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가 오늘 성토모(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홈에 올린 글입니다. 예수원 식구들 여러분과, 특별히 민족에 대해, 선교에 대해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분들과 코이노니아하고 싶어 이 곳에 올립니다)
오늘 대전 삼천 제일 교회 청년부에서 2시간 동안 약 15명의 지체들에게 특강을 하였습니다.
한 달 전에 처음 특강을 하였는데, 내용은 본체론적 영성과 하나님의 경륜 및 성령님의 온전하신 사역, 그리고 한국 교회의 21세기 사명은 '한 몸 힘써,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 때 담임 목사님의 요청으로 오늘 두번째로 특강을 하였는데, 오늘의 내용은 '목자'의 의미와 성경의 토지법이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목자'를 나누게 된 것은, 강의 전에 최근에 중국 북경의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중국어와 영어로 된 '사영리'로 전도하며 단기 선교를 다녀 온 지체들(지난 달 성토모 헌신자 학교 때 참석했다가 둘째날 밤에 내려간 지체들 중 3명이 이 선교여행에 참여했었습니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침 대전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목자'의 의미를 묵상했었습니다.
'목자'없는 양과 같이 유리 방황하는 백성들을 위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마9:35-10:42)에서 목자의 의미가 예수님처럼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는 사람이고, 이러한 목자가 바로 '추수할 일꾼'이며, 이는 다시 10장에서 12제자 공동체로서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씀에서 그 일꾼은 바로 9장의 추수할 일꾼을 가리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첨언하면 예수님의 3대 사역 곧, 가르치는 것,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이 모두 성토모 운동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실업과 경제 위기, 그리고 농촌의 피폐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질곡으로부터의 구원은, 영혼육 전인 구원의 복음인 온전한 복음 전파의 측면에서 중요한 성토모의 역할로서, 주님의 고치시는 치유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며, 천국복음에서 미래적 측면과 동시에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자=추수할 일꾼=12제자 공동체의 의미는 '전도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자의 구약적 의미는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사람을 이 회중위에 세워서...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한 모세의 기도(민27:15-20)에서처럼, 목자의 의미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는 차기 리더쉽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신에 감동된 자'로 인정받은 여호수아와 같은 정치 지도자임을 가리켰고, 그리고 이는 유진 피터슨의 '다윗-현실에 뿌리박은 영성'(IVP)에서, "목자 이미지는 고대 동방 지역에서 정치 지도력, 특히 왕의 지도력에 대한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위의 책 272쪽)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기도와 그 응답은 여호수아 한사람이었음에 비해, 예수님은 한 사람이 아닌 12제자 공동체를 세우셨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수제자로 베드로를 여기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실 때나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3인을 데리고 가신 것은 제자 공동체 안에서도 사람에 따라 그 역할의 비중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도 '카리스마틱 리더' 1인에 의해 양적 성장이 이루어졌지만, 최근에 그 1인 리더쉽의 문제점이 '담임 목사직 세습'과 같은 부패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제 21세기의 리더쉽은 '데모크래틱 리더'라는 김진홍 목사님의 설교는 인상깊은 것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웬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는데, 바람직한 리더쉽은 한마디로 공동체적인 리더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목자는 구약 모세의 기도에서는 민족 지도자로서, 성령에 감동된 사람을, 그리고 신약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추수할 일꾼'과 같은 의미로 전도자로서, 12제자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볼 때, 목자는 경세가와 전도자의 의미가 오버랩 되어 있고, 이는 선교의 개념을 총체적(통합) 선교로 정의할 때, 곧 '선교사'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성토모 사람들은 공의의 선교사, 경세의 선교사인 것이지요.
이상의 내용과 더불어 성경의 토지법의 내용으로서 구약 안식일 관련법의 영적, 육적 하나님 나라에의 완성적 의미와 오늘날의 책임, 그리고 토지신유와 평균지권에 대하여, 십일조 제도의 평균지권적 의미를 끝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한 달 뒤에 마지막 강의를 할 예정인데, 내용은 헨리 조지의 지대조세제의 개념과 진보와 빈곤의 요약 내용, 그리고 토지문제와 경제위기, 그 경제적 측면에서의 정의성과 효율성 및 시행사례, 마지막으로 통일과 선교(특히 중국 선교)에서의 중요성을 전하려고 합니다.
소원하는 것은 이 어린 청년 학생들이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마음,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 방황하는 이 민족과 열방을 위해 민망히(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 조지의 이론을 잘 체화하여, 민족과 열방으로, 예수님처럼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며, 경세가 겸 전도자인 '큰 선교사'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자도에서 제자의 할 일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스스로가 예수님을 본받아 '가르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하며 또 양육하여 차세대 리더쉽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첨언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양육하신 방식은 지식 주입 교육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현장 교육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백성들의 삶의 한복판에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자칫 성토모의 교육이 지식 주입 교육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본체론적 현장 교육의 중요성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