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역할이 나에게 왔을까”, 궁금증이 생기면 김강우는 움직인다. “기회가 주어진 것은 감사하지만, 두 번 할 수는 없는 역할”, <간신>에서 연산으로 분한 김강우의 말이다. 작품을 보니 알겠다. 두 번은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간신>에서 연산군 역을 맡은 김강우
연산군은 조선이 낳은 문제적 인물이다. 19세에 왕의 자리에 오른 뒤에야 숨겨 온 발톱을 드러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왕권을 견제하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무력화 시켰다. 이때부터 그의 폭주는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 <간신(姦臣)>은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하던 ‘연산군 11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1년 6월 16일 편에는 “임숭재와 (그의 아버지인) 임사홍을 전국 각지에 보내고, 채홍사라 칭하여 아름다운 계집을 간택해 오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이 명령을 받들어 전국의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하는 간신 부자, ‘조선판 홀로코스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스타일리쉬한 영화를 만들어 온 민규동 감독이 사극을, 그것도 연산의 핏빛 기록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더욱 의외인 것은 연산역에 김강우를 캐스팅한 것이다. ‘바른 생활 이미지’, ‘국민형부’로 불리던 이 배우는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시종일관 눈을 희뜩이며 광기를 내뿜는다. 김강우 역시 처음 그에게 <간신> 시나리오가 도착했을 때 놀랐다고 했다. ‘나의 어떤 점을 보고…?’, 그 궁금함이 그를 작품 안으로 이끌었다. 깊숙이 숨겨둔 ‘나’를 누군가 꺼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렘도 있었다.
내 안의 광기를 꺼내는 작업
“제가 알고 있는 성격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요. 이 작품의 의의는 그 간극을 메우고 저보다 더 냉정하게 제 모습을 찾아주었다는 거죠. 저는 원래 다혈질이에요. 어렸을 때는 고집도 세고 거칠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역할들이 굉장히 바른 역할이 들어왔어요. 크면서 많이 차분해지긴 했지만, 저를 아는 사람들은 ‘가식적’이라고도 이야기해요. (웃음) 그래서 이런 역할을 가끔 하면 누르고 살던 게 풀리는 쾌감은 있어요.”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그의 톤은 사뭇 진중하다. 평소에도 여행가고 책 읽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잔잔한 사람이 영화 속에서 그렇게 돌변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제가 제일 재밌었던 부분은 이 캐릭터에 대한 기록을 읽는데 너무 흥미로웠다는 겁니다. 어떤 소설이나 만화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로요. ‘연산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것과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걸 느꼈죠.”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 선생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제 명대로 살 수 있었을까?, 연산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그러했다. ‘천재적인 예술가’ 라는 게 그와 민규동 감독이 찾아낸 폭군 연산의 뒷면이었다. 왕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연산 스스로에게도 비극이었다. “표현의 한계나 선을 두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 이미지를 잡기 까지 고정관념을 깨기가 어려웠어요. 실은 그 시대가 더 폭력적이고 무감각했어요. 지금이 더 ‘사람다워’진거죠. 짐승들의 모습 뿐 아니라 연쇄살인범, 독재자들의 이미지를 많이 봤어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했죠. 경복궁도 가보고 왕이 머물렀다는 곳에 찾아 가봤는데 아무 것도 안보여요. 도리어 강박관념에 빠져요.”
<간신>
차라리 자신을 시간도 공간도 없는 곳에 가두자고 했다. 연산이 그런 인물이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에서 일주일 열흘을 지냈다. 벽에는 짐승 사진이 잔뜩 붙어있었다. 잠을 자지 않은 날도, 종일 하드 코어의 음악만 듣고 지낸 날도 있었다. 그렇게 극한에 부딪혀서라도 알고 싶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잔혹하게 미치게 만들었을까. 연산은 그 흔한 초상화 한 장이 없다. 그의 시대를 다룬 기록은 ‘실록’이 아니라 ‘일기’, 종묘에서 배제돼 능이 아닌 ‘묘’에 안치됐다.
“지금 남은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병약하고 호리호리하고 하얗다는 정도에요. 물구나무를 서서도 말을 탈 만큼 잡기에 뛰어났고, 연산이 춤을 추면 보는 이들이 울었다고 해요. 기존에 알던 왕과는 많이 다르죠.” 검은 방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은 없다. 이제부터 만들자.
외로움을 즐겨야죠, 그가 그랬듯이
“나의 일로 가족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촬영 기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외로웠는데, 즐겨야죠. 그 사람도 외로웠을 테니까요.” <간신>을 준비하는 동안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다. 두 아들에게 험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는 모든 작품을 아내와 의논하고 대화를 나누지만, 이번에는 삼갔다. 대신 모든 논의는 민규동 감독과 했다. 밤이든 새벽이든 떠오르는 이미지와 톤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촬영에 들어간 뒤로는 서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두 달 넘게 조율을 하고, 현장에서는 거의 이야기를 안했어요. 가기 전에 모든 신에 대한 합의를 보고 갔어요. 장면마다 써야 하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는데, 고갈되면 안 되니까요. 주변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안했어요.”
‘아버지의 후궁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이미 묘에 묻힌 신하의 무덤을 파고 시체를 훼손한다. 자신과 대척점에 선 신하의 아녀자를 채홍해 겁탈한다. 전국 각지에서 채홍된 일만 미녀는, 왕의 눈에 들지 못하면 죽거나 비구니가 된다…’ 연산을 폭정을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것만도 숨이 막히는데, “역사 기록에 비하면, 수위를 낮춘 것”이라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촬영장에서도 김강우는 철저히 혼자였다. 앞으로 벌일 악행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에너지 비축이죠. 수다 떨다 보면 한도 없이 나가니까요. 이 역할 자체가 너무 세요. 계속 일을 벌이고 방점을 찍잖아요. 누구랑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독단적으로요. 다른 배우들에게 고마운 건 잘 받아준 거예요. 완벽하게 준비한 뒤에 현장에서는 저를 놓거든요. 그렇게 탁 놨을 때 표정이나 행동에 광기가 나오니까요. 카메라 감독님께도 미리 이야기를 해놔요. 제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고요.”
다른 사람의 눈에서 숱한 눈물을 뽑아낸 이 폭군은 마지막이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린다. ‘엉덩이가 실하고 살결이 뽀얀’, 임숭재(주지훈)가 특별히 채홍한 돼지들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부터, 이 장면이 체한 듯 마음에 걸려 있었다. 수능을 맞는 수험생처럼, 장면에 임했다. 돼지들은 배우 사정 봐주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배설하고 드러눕고 이탈했다. 혼자 하는 장면은 그나마 나았다. 늦가을에서 겨울까지 이어진 촬영은 혹독했다. 연산이야 용포를 입고 안전에 있지만 끌려온 미녀들은 홑겹 한복을 입고 야외에서 떨었다. 이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직 몰입이었다.
“상황에 최대한 집중해서 몰입한 상태로 빨리 끝내주는 게 가장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흐트러지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 많은 보조출연자들의 눈빛을 조율할 수는 없어요. 그건 감독이 아니라 배우의 몫이에요. 비까지 와서 여자들은 얇은 옷을 입고 벌벌 떨고 있어요. 힘을 쥐어짜서 초집중 했죠.”
임숭재 역으로 함께 했던 배우 주지훈은, 현장에서 김강우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슛이 들어가지 않는 순간에도 그는 철저히 연산이었다. 김강우의 연기가 너무 처절한 탓에, 둘 다 그만 울어버린 적도 있다.
“숭재와 칼춤을 추는 장면은 기억에 남아요. 원래는 우는 장면이 아닌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숭재도 울고요. 진심이었거든요. 계산하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요. 연산은 살아생전 굉장히 많은 시를 남겼어요. 죽기 열흘 전에 쓴 글에는 극도의 허무함이 묻어있어요. 숭재와 춤추며 한 말들은 실제로 연산의 시(詩)에요. 숭재에게 ‘멈춰달라’고, ‘죽여달라’고 하는 건 이 사람의 진심이에요.”
흥행과 관계없이, 나는 달린다
<간신>에서 단희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과
연산은 죽고, 김강우는 남았다. 남은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갔다. OCN에서 제작한 실종느와르 <M>이라는 작품이다. IQ 187의 전직 FBI 요원 길수현 역을 맡았다. 강력범죄를 다룬 작품인데 연산을 지나고 나니 되려 ‘소프트하게’ 느껴졌다. “연산에서 이 작품으로 넘어오면 좀 치환이 되지 않을까 싶은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쉬는 시간을 오래 갖다보면 빠져 나올 수 없을까봐 저도 무서웠거든요.”
김강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실 단순하다. 그를 움직이는 건 흥행도 아니고 작품성도 아니고 ‘궁금함’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많아질수록 배우에게도 다양한 역할을 할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그의 최신작에도 교집합은 없다. 그가 마트의 정규직 대리로 출연한 영화 <카트(2014)> 역시 그런 마음으로 찍은 영화다. 시사회에서는 엄청 울었다. 찍을 땐 몰랐는데 작품을 보니 마음이 무너졌다.
“<카트> 보고는 많이 울었어요. 좀 찡하더라고요. 저는 다양성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카트>는 소재도 좋을뿐더러, 재미있었어요. 저는 작품을 할 때 역할이나 흥행이 아니라 ‘궁금해서’ 해요. 예전에 영화 <미스터고(2013)>는 3D 촬영기법이 궁금해서 했어요.”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혹자는 그를 ‘저평가우량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기의 질에 비해 흥행스코어가 따라주지 않는 다는 것.
“흥행이 제가 제일 스트레스 받는 부분인데,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집착하면 작품을 못해요. 제가 얻은 것도 있어요. 용감하게 이 쪽 저 쪽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도 흥행배우라는 부담이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그는 연기를 중앙대 연극학과에서 배웠다. 연기는 끼로 하는 것도, 인기로 하는 것도 아니라 정공법으로 하는 것이라 배웠다. <M>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강하늘은 “중앙대에서 김강우 선배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하기도 했다. 연기를 통해 그가 얻고 싶은 건 인기가 아니라 배움이다.
“대학 때 <햄릿>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요.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언젠가 왕 역할을 한다면 연산을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주어진 게 감사하죠. 너무 일찍 온 거 같긴 하지만, 두 번 할 수는 없는 역할이니까요.”
연극판에 있던 그가 주인공으로 데뷔한 첫 작품은 MBC 드라마 <나는 달린다(2003)>였다. 그가 맡은 무철은 용접일을 하면서 매일 책 읽기와 달리기로 세상을 잊는 청년이었다. 뜨거운 용접을 하면서도 ‘앗’소리 한 번 내지 않던 그 청년이 연산으로 돌아왔다. 구릿빛 얼굴에는 핏빛 역사가 씌워졌다. 김강우는 이번에도 그렇게 묵묵히 끝까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