놈들 시클로를 타던가 아니면 걸어서 가야한다. 조금 웃돈을 주고 시클로를 타고 숙소로 왔다면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삼십대 후반의 대한민국 싸나이 자존심이 그걸 허락치 않았다. 내가 앞에 서고 두 동생은 뒤를 따랐다. 우리 앞뒤로 20대 정도의 시클로가 함께 움직였다.
밤의 한 가운데에서, 사이공 시내 중심가에서, 희한한 행렬이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고 호치민 동상과 랙스호텔 사이를 지나서 디엔비엔푸 거리로 나아갔다. 그때 경찰이 왔다. 한국 식당에서 신고를 했을 것이다. 경찰이 왔으니 모두 끝났겠지 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사이공 밤거리를 노래를 합창하며 느긋하게 걸었다. ‘긴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2절을 부를 때쯤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종전보다 더 많은 시클로가 떼로 몰려와서 대뜸 우리들 앞뒤를 가로막았다. 경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의 신경이 칼날처럼 일어서고 월남의 달밤에 흩어졌던 힘을 단전에 불러 모았다.
“야이 베트콩 새끼야 비켜, 왜 길을 막아.” 내가 소리치며 아까부터 앞에서 제일 깐죽대는 놈을 잡으려고 쫓았다. 놈은 술 취한 나보다 더 빠르게 도망갔다. 불현듯 갈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절대로 저놈들 잡으러 나가지 마라 흩어지면 안 돼” 내가 되돌아오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그 순간 도수 아우가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는 소리를 지르며 앞을 가로막은 시클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어떤 놈이던지 덤벼들면 바로 떡을 만들어 버릴 기세였다.
“에라이~ 썩을 것들” 소리와 함께 시클로를 들고 돌리는 도수 아우의 모습은 마치 장판교 위에서 장팔사모를 치켜들고 조조의 백만 대군에게 소리치던 장비 모습을 연상시켰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사자의 갈기처럼 모두 들고 일어났다.
“와! 저것 봐라. 곰이다. 곰” 놈들이 놀라서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그 여세를 몰아 곰을 앞세우고 숙소로 향했다. 숫자가 많은 그들도 외국인을 함부로 폭행하면 일이 커진다는 것과 곰 앞발에 한번 맞으면 염라대왕의 형님일지라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기척이 나자 숙소 경비들이 얼른 문을 열고 소총을 앞세우고 나왔다. 여기저기서 낭패한 소리가 들렸다.
“로메”(이런 *팔) 또 다른 놈이 탄식했다. “졌메로이”(아이고 어머니) 우리가 사용했던 숙소는 일반 호텔이 아니라 하노이에서 고급 공산당 간부가 내려오면 사용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러므로 경비들은 언제나 총과 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걸 그놈들도 알고 있었다.
호텔 경비들과 실갱이 하는 사이, 나는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시클로 넘버와 그놈들을 모조리 찍고 다녔다. 그때 경비 대장이 시클로 앞에 나섰다. “우리 손님들이 너희들에게 피해를 입었으면, 내일 경찰에 신고하고 보상받아라.” 바지 속에 칼을 찬 경비대장의 일갈에 사이공 1군을 주름잡던 어둠의 자식들이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 일을 보고 돌아오니까 호텔 방에 베트남 손님들이 그득했다. 눈인사를 하고 홍 아우가 카메라를 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은 하노이 직속 ‘탄손녁’ 공항 경찰 간부들이라는 걸 알았다. 홍 아우는 이렇게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도이모이 수상이 개혁정책을 펴면 뭐합니까. 한-베 합작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온 우리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내쫓으려고 한밤중에 길을 가로막고 떼로 달려드는데,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백 년도 더 오래전에 ‘애덤 스미스’는 제발 내버려 달라는 뜻의 ‘레세페르’ (Laissez faire) 즉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외쳤다. 자신의 자본 노동을 유리한 쪽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은 인간의 가장 신성한 권리에 대한 침해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을 파헤쳤고 공산주의 추종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간과해서 몰락해 버렸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한 분이 계셨으니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시던, 이분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깜냥에 잘난 척하느라고 대기업 회장들을 모아놓고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회장님들이 이렇게 김새는 소리를 해버렸단다.
“각하! 제발 그냥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네다.”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간과해서 몰락했다. 나누어 잘 살자는 제도를 강산이 변하도록 실시해 보았으나 안 되는 걸 어쩌랴, 그래서 공평하게 나누자는 소리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검정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까지 등장한 것이다. 꿩 잡는데 반드시 해동청 보라매여야 한다는 법이 없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은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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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가 쌍둥이를 데려와 나에게 인사를 시키며 매알 매알 웃었다. 그것도 시어미가 자기보다 아래, 그러니까 자기보다 한 살 아래 가수 지망생 시어미 자식을 따 먹은 것이다. 이걸 능력이라고 단언 할 수 없지만, 여튼, 자식 같은 영계 데리고 사는 년은 지천명이 넘도록 첨 보았다. 앙증맞은 아이들 앞에서 ‘에라이 모진 년’ 소리가 오빠 입에서 튀어 나올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