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료는 문(文),무과(武科) 출신의 문,무관과 문음(門蔭)등을 거쳐 출사(出仕)한 음관(蔭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벼슬길은 문(文),무(武),음(蔭) 셋이었다. 이들은 관료조직의 구성원이었으며, 당시 권력구조의 틀속에서 정치를 운영해온 지배세력이었다.
음관은 문음(門蔭),천거(薦擧),특지(特旨)등과 같이 과거제 이외의 모든 관료임용제도에 의해 임용된 관료이었다. 음관을 “선세(先世)의 훈공을 이어받고 가문의 공덕을 배경으로 벼슬하는 자”라고도 정의하고 있다.음관을 선발하는 인사제도는 문음과 천거로 대별되며, 이를 합쳐 음서제(蔭敍制)라 한다. 그중에서 특히 관심을 끌어왔던 문음은 부조(父祖)의 공음(功蔭)에 따라 관리를 서용하는 인사제도였다. 문음취재(門蔭取才.문음자제를 관직에 등용키 위해 치러던 간단한 시험) 출신자들에게 초입사(初入仕)를 허용하여 임기가 차면 실직(實職)에 서용하였던 것이다.그리고 특지(特旨)는 임금이 3품이상의 문무관을 특별히 임명하는것을 말한다. 유일(遺逸)이란 벼슬에 등용되지 못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지방관의 천거를 받아 등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유일(遺逸) 이외에도 천거의 종류는 다양하였다. 효행자, 성균관공천, 향천(도천), 적장천 등이 시기에 따라 중요도 및 비중의 차이를 나타내고, 대우와 범위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귀족제적 요소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음서제의 이러한 귀족제적 특성은 과거제와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관건이 될 수 있다.
음(蔭)의 사전적 의미는 부조(父祖)의 유훈(遺勳) 또는 문벌(門閥)의 여영(餘榮)에 의하여 특별대우를 받는 일이다. 그 특별대우란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문음취재와 종친음(宗親蔭),공음을 통한 실직으로의 등용, 대가(代加.품계에 오를 사람이 경우에 따라 아들,사위,동생,조카등으로 하여금 자기 대신 품계를 받음), 특수시위군(特殊侍衛軍)에의 입속, 천거에 의한 출사, 적장천(嫡長薦) 등을 말한다. 이 가운데서 품계를 받는다든가 체아직(遞兒職.현직을 내놓은 문무관에게 주던 벼슬)을 받는 경우에는 음관에 포함시킬 수 없다. 실직으로 초입사하기 이전에 음을 통해 품계가 더해진다거나 동정직,체아직을 받았다고 해서 음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음관 초입사라 함은 음에 의해 직사가 있는 동반직에 임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음서출신의 음관은 문무의 과거 출신과 출신상의 구별이 있었다. 이러한 음관은 조선 초기(鮮初)부터 문과합격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음관의 초수관품과 초직으로서 권지(權知,요즘의 수습)직을 받는다는 사실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성중관 입속과 권무직·권지직 등의 입사가 주로 이루어지던 음관은 세조년간에 이르러 초입사직이 참봉중심제로 개편되면서 음관 초입사직의 정직화가 단행되었다. 따라서 음관의 지위는 조선 건국 이래로 꾸준히 현실화 되었지만, 음관의 청요직(淸要職) 진출제한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문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료적 성격을 갖는 음관은 시기에 따라 지위상의 변화를 겪었다. 성종년간에 대두하기 시작한 사림(士林)들은 기존의 권력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를 단행하였다.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는 사림들은 구질서의 개혁을 도모하는 가운데 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타협과 병존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무관과 대항하는 음관은 점차 정치구조의 핵심적 지위에서 배제된채 구조화 되었다. 그러나 조선후기 사림의 벌열화(閥列化)와 각 정치세력의 갈등 속에서 음관의 정치적 역할은 중시되었으며, 음직과 음관수의 확대로 문벌(門閥)을 더욱 중시하는 관료제사회로 변화되어 나갔다.
출전: 상기 글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임민혁선생의 음관(蔭官)제도에 관한 연구자료에서 발췌,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