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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49년 전 군복무 시절에 작성한 ‘군인의 길’이란 원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50년 전인 1970년 7월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해 1년이 지난
상병 시절에 200자 원고지에 쓴 글로 당시 내무반 생활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군인의 길’은 병사들의 머리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기 위해 신병훈련소에서부터 아침마다 군가와 함께 외쳐 부르던 주요 ‘암기사항'이었습니다. 1957년에 제정된 7개 항목의 ‘군인의 길’은 하나 ‘우리는 국토를 지키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친다.’로 시작해 일곱 ‘우리는 국민의 자제로서 국민을 위하며 자유민의 전우로서 자유민을 위하는 참된 역군이 된다.’로 마감이 됩니다.
1971년 광복(光復)의 달 8월 18일 쓴 글과 글에 이어 쓴 ‘조국송(祖國頌)이란 시를 한창 젊었던 시절을 회상(回想)하며 원고대로 올립니다. 오래전 원고라 그림에서처럼 글이 흐릿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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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8. 18 記
“군인의 길”
上兵 方 在 旭
하나 “우리는 국토를 지키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친다.” 이렇게 난 오늘도 군인의 길을 간다.
지금 내무반에선 병기 스윕(sweep)이 한창이다.
“이 일병 거기 병기기름 좀 이리 넘겨줘.”
“김 병장님 꽂을대 좀 주십시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방아틀뭉치, 가스활대, 복자용수철이 맞추어지면서 어디선가 “병기 스윕 완료 5분전” 하는 재치 있는 소리가 들리면서 전우들의 손은 더욱 바빠진다. 병기가 하나씩 원위치되고 나면 생활화한 보급경제 신조에 입각 전우들은 스스로 장비 스윕을 하고 관물을 매만진다. 이렇게 해서 저녁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나 또는 너라는 개념을 떠나 우리라는 단체 속에 있다. 나에게도 지켜야 할 조국과 아껴야 할 가족과 전우가 나의 곁에 있는 것이다.
“제군들의 생명은 1/2이 조국의 것이고, 나머지 반이 제군들 자신의 것이다.”라고 한 어느 지휘관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 우린 아니 난 지금 삼천만의 불침번이 되어 나의 가족을, 동포를 위해 또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로 군무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성실한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며 건전한 정신과 튼튼한 신체의 유지가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생각지 않더라도 조국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길이 되리라.
우리의 적은 다시 제2의 6‧25를 획책하고 있는 김일성이며, 그의 배후가 되어 있는 공산당이 아닌가. 그들은 지금 ‘전 국토 요새화하다.’, ‘전 장비 現代化다.’, ‘전 인민 무장화다.’, ‘전군 간부화다.’ 하며 전쟁 도발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국토를 통일하고 통일 조국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족단결과 근대화 작업에 전력해야 되리라. 우리 자유의 힘이 북녘의 하늘까지 넘쳐 남과 북의 동포가 서로 만나 회포를 푸는 날, 우리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힘차게 그리고 유쾌하게 아리랑을 불러보자.
모든 정리가 끝난 내무반. 기타 주위에 모여 앉아 합창이 한창이다. 이 합창의 조화된 화음이 바로 단결의 상징이리라. 노래는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라는 노래가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 예예예 .... 예예예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로 끝남과 동시에 노래는 접속곡으로 계속되어 ‘조국의 찬가’로 흐른다.
“밝아오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저 희망에 찬 새 나라로 전진합시다. 한 핏줄로 이어받은 .... 영원히 빛나리. 영광 영광 대한민국 .... 영원히 빛나리” ‘바닷가의 추억’, ‘꽃반지’로 전우들의 목청은 더욱 굳세어지며 조화를 이루게 된다.
옆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전우도 자동적으로 흥얼거리며 ‘아다리’, ‘아니 이거 축이 아닌가’, ‘참 바둑 안 되는군’
실전을 방불케 하는 흑백의 대결. 옆에선 안타까운 훈수가 한창이다. 잡느냐, 잡히느냐의 숨 막히는 순간이 지나면 한쪽에선 한숨이 다른 한쪽에선 미소가 스친다. 패장은 스스로 ‘졌다!’ 하며 돌을 던지며 ‘다음에 다시 한번 겨루자.’ 하는 여운을 남기기 마련. 이렇게 결전이 일단락되며 내무반의 하루가 마감된다.
祖國頌 71. 8 陸軍上兵
이 땅 위에 너와 내가 나서
같이 살자는 言約으로
배달의 얼을 받았다.
만주를 휘두르던 조상의 기백
괴뢰의 앞잡이로 血眼이 된
북녘의 현실
그 사이를 흐른 역사는
향기 없는 장미였나 보다.
남과 북
정녕
우리가 가야 할 숙명의 시련이냐
나의 祖國이여!
그리고, 山河여!
너는 아느냐
무궁화 향기 짙은 통일의 염원을...
너는 듣느냐
북녘 겨레의 호곡소리를...
여긴 건설과 인내의 廣場
배달의 얼은
南과 北을 초월하고
자유의 맥박은 북녘 땅을 넘쳐
天池를 불사른다.
너!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배달의 겨레여!
통일의 무궁화동산은
복되고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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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글이라 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옛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올리며 당시 사병 생활을 현재와 비교해보니 많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집니다. 우선 그때 34개월이었던 군 복무 기간이 지금은 21개월로 많이 단축되어 있으며, 앞으로 18개월로 더 단축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병 월급을 비교해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내가 군에 입대한 1970년의 사병 월급은 병장 900원, 상병 800원, 일병 700원, 이병 600원이었습니다. 2020년의 사병월급을 조사해보니 병장 540,800원, 상병 488,300원, 일병 441,700원, 이병 408,100원으로 월급이 50년 전에 비해 무려 600배 넘게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사랑 카드’로 복무 휴가 중 사고 시 무료 보험혜택, 영화관이나 편의점 할인, 신분 인증 등의 사용 편의가 향상되어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나가는 ‘국방의 의무’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지만, 현재의 군 생활이 청소년의 현장 체험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군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오천만의 불침번이 되어 나의 가족과 동포를 위해 또 통일의 무궁화동산을 위해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로 ‘군인의 길’을 걸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현실은 훗날 역사가 되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는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