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종친님들 ,
행복하고 멋진 계묘년 새해가 되시길 비나이다.
다름아니옵고
종문사적자료에 보면
전란(몽고의 침입? 금나라의 침입?)을 피하여
시조 할아버지께서 절강성 소흥에서 적부라직을 그만두시고
가솔을 이끌고 함경도 함흥 연화도에 정착을 하셧다 하엿습니다.
그러데 , 현재를 사는 우리 후손로선 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만일 전란을 피해 뱃길로 이동을 햇다면 가까운 대만이나 류구, 제주도 대마도 ,등
여러 입지가 뛰어나고 날씨도 따뜻한 곳이 많앗을 터인데
하필 멀고도 추운 함경도 함흥 연화도에 터를 잡앗을 까요?
이 부분을 우리는 좀 연구해 보면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종문역사를 밝힐 수 잇을 듯합니다.
사후 연화도에 봉분을 크게하여 모셧다고 되어 잇는데
구글지도로 보면 짐작할 만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요.
육로로 이동을 햇다면 , 전란으로 휩쓴 대단히 먼 길을 가솔들을 이끌고 가긴 힘들엇을 것입니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선생께서 북경을 걸어서 다녀오는데도 근 6개월이 걸렷는데 말입니다.
소흥에서 가솔(한두명이 아니엇을텐데)을 이끌고 몇달간 걸어서 적진을 뚫고 무사히 함경도 함흥 연화도 까지 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해로로 이동햇을 경우도, 위에 말씀드린대로 여러 의문점들이 생깁니다.
당시에 기차나 대단한 여객선이나 비행기가 잇엇을리 만무하며 대단히 어려운 여정이엇을 겁니다.
이 가솔을 이끈 엑소더스 행렬에 대해 우리 후손들의 연구가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려(대륙고려)영역로 들어온 집안이 비단 우리 추가 뿐만 아니더군요.
1차로 이동 후 상황의 변화로 또 한차례 이동을 햇을 것으로 보입니다.
5세 3형제중 추유자 할배와 추협자 할배 두분이 무슨이유인지
다시 본 고향으로 돌아 가신 것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돌아가서 주원장과 함께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역활을하고 신생 조선의 사절로도 왓다고 하나
분명한 기록이 없어 기록을 좀 더 찾아야 할 것같습니다.
정리하면
초기 조상들이 정착한 곳이 현 함경도 함흥 연화도가 아닌 듯합니다.
아마 소흥 에서 멀리 않은 곳인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우리 역사를 추적해 보면 고려가 망하기 전
명나라 건국시 전후까지도 "고려"가 대륙에서 존재하며 원나라와 본토를 공동 통치한 역사 기록과 흔적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전란을 피해 장강하류 상해 부근이나 산동반도 아랫쪽 부근에 정착햇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 부근이 여전히 고려엿으니 말입니다. 또는 완산부원군 추수경할배께서 출병한
산동지역 어느 부근 일 수도 잇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좋은 자료가 잇으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보감드림
신라시대부터 산동반도(청해진)에서부터 양자강하류인 절강성까지 뱃길로 오간 기록이 있으니까, 난류를 타고 항해를 할 경우 동해안까지 충분히 건너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