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상에는 젊은이들만 산다. 가끔 부모세대가 주인공 젊은이들을 보조하는 조역이나 엑스트라로 나오지만 그건 대체로 나이 들어 추해진 인간 이미지-나는 나이 들어도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의 몰락을 예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최근 한국영화 ‘고독이 몸부림 칠 때’나 ‘죽어도 좋아’ 같은 나이든 이들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지만 이건 아주 희한한 예외적 경우이다.
관객이 젊은이들 판이니 스크린 속 인물이나 영화세상, 그걸 만들어내는 영화창작자들의 평균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 나이 들어도 늘 젊은척하며 젊은이들에게 아부하는 구경거리만을 던져주는 게 생존전력으로 치부되는 형편이다. 이렇게 영화는 상품화된 나이주의와 결합한다. 그런 와중에 선보인 그리스 식 풍경 이미지로 거장에서 노장이 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그려낸 ‘비키퍼’는 나이 듦에 관한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딸을 막 결혼시키고, 교사직을 정년퇴직한 스피로(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가업인 꿀벌치기로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 영화 전편을 지배한다. 황량해서 더욱 서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그리스 풍광 이미지와 공명하는 고독한 내면 이미지가 중첩되어 앙겔로풀로스 특유의 정취어린 이미지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건 마치 느리게 걸으며 자연과 자신의 내면을 일치시켜나가는 산책처럼 보인다.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그리스식 멜랑콜리가 넘쳐나는 음악도 이 내면산책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늙어 주름진 얼굴로 스크린에 여전히 등장하는 마스트로얀니나 레지아니의 모습도 나이든 영화팬에겐 향수에 젖게 하는 이미지이다.
떠들썩한 결혼축하연 뒤에 남겨진 야외의 흰 식탁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열려지는 화면은 즐거운 잔치와 그 후의 공허함을 이중적으로 담아내는 상징 이미지이다. 스피로가 기억하는 과거의 삶, 그 중 하나인 꿀벌치기는 꽃을 따라다니는 화사한 축제 같은 삶이었다.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듯이 꿀벌치기로의 여정에서 만난 과거 친구들과 떠들썩한 수다판을 벌여보지만, 그것은 곧 그들의 죽음과 병듦을 마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는 늙어 가는 스피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삶의 우수가 담겨진다.
이 가라앉은 여정에서 히치하이커인 어린 여성(나디아 무르지)이 등장하면서 스피로는 꺼져갈 듯하던 심장의 심지에 불길이 댕겨짐을 느낀다. 딸보다 어린 이 소녀는 허무주의적 문란한 이미지를 풍기며 장난스레 스피로를 대하며 심지어 그를 유혹한다. 갈등에 빠진 스피로는 불시에 아내를 찾아가 정사를 하지만 소녀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질 뿐이다. 이제 그는 소녀에게 돌진하여 격정적 섹스를 하고 어리고 싱싱한 소녀의 나신이 앙겔로풀로스의 예술적 미장센에 담겨진다. .
이렇듯 죽음을 느끼며 늙어 가는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이 그윽한 영화는 바로 이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결국 그것이 남자의 늙음과 욕망에 대한 고백임을 토로한다. 그건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익숙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롤리타 콤플렉스란 것, 늙은 남자의 젊은 여자에 대한 섹스 갈망이란 것, 그것이 죽음과 동일시되는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처방일수 있을까? 그건(특히 여성의) 젊음을 상품화하면서 나이 듦의 자연스러움을 인위적으로 거부하게 만드는 몸의 상품화를 예술의 이름으로 봉합해낸다. 그래서 벌통들 앞에서 넘어진 스피로의 손에서 텅 빈 하늘로 열려진 마지막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