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가까이 출장을 다녀왔다.
중국의 산동반도일대다.
꼭짓점처럼 튀어 나온 위해로 향하는 배안에서 바라다 본 서해바다는 푹신한 이불을 깔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무려 18시간이나 바다를 가르며 당도한 위해거리는 여러 번 들락거리다 보니 여기저기 친숙한 데가 많았다.
여장은 초라한 민박에 풀었다.
세끼식사를 제공하면서도 숙박비가 하루 50위안에 불과한 곳이었다.
우리 돈으로 7,500원 정도면 잠자리와 숙식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길을 나섰다.
장보고대사가 창건한 영성의 법화사란 절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무역왕이요, 동양의 해상권을 장악한 영웅이었던 장보고는 근래 들어 오페라가 제작될 정도로 재조명되는 인물이다.
미천한 신분으로 섬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해적들을 소탕하며 해상권을 장악한 사람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길을 나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돼 서였다.
버스라고 해봤자 우리네가 70년대에 타던 25인승 마이크로버스다.
우리나라에서는 폐차장에서조차 구경하기 힘든 고물차가 대다수다.
시트는 때가 덕지덕지해 께름칙할 정도다.
성한의자가 없을 정도고, 사람이 많으면 간이 의자까지 깔고 앉자 그 독한 담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피우는 바람에 숨쉴 공간조차 없다.
그런 고물버스는 아직도 중국전역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것도 10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노선에도 이런 고물버스가 대다수 운행되고 있다.
이런 버스에는 예외 없이 차장이 있다.
어린 아가씨부터 아줌마,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차장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북경등 주요도시에서는 대형버스가 운행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아보였다.
법화사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30분 정도를 걸어야하는 길이어서 마침 지나는 트럭이 있어 휘치를 했다.
그러나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법화사의 정문에서 받는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려 30위안.
우리 돈으로 4,500원정도이지만 중국근로자의 초임이 400위안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이다.
하루 숙식비가 50위안인판에 절 구경하는데 드는 비용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먼 길을 달려갔다가 돈 5천원이 아까워 정작 절은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되돌아오면서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위해로 돌아오자마자 38위안을 주고 발 맛사지를 받았는데 이게 예술이었다.
피로가 말끔히 풀리고, 몸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을 보내고. 이튿날부터는 이 지역에 흩어져있는 관련기업을 찾아나서는 일정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