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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16
▣ 놀라운 행실-에베소서 4장-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강조하는 본 서신의 후반부를 시작한다(4:1/4:17/5:2/5:8/5:15). 그리스도인의 삶은 걸음에 비유되는데 그것은 믿음의 일보를 내딛는 것으로 시작하며, 전진할 것이 포함되어 있고,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걷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결코 달릴 수 없을 뿐더러(히 12:1-2), 더 나아가 전투를 할 수 없을 것이다(엡 6:11-).
1. 하나됨으로 행하라(4:1-16)
우리는 한 몸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연합하여 하나됨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 바울은 1-3장에서 이러한 위로부터의 부르심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이제는 이러한 축복의 생활을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많은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단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연합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적인 통일체, 즉 하나의 “초월적인 교회“가 아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유기적인 연합이며 통일이다(요 17:20-23 참조).
이러한 연합의 근거가 4-6절에 열거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한 분이신 주님“이 중심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 몸“이라는 개념이 신자의 지체로서의 중요성을 파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의 전체계획과 영적 진리들을 관련지우고 있음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다른 서신들에서는 이러한 진리들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디모데전, 후서, 디도서, 고린도전-후서 등). “한 몸“(보편적인 교회)은 선교사를 보내거나 고아원을 짓거나 성찬식에서 교제를 하지는 않는다. 신약에서의 주된 강조는 지교회에 두고 있는데, 다만 지교회의 치리는 한 몸에 관하여 바울이 가르친 내용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연합을 위한 은사들은 7-11절에 주어져 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 강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셨고, 주님은 이러한 은사받은 사람들을 지교회들에게 보내셨다. 1-6절이 한 몸과 그 연합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7-11절은 여러 지체들과 은사들의 다양성을 다룬다. 결국 한 사람이 어떻게“보편적인 교회“를 목회할 수 있겠는가?
교회의 목표는 12-16절에 설명되어 있다. 목회자와 교사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하며 봉사의 본을 세워야 한다. 성도들은 섬기는 일(치리의 일)을 실행한다. 그리고 각 성도가 성장하여 다른 사람들을 인도함에 따라서 전체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 12절은 “성도들이 성장하여 섬기는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하기 위하여... “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성도들 각자는 교회의 성장에서 담당할 몫이 있으나, 불행하게도 아직 젖먹이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서 안정되지 못하고 쉽게 곁길로 빠진다(14절/ 고전 3:1-). 사단과 그의 사역자들은(고후 11:14-15) 그들의 거짓말로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기다리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화된다(건설된다, 행 20:32/고전 14:4).
따라서, 교회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프로그램이나 잔치들, 오락 또는 “조절“을 통하여 양육되거나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몸이므로, 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몸이 완성될 때에 그리스도는 돌아오실 것이며 그의 몸(그가 이 몸의 머리이시므로)을 영광된 집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엡 4:17-32
2. 순전함으로 행하라(4:17-32)
이 장의 전반부는 신자가 교회와 맺는 관계를 설명하였다. 이제 바울은 신자가 세상과 가지는 관계에 대하여 설명한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몸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세상에 있으며, 이곳은 유혹과 더럽힘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떠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전함으로 행해야 하며 세상이 우리를 더럽히도록 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부정문으로 시작한다.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행하던 방식으로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불경건하게 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즉, 그들은 거짓말을 믿었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눈이 어두워졌으며,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온갖 종류의 죄에 자신들을 굴복시켰던 것이다(2:1-13/고후 4:1- 비교). 그들의 곤경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생명을 받지 못하였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제시된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영적인 필요에 대처할 수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옛 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만 했다. 바울은 그들이 변화를 경험할 것을 기대하며 “벗어버리라“(22-23절), “입으라“(24절), “버리라“(25절 이하)는 세 가지를 권고한다. 로마서 6장은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장사지낸 바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그러하다고 간주할 때에 우리는 옛 사람을 “벗게 된다.“ 하나님 편에서는 일을 이루셨으며, 이제는 우리에게 그가 하신 말씀을 믿는 것과, 믿음으로 “옷을 바꾸는“ 것이 날아 있다.
예수께서 나사로와 연관하여 하신 말씀은 각 신자에게 적용된다. “그를 풀어 놓으라... 수의를 벗기라... 그를 가게 하라.“ 옛 생활에 대하여 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부활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선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옛 생활의 “수의“를 벗고 새 생활의 “은혜의 옷“을 입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의 일부분이다(24절/2:10). 따라서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롬 6:4).
우리는 죄들을 단번에 모두 “버려야“ 한다. 바울은 이런 죄들을 25절 이하에서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각 명령을 영적인 진리에 연결시키고 있다. 우리는 서로 지체들이며(25절), 구속의 날에 인침을 받았다(30절).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다(32절). 교리와 의무, 즉 그리스도인의 부요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함은 성경에 있어서 한 쌍의 축복들이다.
우리가 진리에 속하였다면 어떻게 거짓말에 탐닉할 수가 있겠는가? 사단은 거짓말의 아비이며(요 8:44) 그의 영은 거짓을 말한다(요일 2:21/요일 2:27). 어느 날 전 세계는 “거짓말“을 믿게 될 것이다(살후 2:9-11). 죄가 되지 않는 분노도 있다(막 3:5). 만일 우리가 사람에 대하여 화를 낸다면, 죄가 따라올 것이나, 만일 죄와 죄악된 원리들에 대하여 화를 낸다면 우리는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다.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성냄을 “의로운 분노“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약 1:20).
거짓말과 분노는 마귀에게 활동할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27절). 왜냐하면 사단은 거짓말장이요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위선과 분노는 사단이 들어올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가인의 거짓말과 분노가 어떻게 살인으로 진행되어 갔는지 읽어 보라(창 4장 참조).
28절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2절과 관련되어 있다. 구원받지 않은 도둑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훔친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은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기 위하여 일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은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놀라운 변화이다.
우리의 입술은 건설적인 말을 해야만 한다(골 4:6/시 141:3). 입술의 타락은 마음의 타락을 의미할 뿐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인치셨으므로(1:13-14)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이러한 행위와 마음 가짐의 죄들을 허락함으로써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안 된다. 성령은 비둘기로 상징되고 있는데, 비둘기는 평화를 사랑하는 정결한 새이다. 분노와 불평은 용서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방법으로 버려져야만 한다."
엡 5:1-6
▣ 놀라운 신부-에베소서 5장-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관한 설명을 계속한다.
1.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1-6)
“본받는 자“란 “흉내내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범은 우리를 감동시킨다(요 15:3/요 15:12/요일 3:16-18). 여기서 바울은 죄인을 위해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 향기로운 제물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물론, 올바른 사랑에는 우리가 어떤 것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성도들(구별된 자들)은 그 이름도 말하지 말아야 할 죄들도 있다! 4절은 유우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지 못하고 부정한 농담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의 입술로 의문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퍼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으로 맛을 고르게 함같이 말해야 하므로“(골 4:6) “대강 줄잡아서 들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자들도 습관적으로 살며 고의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가 있다. 바울은 이들의 가르침을 “허탄한 이야기“라고 불렀다(5-6절/갈 5:21-/고전 6:9-10 비교).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이었으나(2:1-10),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여야만 한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를 정결하게 지켜 주리라는 것이다."
엡 5:7-14
2. 빛 가운데서 행하라(5:7-14)
“참예한 자“란 말은 공동으로 갖는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 종종 “교제“ 또는 “협력“으로 번역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품(벧후 1:4), 하나님의 약속(엡 3:6), 그리스도의 고난(벧전 4:13), 거룩함(히 12:10), 하늘의 부르심(히 3:1)과 하나님의 영광(벧전 5:1)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이러한 놀라운 교제를 이루면서 어떻게 죄와 어두움에 속한 일들에 짝이 될 수 있겠는가?
고린도후서 6장 14절은 “빛과 어두움이 어찌 공존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우리는 빛의 자녀이므로 빛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어두움은 죄와 거짓말을 만들어 내며,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산출한다. 빛은 어두움과 타협할 수 없다. 다만 드러낼 뿐이다(요 3:19-21/요일 1:5-10)."
엡 5:15-17
3. 주의깊게 행하라(5:15-17)
“주의하여“란 말에는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이것은 지혜롭게 행하려는 뜻이며 무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에 걸려 넘어져 주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지 모른다. “정확하게“ “주의하여“ 행하는 대신 목표를 잃고 길을 잃고, 마침내는 우회하는 괴로움을 당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와서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기회를 사는 것“(시간을 구속함)이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시간과 힘과 재물과 재능을 낭비하는 일이 없으며, 이러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는 것이다."
엡 5:18-6:9
4. 조화있게 행하라(5:18-6:9)
이 부분은 6장에까지 이어져 있으며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일꾼과 주인 사이의 조화에 대하여 다룬다. 가정과 직업에 있어서의 조화와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에 있다. 교회의 일치와 가정의 조화는 둘 다 성령에 의존한다(4:3/5:18). 즉, 외적인 강압이 아닌 내적인 능력에 있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삶의 증거는 기쁨(19절)과 감사와(20절) 희생적인 순종(21절)이다. 골로새서 3장 15-17절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한 증거를 가지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절을 받는다는 뜻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감정적인 동요나 기적, 방언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교회에서 신령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는 그러한 증거들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있다.
머리됨의 원리가 가정을 통솔한다. “그리스도께 하듯“이 동기가 된다. 아내들은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들에게 순복해야 하며,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아내들을 사랑해야 하고, 자녀들은 주님께 하듯 순종해야 한다. 가정이 분열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되고 있다. 교회가 성경의 첫 신부인 하와에 비유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창 2:18-25 참조). 그녀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취함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옆구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찔림을 당했다. 그녀는 아담이 잠들어 있을 때에 만들어졌으며,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쉬고 계실 때에 형성되었다. 하와는 아담의 본성을 나누어 가졌는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참예한 사람들이 되었다(30-31절).
하와는 자기의 짝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대상이었는데,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돌보신다(딤전 2:11-15). 아담은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죄를 범하였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인한 그의 사랑으로 인하여 죄 있는 자가 되셨다. 하와는 죄가 인간의 가족에 끼어들기 전에 창조되어 아담에게 인도되었다. 교회도 창세 전에 하나님의 심중에 있었다. 로마서 7장 4절과 고린도후서 11장 2절을 살펴보면 이 결혼의 진리가 개별적인 신자에게, 그리고 지교회에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는 지금 교회에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신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성결케 하시며 깨끗하게 하고 계신다. 주님은 그가 선택하신 종들을 통하여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하신다(4:11-16).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영광으로 인도해 가실 때 교회는 완전하며 점도, 흠도 없을 것이다(요 17:22-24).
말씀은 교회를 정결케 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양육한다(29절). 이것은 신자들의 새로운 본성을 위한 영적인 음식이다.
6장 1-9절에서 바울은 자녀와 종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진리를 적용시킨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즉, 순종함이 옳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명령이며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아버지는 자녀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아내의 충실한 사랑을 얻는 데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바울은 4절에서 아버지에 대해 경고를 덧붙이고 있는데, 그의 자녀를 불필요하게 노엽게 꾸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황금율을 가정에 적용하며 자녀를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여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를 훈계(양육)하며, 주 안에서 조언(권고)을 주어야 한다.
종들은 그들이 모든 것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거나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면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마 6:24). 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에 마음을 고정시키며, 세상적인 소득을 얻는 데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을 뜻한다. “눈가림“이란 주인이 보고 있을 때에는 일하고 그가 없을 때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직장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면 눈가림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엡 6:1-10-12
▣ 놀라운 전쟁-에베소서 6장-
마지막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승리 가운데서 행할 수 있는가를 말해 준다(6:10-24). 하나님께서 사단을 정복하고 승리를 얻기 위하여 어떤 대비책을 만들어 놓으셨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사단과 그의 군대를 정복하셨는데(골 2:13-15/엡 1:19-23) 그의 승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된다.
1. 우리의 대적(6:10-12)
사단은 강한 적이므로 바울은 우리가 강해질 것을 권면한다. 그는 우리의 육신이 연약한 것과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만 승리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11절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일어서라“고 말하기 앞서 “강하여지라“(10절)고 명령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우리가 일어서기 위한 이러한 힘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모든 정사와 권세 위의 높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알며(1:19-23)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도 사용할 수가 있다(3:14-21). 우리가 걷고 서기 앞서서 우리는 앉아야만 한다.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기 앞서 우리의 영적인 지위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책임지도록 임명한 천사가 사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겔 28:11-19). 교만함으로 그는 타락하였고(사14:9-) 지금 정사와 권세를 잡고 군대를 이루고 있는 천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단은 하늘에 출입할 수 있었으나(욥 1-3장) 환란 기간 동안에 하늘에서 쫓겨날 것이다(계 12:9). 그는 속이는 자요(고후 11:3) 파괴자이며(계 9:11 , 아바돈은 “파괴자“란 뜻이다) 뱀과 사자로 배회한다(벧전 5:8-9).
그리스도인은 혈과 육(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싸우고 있지 않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엡 2:2)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신자 안에서 역사하시며 그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것같이 불순종의 영(사단과 그의 귀신들)은 불신자들의 생활에서 역사한다. 진짜 적이 주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혈과 육을 사용하고 있을 때 혈과 육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베드로가 동산에서 검으로 마귀를 이기려고 했을 때 이러한 실수를 범하였고(마 26:51), 모세는 애굽사람을 죽였을 때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행 7:23-29).영적인 원수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는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엡 6:11) 즉 거짓된 책략, 마귀의 속임수(고후 2:11), 그리고 마귀의 올무(딤전 3:7) 등을 삼가야 한다. 그는 어두움의 주관자로서 자신의 목적을 조장하기 위하여 어두움(무지와 거짓말)을 사용한다(고후 4:1-/눅 22:53)."
엡 6:13-17
2. 우리의 장비(6:13-17)
그리스도인이 “마귀에게 자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4:27). 즉, 오점을 무방비 상태로 버려 두어 사단이 끼어들게 하는 일과 같은 것을 말한다. 바울이 설명하는 무장은 방어를 위한 것이다. 검(하나님 말씀)은 실제의 전쟁을 위한 것이다. 영적인 무장의 각 부분은 신자가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를 받고자 할 때 그의 생활 가운데 지녀야 할 것들을 말해 준다.
진리-사단은 거짓말장이지만,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속지 않을 것이다.
의-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지속적인 일상의 행실을 뜻한다. 사단은 “형제들을 고발하는 자“(계 12:10)이지만 빛 가운데서 행하는 신자는 사단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평화-사단은 분열시키는 자이며 파괴자이다. 신자가 평화의 복음으로 행할 때에 사단은 그에게 팔을 펴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발은 깨끗하고(요 13장), 아름다워야 하며(롬 10:15)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한다.
믿음-사단은 불신앙과 의심의 근원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이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이다(창 3:1 참조). 믿음은 극복하며 이기는 일을 한다(요일 5:4). 신자가 믿음의 방패를 자기 앞에 둘 때에 불신앙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다.
구원-이것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의 궁극적인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살전 5:8). 그리스도께서 곧 오실 것에 마음을 고정시킨 신자는 사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복된 소망은 마음을 방어하는 투구와 같을 것이다. 사단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가 돌아오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게 하거나, 또는 오늘은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하려 한다. 마태복음 24장 45-51절을 읽고 구원의 투구를 벗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아보라.이러한 무장들은 신자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성령의 검은 사단의 근거를 공격하여 파하기 위한 무기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무기들로 싸워야 한다(고후 10:4).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능력이 있으며(히 4:12), 결코 무디어지지 않는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순종할 때에 정복하게 된다."
엡 6:18-24
3. 우리의 힘(6:18-24)
갑옷과 무기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기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 군인에게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힘은 기도로부터 온다. 우리는 성령의 검을 사용하며 성령안에서 기도한다. 성령은 우리가 전투에서 이기도록 능력을 주신다. 에베소서 3장 14-21절을 다시 읽고 담대히 믿으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적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토를 확보하도록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두 가지 무기이며 자원이다(행 20:32/행 6:4/삼상 12:23 참조).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세상(막 13:33)과 육신(막 14:38)과 마귀(엡 6:18)를 이기는 하나님의 비결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기회를 위해서도 “깨어 기도해야 한다“(갈 4:2-3).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우리의 동료 군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6:19-). 바울이 교만하여서 기도를 요청하지 않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는 이 비밀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를 원하였으며(3:1-12) 바로 이 비밀은 그를 감옥에 갇히게 했던 멧세지이다. “결박된 대사“는 색다른 칭호이기는 하지만 바울에게는 알맞는 것이었다. 여섯 시간마다 로마의 다른 군사들이 교대하였으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할 놀라운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바울은 몇 가지 개인적인 사항을 말하고 이 위대한 서신을 끝맺는다. 그의 교우들이 자기의 형편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바울의 상태와 필요들을 안다면 그를 위하여 보다 현명하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은 물론이다. 바울은 또한 그들을 위로하기를 원한다(22절). 바울은 참된 성도였으며 자기의 모든 필요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을 의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