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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세월이 멈춘 그곳, 갈 곳 없는 주민들만 있었다 |
[신빈민촌 희망찾기] ① 쫓겨난 사람들 |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면서 주거환경이 바뀌었거나 혹은 개발을 앞두고 있는 곳이 주변에 있을 경우 상대적으로 개발 호재가 없는 곳은 새로운 빈민촌으로 전락하기가 쉽다.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를 '재개발의 망령' 속에서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에 갇힌 채 갈수록 낙후되고 있는 '신빈민촌'이 부산지역 곳곳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산일보와 사회복지연대의 분석결과 부산 남구 용호2동 곳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고, 폐·공가가 즐비하며 재개발재건축지역으로 지정된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돼 있는 신빈민촌이 산재해 있다. 본보 취재진은 이 같은 신빈민촌의 상황이 어떠한지 직접 현장을 찾아 확인해 봤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전경
부산 남구 용호2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정책이주지역으로, 1970년대 초 지어졌던 2호 연립주택(한 지붕 아래 2세대)과 4호 연립주택(한 지붕 아래 4세대)이 아직도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멈춰 있는 셈이다. 용호2동 14통과 16통 마을의 경우 각각 130동(260세대), 80동(160세대)에 이르는 2호 연립이 줄이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3일 오후 2시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웠지만 마을 어귀 곳곳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가게 대부분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듯 창문은 깨져 있고, 대문은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본보 취재진과 동행한 용호2동 16통 황재숙(52·여) 통장은 "수년 전 14통은 재개발구역으로, 16통은 주거환경개선지구로 나뉘어 지정됐지만 이후 경기불황 등을 이유로 모든 사업이 중단된 채 방치되다 보니 장사를 접고 집을 비워둔 채 타지로 간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200m 가까이 이어져 있는 폭 1m짜리 골목길은 대낮인데도 인적이 드물었으며, 빈 집임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간간이 보안등이 눈에 띄었지만, CCTV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용호2동 14통 최희지(52·여) 통장은 "서너 집 건너 빈 집이 있는데다가 대부분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보니 해가 지면 밖을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라며 "불량 청소년들이 으슥한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쓰레기 투기를 일삼고 있지만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빈민촌에서 빈민촌으로 쫓겨나는 사람들
'밀양댁' 박순금(가명·81) 할머니는 34살 때 남편을 병으로 잃고 영도에서 20여 년 간 과일행상을 하며 다섯 남매를 키우던 중 갑자기 집 인근에 도로가 나면서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다. 보상비로 받은 돈 대부분은 시댁 식구들에게 지급됐고, 박 할머니 수중에 남은 돈은 월세 얻을 돈 5만 원이 전부였다.
그 길로 부산 남구 용호동에 터를 잡은 지 3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자식들 키우다 보니 집을 살 여유가 없어 무려 16번이나 옮겨 다녔지만 용호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박 할머니가 지난해 중반쯤에 용호4동에서 또다시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재개발 때문.박 할머니는 화재로 장애인이 된 막내아들(45)과 살 곳을 찾아 용호2동으로 건너왔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다. 용호4동에서는 전세금 400만 원에 방 두 칸짜리 주택에서 살 수 있었지만, 용호2동 14통에 오면서는 전세금이 1천만 원대로 껑충 뛰었고 월세도 따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할머니는 15년간 매월 4만 원 씩 갚는 조건으로 전세금 1천600만 원을 담보대출 받아 겨우 살 집을 마련했다.
그런데 박 할머니는 또 이삿짐을 꾸려야 할지 모른다. 용호2동 14통 역시 용호4동과 마찬가지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보니 언제 쫓겨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없고 손이 떨려 생활도 어려운데 노인요양등급 심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주변이 재개발 붐으로 들끓어도 마을 자체는 더 낙후되는 것 같아. 더군다나 재개발이 되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쫓겨나기 십상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삶이 팍팍해도 견뎌내야지…"
#떠날 수 없어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1973년 부산 서구 서대신동 판잣집에서 살던 김명조(가명·76) 할머니는 당시 주택개량 재개발사업에 집이 포함돼 철거되면서 용호동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용호동에서는 먹고 살 만한 게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용호동으로 온 직후 척추골수염을 앓게 되면서 20년 간 육체적 고통으로 암흑기를 보내게 됐다. 몇 차례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진 김 할머니는 수양딸에게 의지해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김 할머니는 용호 2동에 있는 집에서 40년 가까이 벗어난 적이 없다. 그 사이 주변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유독 용호2동은 세월이 비켜간 듯 늘 제자리란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중심지로 빠져나가고 거동이 불편한 홀로노인 등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빈 집만 늘 뿐이다. 7~8년 전부터 재개발 바람이 불었지만, 경기 악화로 건설사들이 몸을 웅크리면서 14통은 발전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단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마을을 떠날 수 없다. 임대아파트로 옮기고 싶어도 너무 멀어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은 갈수록 사람이 줄고, 황량해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갈 데가 없거든. 더 이상 집 걱정 안 하도록 마을을 바꿔줄 수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