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에 한 시인이
麗季一詩人 여계일시인
빼어난 글귀를 얻을 욕심으로
欲得秀句 욕득수구
짧은 도롱이에 누런 소를 타고
被短蓑跨黃牛 피단사과황우
천수원(개성에 있던 절) 앞 모래사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往來天壽院沙川 왕래천수원사천
매일 수염만 비틀고 꼬며서 거의 백일이 다 되었다
日日撚鬚將近百日 일일연수장근백일
겨우 얻은것이
只得 지득
흰 갈매기는 날아가면서 푸른 산 허리를 가른다
白鷗飛割碧山腰 백구비할벽산요
-출처: 오산설림(五山說林)
차천로(車天路:1556~1615)가 지은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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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비 오는 날에 소를 타고
냇가 모래 톺을 거닐면서
백날을 수염만 쓰다듬고 꼬으면서
얻은 것이 겨우 한 구절에 불과하다
시 쓰기가 이렇게 어렵지만,
그의 시를 누가 제대로 알아줄 것인가?
소를 타고 다녔던
근세 시인 수주 변영로(卞榮魯) 선생님이 기억난다.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을 책으로 낼 정도로
그분은 자타공인 지독한 술주정뱅이(?) 었다.
그 유명한 일화가 명정 40년에 실려 있다.
1920년대에 염상섭, 오상순, 이관구 등과 가불 받은 원고료로 성북동 골짜기에서 술을 마시고
옷을 벗은 채 소를 타고 혜화동 로터리까지 내려와 가족들이 데려갔다고 한다
나체로 소를 타고
서울 한 복판을 간다는 것은
대 자유인의 기백이었는지
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고려시대 한 시인은 소를 타고 시를 구하고자 했고,
1920년대의 변영로는 무엇을 구하고자, 소를 타고 내려왔는지......
오늘날의 시인은 말을 아낀다
허투루 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말들을 시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 까닭을 알기에
마음이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