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번뇌를 떠올리며 그에게 잠시나마 애정을 보내며 이해하려 애써 보았습니다. 드디어 신호를 주더군요.ㅎㅎ
(1)요즘의 나는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나의 성격과 유일하게 일관된 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 문장은 이중주어문입니다. '나는'에 대해 그 다음 '쾌락과 ~ 나타내고 있다'가 서술절입니다.
뼈대만 추려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나는 어떠한 기호가 어떠한 면을 나타내고 있다.
주어 주어 목적어 서술어
서술절
여기서 '나는'을 주제어라고도 하지요. 구조는 분석해 보았지만 역시 이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이중주어문을 생각해 봅니다.
(3)ㄱ. 코끼리는 코가 길다.
ㄴ. 철수 아버지는 돈이 많다.
ㄷ. 영희네는 아이가 어리다.
언뜻 보니 (3ㄱ,ㄴ,ㄷ) 모두 서술절이 다 자동사문입니다. 목적어가 있는 (1)과 다릅니다. 그러면 목적어가 있는 타동문이어서 이상한 걸까요? 물론 그렇게 설명하고 넘어가도 무리는 없지만 서술절이 타동문인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4)ㄱ. 영희네는 아버지가 택시를 몬다.
ㄴ. 국어연구는 회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자연스러운 (4)과 이상한 (1)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다 서술절이 주어+목적어+타동사 구조입니다. 이번엔 (4)의 서술절과 (1)의 서술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ㄱ.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나의 성격과 유일하게 일관된 면을 나타내고 있다.
ㄴ. 아버지가 택시를 몬다.
ㄷ. 회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
(5ㄴ,ㄷ)이 아주 자연스러운 완벽한 문장인 반면 (5ㄱ)은 여전히 이상합니다. 이들의 차이는 주어에 있습니다. (5ㄴ,ㄷ)의 주어들은 동작의 주체가 되는 명사 즉, 사람 또는 유정명사입니다. 그런데 (5ㄱ)의 주어인 '기호'는 동작의 주체가 되지 못한데 목적어와 타동사를 가진 것도 모자라 다시 서술절로서 이중주어문 안에 들어가서 어색해졌습니다. (1)과 유사한 문장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6)ㄱ. 나는 취미가 톡특한 면이 있다.
ㄴ. 철수는 성격이 괴팍한 면이 있다.
(1)을 (6)와 같이 바꿔보겠습니다. 편의상 부가어들을 삭제합니다.
(7) 나는 어떠한 기호가 어떠한 면이 있다.
(6)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전문을 다 옮겨 고칩니다.
(8)요즘의 나는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나의 성격과 유일하게 일관된 면이 있다.
문장을 다 써놓고 보니 아직 어색하고 무슨 의미인지는 여전히 모를 지경입니다. 자, 이제부터 열쇠는 의미입니다. 이 문장의 뜻은 아마도 '쾌락과 행복에 대한 '내 기호'가 '내 성격'과 들어맞는다'일 것입니다. 최대한 번역가에게 연민을 보내며 해석한 의미입니다. 이게 아니라면 곤란합니다. 그럼 저도 이 대책 없는 문장에 들어간 훌륭한 단어들에 심심한 위로를 던지며 사라질 것입니다. 문제점을 보겠습니다.
1.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 (정보의 부족, 무슨 기호?)
기호의 대상은 있지만 기호의 주체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지금 '내 기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란 정보가 빠져 있어서 처음부터 헛다리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제어 '나는'이 있지만 그 의미의 영향이 이 주어 안까지 뚫고 들어오진 못합니다.
2.관형절 '쾌락과 ~ 일관된: (잘못된 서술어, 잘못된 만남)
이 관형절의 주성분을 뽑으면 '기호가 성격과 일관된다.'입니다. 우선 서술어 '일관되다'의 문제입니다. '일관되다'는 '방식'에 관한 것이지 결국 기호가 성격과 어떻다는 '관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즉, 일관되게 같을 수도 있고 일관되게 다를 수도 있고 일관되게 반영할 수 있고 일관되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호가 성격과 어떻다는 건 없고 그 어떠함이 일관된다는 이야길 하니 의미가 불안전할밖에요.
3.'유일하게'와 '-한 면이 있다': (의미의 상충=>총체적 난국)
'안타까운 면이 있다'하면 '조금 안타깝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안타까운데 '-면이 있다'라고 표현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약간'과 어울려 '약간 안타까운 면이 있다'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일관된' 이 단어들은 '조금 -하다'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그것도 '일관된'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한 면이 있다'고 꼬리를 내립니다. 정말로 번역가에 대한 화가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8)을 다시 가져와 공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8)요즘의 나는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나의 성격과 유일하게 일관된 면이 있다.
(수정-1)요즘 쾌락과 행복에 대한 내 기호는 내 성격과 유일하게 일치한다.
너무 단호하다 싶으면,
(수정-2)요즘 쾌락과 행복에 대한 내 기호는 내 성격과 유일하게 일치함을 보여준다.
'유일하게'가 걸립니다. '유일하게'의 비교대상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어떤 성질/모습/특성 등은 내 성격과 일치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내 기호'만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도대체 알 수 없으니 고치지는 않겠습니다. 최종 두 개의 안을 제시합니다.
1.요즘 쾌락과 행복에 대한 내 기호는 내 성격과 유일하게 일치한다.
2.요즘 쾌락과 행복에 대한 내 기호는 내 성격과 유일하게 일치함을 보여준다.
더 다듬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기서.
첫댓글 역시.. 완벽한 설명.. 설명을 들으니 선배님 말씀처럼 이 문장에 대한 언짢음이 연민으로 바뀌네요.. 정말 제목처럼 대공사를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한편 질투도 나요..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선배님은..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