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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2편과 3편에 혼동이 있어 다시 교정 하였습니다
엉뚱한글 읽으신 님들께 사과 드리며 빼놓은부분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지적해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4
"한때 저놈이 그림 장사 할 때는 밤에 몰래 그려서 팔았다는디
그림이라는 게 한 번에 그릴수가 없다고 그러네.
무슨 소리냐 하믄 한번 붓이 지나 가고 나면 그 획이 말라야 또 그 획위에 그림을 그린다는디…
저놈이 시간이 없어서 거 왜 여자들 머리 감고 나서 말리는 기계 있잖은가,
드라이기 그걸로 말려 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께 그래도 한때 제법 해 먹었다고 봐야제…
저놈이 그림을 무쟈게 빨리 그린다고 그러드만…
필필 놀다가도 돈이 궁하믄 아까 그 호남극장에 가서 간판 한 장 후다닥 그려주고
그런 거 보믄 실력도 있고 그리기도 무쟈게 빨리 그리기는 그리는 모양 이드만."
그림에 관심이 없다고 그랬지만 어느 정도 식견은 있는 듯 보였다.
아니면 이 동네 정서가 저 정도는 기본이든지…
"하루에 몇 장씩 그리고 그랬나요?"
"그림 이라는 게 몇 날 며칠을 두고 그려야 된다는디
그놈은 하루에 한 장씩 뽑았다고 그라믄 대단한 실력 이라고 봐야제
그것도 작품을 직접 보고 그린게 아니고 대가리 속으로 기억 했다가
몰래 밤에 그렸다고 그런께 대단 하다고 봐야제…
좀 있다 오믄 물어봐"
"보고 그린 게 아니라 봤던걸 기억해 놨다가 그걸 그린다고요?"
"그래… 지금도 가짜가 많이 돌아 뎅긴다고 허는디 우석이도 보믄 그냥 알수 있다고 그러드만…
근디 지꺼는 같은 가짜라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러드만...
그만큼 지는 자신이 있다 그 말 이겄제…"
대단 하다.
필사본(筆寫本)이 있다고는 하지만 문자가 아닌 그림을
똑같이 그려 낸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 않는 수법인데
그걸 그려 냈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이다.
활자 문화가 발달하기 전 인쇄기술이
부족한 시절에나 했을법한 모사본(模寫本)이나
예전에 이집트 같은데서 파피루스에 동시에
같은 문서를 여러 장 만들어 내던 시절에나 있을법한 이야기 인데그림을 똑같이 찍어 내는,
그것도 이미지만을 기억해 놨다가 그대로 그려 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놈이 말이여…"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일전에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가 있었는디
그날이 하필 일요일 이였거든 우석이 하고도 자주 술도 먹고 했던 친구 였는디
젊은 나이에 초상을 당해논께 젊은 사람이라고 초상화가 없잖아?
그때 그 집 벽에 걸려 있는 돌아가신 할메 초상화를 내려서
그 할메 사진을 뒤집어서 거다 죽은 놈 얼굴을 연필로 그리는디,
삽시간에 금방 사진으로 찍은거 멩키로 그려 가꼬
그 집 유족들이 그 초상화 봄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제…
일요일 날 초상화 뽑아 오기도 쉽지 않았는디....
그래가꼬 영정을 만들고 한참 있응께 늦게 사진관에서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가져 왔는디…
사진보다 우석이놈이 그린 초상화가 훨씬 좋아서 지금도 할메 제사 때는 할메 초상화로 쓰고
또 교통사고로 죽은 놈 제사때 되믄
할메 사진 뒤집어서 영정 만들어 쓴다고 그러드만…
그랑께 한 액자에 초상화가 앞뒤로 두개 있는 셈 이제…
그일 있은 뒤로 가끔 우석이가 초상화도 한 번씩 그려 주고 그라제…
그랑께 지가 한번 본 것은 그대로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빈말은 아닌 모양이여…"
쌍식이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웃음으로 넘길 일 만은 아니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남농 선생의 작품도 모작(模作)이 가능 했겠다 싶었다.
신발 가게에 손님이 몇 왔다 가고 그러는 동안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말끔한 차림의 우석이라는 사람이 들어 왔다.
"형님~. 한잔 합시다 "
들어서면서 하는 첫마디 이었다.
둘이서는 친분이 있어 보이는 듯 했지만 신발가게 주인은 다소 본론적인 말대답으로 대신 했다
"아야 우석아이…
뭔가 몰라도 돈 들여서 여까지 뭘 조사 하러 왔다고 그란께 잘좀 갈켜줘라.
서울서 왔는디 여그는 아는 사람도 없다고 그랑께
향란이 한테 가 있거라. 내가 코 봐가꼬 마누라 오믄 토끼든가 할랑께..."
'코 봐가꼬' 는 아마 눈치를 봐서 가겠다는 이야기 인 것 같다.
"그라믄 형님 천천히 오쇼 가서 한잔 하고 있으께… "
대답 대신 손을 훠이 허공에 흔들어 주었다
아마 틀림없이 오겠다는 약속 같았다.
택시를 타고 다시 찾은 술집은 여전히 많은 손님들로 북적 거렸다.
향란이가 있다는 술집은 어제도 왔었다.
그러나 '향란아이~' 라고 반말로 부르던 신발 가게 주인 쌍식이 와는 다르게
우석 이는 그냥 '형수' 라고 불렀다
"홍어 잡사 봤소?"
이집에 주된 메뉴는 역시 홍어 인것 같다.
"예 어제 쌍식이 형님이 맛을 보여 주더군요 "
사실 처음 입대기는 용기가 나지 않는 음식 이였다.
이상 한건 내 입에서도 '쌍식이 형님' 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 그랬소? 그라믄 딴데 갈것인디 그랬소이? 우짜까라?“
“괜찮아요. 여기 까지 왔으니까 한 번 더 먹어 보죠 뭐.”
“그라믄 홍어 하고 막걸리 시키요이, 이것이 잡사 보믄 자꾸 혀끝이 부르는 그런 음석이라“
음식을 '음석'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수님을 연신 불러 대면서 주문에 열을 올렸다.
"그건 그렇고… 물어 본다는 게 뭐요? "
술 마시기 전에 좀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먼저 말을 꺼내 주어서 내심 고마웠다.
"예 사실 남농 허건 선생에 관한 글을 좀 써볼까 합니다. "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자뭇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그거 물어볼라믄 나한테 오길 잘 하셨소,
영감한테 가 봐야 대화가 안 돼요
영감이 귀가 많이 어두워서 큰소리로 물어 봐야 되고 또 말수가 많이 없소.
낼 거기 가믄 그냥 사진 이나 몇 방 박아 오고 대화를 나눌 생각은 아예 접어쁘쇼.
내가 그 영감 밑에서 오년 넘어 굴러 먹었응께 그 집의 역사는 내가 빠삭 하요.
내가 완전히 비서 였응께…
손님들도 오믄 전부 내가 말대답 하고 그림도 내가 받아서 넘겨주고 해서
나만큼 그 집 내력을 아는 사람은 없을 거요. 아저씨 메모지나 수첩 있음은 주쇼.
아예 거기다 낙서를 함서 설명을 해줄 팅께.
나는 대가리 속에 꽉 차 있는디 이것이 걍 듣기는 기억하기가 쪼깐 힘들 것이고
내말 듣고 따라 적을라 그라믄 내가 이야기가 진도가 안 나간께 걍 내가 바로 적음서 합시다 "
그래도 역시 먹물 출신은 달랐다.서울에서 대학물을 먹은 티를 내는 듯했다.
수첩을 꺼내기도 전에 나에 대한 배려를 한 듯 했다.
그의 이야기는 무척 진지했고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도
두 사람은 많은 잔을 비우고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그의 한숨 섞인 회한의 소리가 간간히 묻어 나오는 대예술가 남농의 역사는 이랬다.
시. 서. 화 삼절에 능한 헌종때 소치 허류 선생의 손자로
아버지 미산 허형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단다.
결국 자질이 뛰어난 점 보다는 가문의 역사가 그를 만들었단다.
아버지때 목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화가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그의 집안은 매우 옹색함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9회 선전(지금의 국전 같은 일제시대때의 미술 경연전)에서 부터 23 회 까지
계속 입선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부터 형편이 좋아 지기 시작 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기 전 해에 총독상과 특선을 받아서 유명 해 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치의 이름이 허 이였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과 그리고
그 손자라는 놀라움 속에 술이 좀 많이 취했다 싶은 그의 넋두리는 장황했다.
"나는 내친 제자고 그 영감은 내 스승인디,
영감이 붓이 춤을 춰쁠믄 걍 산이 살고 소나무가 흔들리고 바다가 출렁 인다고 보믄 되요.
나도 그림 좀 그린다고 허는디
먹물 하나로 농담(濃淡)을 조절해 감서 그리기 시작 하믄
그리는 영감 손보다 내가 속이 더 바짝바짝 타들어 가요.
그라고 동양화 좀 그린다는 양반들은
그림을 배울 때 손에 익은 솜씨들이라서 사람도 중국사람 비슷하고
산을 그려도 한국산 같지 않고 중국산 냄새가 나는디
영감 그림은 그런 게 없고 순 한국적 이라는데 있제.
실제로 그림을 보믄 고추가 빨갛게 익은 초가지붕이나
사립문에 걸린 태극기 같은걸 봐도 많이 한국적인걸 강조한 분위기가 보이고
그라고 뭣보다 중요한 것은 왜정때 선전에 입선할라믄 심사 위원들이
왜놈들 일색이라 할 수 없이 일본풍으로 그릴 때도 있었는디…
그런 것이 한(恨)이 되서 해방 되고 나서는 철저 하게 그런 것을 반성 한다고
내한티 직접 이야기를 합디다.
요새 그림을 보믄 철저하게 중국풍이나 왜색 풍을 없애고
초가에 넝쿨진 박 이나 소가 쟁기를 메고 가는 그림이 많아 진게
아마 영감 딴에는 예전에 왜정 시대의 화풍을 바꿀라고 그렇게 그린다고 보믄 되요.
나도 영감 그림을 흉내는 내는디..
그걸 내꺼다 영감 꺼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영감하고 당사자인 나밖에 모를 것이요.
근디 내 그림 하고 영감 그림 하고는 그림의 무게 에서 째비가 안 돼요…."
'째비가 안 된다'는 아마 비교가 안 된다는 말이겠다 싶다.
한참을 주절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신발가게 주인 쌍식이가 들어 왔다.
"아그야 나 오기도 전에 벌써 많이 취해 브렀네.
기자 양반, 우석이가 술이 약하요. 음마…
그래도 벌써 몇 주전자 했는갑네. 향란아이~ 여그 잔 좀 주라이"
"아 오셨습니까?"
나는 정말 반가웠다.
그가 있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그와 함께 있다는 건 이 동네 에서 만큼은 든든했다.
"근디 우석아.
니꺼 하고 남농 선생꺼 하고 두개 가따 놓고 보믄 차이가 있냐?
사람들은 항상 그것이 궁금한 모양 이드라. 니가 한번 직접 이야그 해 봐라…"
쉽고 편하게 물어 봤다.
"아따 성님은…
그것은 영감하고 나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암만 봐도 모른 당께.
나한 테 그림 사서 가져간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지랄 해 싸도
표구해서 걸어 노믄 암도 모르요.
성님은 그림을 몰라서 그란디, 지금은 가짜 하고 진짜를 낙관에 돋보기 들이 대고
낙관 검사를 해서 알아내는 판이고 그림 봐 가꼬는 모르요
나하고 영감은 당사자들인께 그냥 보믄 알제…그란디 일반 사람들은 모르요…"
"썩을 놈…"
낄낄 거리고 쌍식 이라는 사람이 웃었다.
"내일은 허건 선생님 집에 찾아 가 볼 생각인데…"
위치가 알고 싶어서 물어 봤다.
"음마…그것 아무나 들어가는 집이 아닌디…
거 가보믄 개판이여. 그림 한 장 얻어갈 심사 로 식객들이 많재.
딴에는 즈들이 예술입네 하고 지랄들 해싸도 가보믄 전부 장사꾼이나
아니믄 딴속이 있는놈들이제…근디 거 들어 갈라믄 쉽지 않을건디…"
"그럼 어떻게 해야…"
"그라믄 낼 나하고 같이 가믄 되긴 헌디…
낼 내가 영감 고무신 하나 들고 가서 선물 한다고 그라고 들어가믄 되긴 되제,
내가 그래도 신발 가게를 허잖는가?
그라고 원래 우석이 저놈을 첨에 소개 시켜준 장본인이여 내가.
저 오살놈이 밑에서 착실하게 있었다 그라믄 별것도 아닌디 그림 가꼬 장난치는 바람에
나까지 면상 들이대기가 미안케 되브러서 글체,
근디 낼 낮에 시간이 있을랑가 모르겄네…
나랑 같이 들어 갈 때는 같이 들어가고 들어가서 내가 이야기를 해 놓을껀께
거서 사진도 찍고 구경하고 나와,
영감이 귀가 먹어서 뭔 이야기 들을 생각은 말고…
옆에서 장기 두고 술을 퍼 묵고 있어도 귀가 먹어서 인지 아니믄
오히려 그런 세상 돌아가는걸 듣기 싫어서 인지 뭔 소리 듣는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께…
몸도 그렇게 성한 상태도 아니고…"
막걸리를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고 말을 계속 했다.
"그 양반이 초창기에 그림 그릴 때는 무쟈게 어려웠다고 그러드만.
지금이야 뱃가죽 들이 늘어나서 예술입네,
작품입네 그래 싸도 예전에는 막말로 지 곱창 채우기도 바쁜 시절 이였응께…
누가 그림 그런 거 알아나 줬냐고…
그 어려운 시절에 추운 골방에서 그림 그린다고
그 영감이 고생을 함서 다리에 동상이 걸렸었는 모양인디.....
그당시 돈이 없어 가꼬 치료를 못해서 지금은 한쪽이 병신 되야 브렀어.
올케 걷지도 못하고 그라제…
내가 가끔 인사 하러 감서 겨울에는 털신 하고
여름에는 고무신을 꼭 챙겨서 가꼬 가기는 헌디
항상 한쪽은 새것이고 한쪽만 다라져 있응께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보믄 얼마나 힘들게 거동 하시는지는 알제…
지금은 돈도 많이 벌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렇게 인심이 팍팍한 사람은 아니여…
근디 희한하게 다른 사람은 그림도 한 점씩 주드만 나는 생전 가도 그림 한 장을 안주드만…
그래서 언젠가 내가 물어 봤제…'어른신 저도 짜잔한 그림 한 점 주쇼'
그랬드만 그 영감 뭐라는 줄 알아? "
남농에 대한 호칭이 영감, 그분, 어르신…
여러 번으로 바뀌어 갔지만 그래도 존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영감이 뭐라는 줄 알아?'하고 나서는 손가락으로 우석 이라는 사람을 가리켰다.
"아 그 영감이 '자네는 우석이 한테 한 장 달라고 그러게' 이라고 말을 하드 랑께...
그것이 비꼬는 것은 아니고 저 썩을 놈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 이제.
뭔소리냐 하믄 '잘그리는 사람 옆에 두고 나한테 그럴 필요 없다'
그런 이야기제 근디 저 썩을 놈도 인자 동양화는 붓을 꺾었다나 뭐라나…
인자 안 그린다! 그라네 "
옆에 있던 우석이가 낄낄 거리고 웃었다.
"성님 그것이 아니고,
그 영감 그림을 몇번 그리고 난께 인자 다른 그림은 흥미가 없어져 가꼬
인자 붓을 잡으믄 그 영감 그림만 그려 진당께. 그래서 그라제 붓에 손 놓은건 아니고…
그라고 지금도 여그 저그서 일거리는 들어오요.
똑 같이 그려 달라고…
근디 원본이 맘에 들믄 그려 주고 원본이 씨원찮으믄 돈 많이 준다고
그래도 안한다고 털어쁘요.
며칠 전에도 누가 뭘 또 그려 주라고 그라든디
원본도 없이 쬐끄만 사진을 가꼬 와가꼬 그릴 수 있겠냐고
그래서 원본을 봐야 겄다고 돌려 보냈제…
사진을 본께 무쟈게 좋아 보이드만…
사진만 봐 가꼬는 택도 없제…
요새 내가 그래가꼬 묵고 사요…쪽팔려 죽겄소."
"썩을 놈 그래도 쪽 팔리는지는 아는 갑네."
"어떤 놈은 국전에 출품할 그림 멋지게 그려 달라고 돈 싸들고 온 새끼도 있어라.
내가 죽을때 꺼정 비밀은 지켜야 헌께 언놈 이라고 말은 못 하겄는디…
그때도 영감이 심사위원 아니었소…
영감이 나를 몇 번 불렀는디…
내가 안 가브렀소...
나는 그것 땜시 부르는지는 몰랐는디…
뭔소리냐 하믄 영감은 내 그림인지 눈치를 챈것 같은디..
긴가 민가 해서 확인을 할라 그랬는 모양인디..
그래도 그 작품은 입선을 했다고 그랍디다.
그랑께 영감이 알고도 나한테 주는 셈 치고 입선을 준거 같습디다.
그 뒤로 양심에 찔려 가꼬 출품작 이라고 그라믄 인자 내가 '붓을 꺽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브요.
그래서 그 이야기가 나왔제 성님이 주라고 그라믄 그거 한 장 못 그리겄소?"
우석이 라는 사람의 재능도 대단하고 한 눈에 그의 작품을 알아 봤다는
그 스승의 예술적 감각도 부러울 뿐이었다.
우석이 라는 사람은 나이에 안 맞게 철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처럼 많이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발 가게 쌍식이 아저씨가 한마디 거든다.
"그라믄 나는 됐고,
낼 저 기자 양반이나 그림 한 점 줘라,
여 까지 왔으믄 그래도 기념으로 뭔가 하나는 챙겨 가야 안 쓰겄냐?"
"낼 극장으로 오쇼,
내가 집에 몇 점 그려 놓은 거 있는디
두 점 드릴랑께 하나는 기자 양반 집에 표구해서 걸어 두고 하나는 누구 선물 하든가 하고,
만약에 그림을 좀 볼 줄 아는 사람 같으믄 좋아라 할 것이요,
그라고 그 그림 보고 또 부탁할라믄 그때는 돈을 받을랑께 그렇게 아쇼.
낼 극장으로 오쇼…"
낄낄 거리고 웃으며 한마디 더 했다.
"내가 막걸리 몇 잔에 그림 팔아 보기는 또 첨이네…기자 양반. 싸게 친 거요 "
"아 작것 지랄 허네."
신발 가게 주인의 응수가 재빠르다… 셋이 모두 함께 웃고 말았다.
"아침밥 묵고 바로 오쇼,
이장사도 새벽 장사라 일찍 문 열거든 그것이 내 모가치고 헌께
점빵문 열어 놓고 내가 델다 줄랑께 그리 알고…"
"예,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금 부터는 그냥 쌍식이 형님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요.…"
그래 봤다.
"쌍식이가 내 이름은 아니여....
그라고 그냥 형님 허믄 되제 뭔 쌍식이는 갇다 붙이고 난리여."
그 이후의 술자리는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 없이
또 향란이라는 그 집 주모의 성화로 쫓겨나면서 그날 그 술자리는 마무리가 되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