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지역문화의 해에 문화현장과 지역 현안을 살필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의 보존과 개발은 그 문화의 지역성과 보편성 그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보다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충북 사람들은 모둠살이를 통해 지역문화를 형성해 왔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가야 한다. 이제 문화 뿌리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은 세방화(世方化)시대에 달라져야 한다. 이에 남한강 중.상류지역을 중심으로 한 우리 충북 북부지역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을 밑그림으로 삼아 오늘날 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역문화 유적의 독자성을 살펴봄으로써 제천문화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지킴이 노릇을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남한강 수계 중원문화권의 핵심지인 충주 그리고 인근인 괴산, 음성 남한강 상류의 제천.단양.청풍.영춘의 이른바 사군문화(四郡文化) 지역에는 선비지향의 국면과 풍농지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충북문화 또는 호서문화의 위상을 고려하여 제천문화의 특징과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논의를 좁혀서 제천문화의 진국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면서 진취적인 대응력이 돋보이는 측면에서 화두를 이끌어내고 싶다
2. 중원문화권이란 말과 충북 북부지역 문화는 있는가
충북문화의 한 축인 충북 북부지역은 흔히 중원문화의 핵심 지역인 충주 그리고 제천, 단양, 괴산, 음성을 떠올린다. 충주지역은 남한강과 달천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끼고 발달한 곳인 만큼 충북문화의 고유성을 여느 지역보다 풍부하게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남한강 본류와 달천 등의 지류를 포함하는 중원문화는 대응적 기질 속에 선비지향의 일면과 중심 위주의 양태 속에 교류지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중원문화의 특징에는 능동적이면서 진취적인 대응력이 돋보인다. 여느 지역과 달리 중원문화는 상층문화와 기층문화의 상호 호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한강 중류 유역은 한반도의 내륙 주요 무대에 위치하고 충주가 그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남한강 상류와 달천을 합류하는 중류는 밭농사와 논농사가 혼합하면서 일찍부터 정착 마을을 이룰 수 있었던 곳이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인 충주 일대의 유역은 이른바 중원문화권이라고 불려져 충북문화의 지역성과 남한강 문화의 정체성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 지역이다. 중원문화권의 전승 범위는 충북 충주를 중심으로 괴산.음성 일부, 과거 청풍부 일부, 강원도 원주 일부를 포함한다. 좁은 의미의 중원문화권의 바탕은 남한강 유역 중.상류의 산간문화와 하류의 벼농사문화를 양면으로 유지하는데 여느 지역보다 가층문화(加層文化)에 대한 대응력도 강했으나 기층문화에 대한 적층성도 독특하게 자리잡았다. 중원문화권의 핵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지역적 성격을 드러낼 때 여느 문화권과 달리 ‘문화접변’의 양태는 매우 중요시하게 다루어야 한다. 중원문화권은 남한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어 남한강 유역 문화의 특성을 가장 총괄하여 보여주는 곳이다. 남한강 유역의 복합적 문화층위를 보여주는 중원문화권은 ‘한강 수계(水系)’를 의식하여 설정되었다. 실제로 중원문화권이라는 용어는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었지만 정작 남한강 유역 문화의 정체성 또는 충주지역 문화의 본질론을 드러내는 데는 학술적인 진전과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이다. 이는 문화권역의 관념론에 매달리다가 충북문화의 고유성과 남한강 물길 천리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충북문화의 미래지향적 인식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거시적인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남한강 물길은 역사적 배경만으로 국한할 수 없다. 충북 중.북부 지역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물길은 문화의 교통로이면서 문화를 창출하는 집단의 인성을 반영하는 상징인데 그 층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남한강 물길의 교량지인 충주는 기호문화권을 이룩하는 한강과 영남문화권을 형성하고 낙동강을 잇는 길목이었다. 분명 충주문화는 충북문화 또는 중원문화권의 한 축임에는 틀림없다. 문화의 통시적.공시적 층위를 염두에 둘 때 다음 (표 1)처럼 중원문화를 정리할 수 있다.
이 <표 1>을 통해서 충북 북부 문화에 대하여 통시적 층위(層位)를 가늠할 수 있다. 중원문화권의 상징적 의미는 남한강 물길 천리를 받아들이면서 통시적인 변화와 농경문화적 기반에 대응하여 삶을 영위한 지역민 또는 향유층의 민간사고에 있는 셈이다. 남한강의 전승문화란 공유되고, 학습되며, 축적적이고 체계를 이룬 가운데 변화되는 속성을 가진다. 남한강 유역의 사람들은 물질전승의 가시적 현상보다 행위.구비전승과 관련된 정신문화에서 독특한 기질이나 독자적인 사유체계를 축적하였다. 남한강 사람들은 강과 멀리 떨어진 곳과는 달리 교류문화, 교역민속 등의 기반 아래 교류의식이 두드러졌다고 본다. 이들은 민속상의 다양한 실체를 통해 문화의 정체성과 그것의 바탕인 인성(人性)을 형성하였는데 그 전승문화의 민속소(民俗素)에 두루 나타날 뿐만 아니라 상층문화의 선비지향성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중원(좁게는 충주)은 남한강 수로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남한강의 물길은 뱃길로서 문화교류의 통로이고, 배가 닿던 나루터는 전승물의 집약적 길목이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던 배는 나루터와 함께 물자교류의 매개수단이다. 남한강은 조선 건국 이전에는 남북극시대의 경합지 또는 고려 시대의 수도권 배후지로 있다가 조선 초기부터는 수도권의 생산물 공급지 또는 생필품 교류지였다. 뱃길은 뗏목, 세곡(稅穀) 등을 상류에서 하류로, 소금, 새우젓 등을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시키던 물길의 상징이다. 이처럼 물길에 따른 교류성은 정신적 교감의 동류의식을 만들었다. 동류의식은 보부상(장사꾼), 거간, 선질꾼, 뗏목꾼 등에서 고루 나타난다. 그들은 교역민속의 주인공들이고 남한강을 지킨 강통들이다. 적어도 중원인은 조선시대 이후에 남한강 교류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탑평리의 중앙탑(국보 제6호)는 상징적이다. 중원경(中原京)에서부터 나온 중앙의식은 그 반대의 역사적 변화에 대응력을, 평상시에는 자기 중심의 자존의식을 불러 넣은 계기가 되었다. 이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면서 이 지역을 서울 중심의 변방이라는 것보다 서울 이외의 또 다른 교류의 대표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양반의 거점도시, 참운(站運)과 경강선(京江船)의 내륙항구도시 등으로 거듭 확인하는 셈이다. 남한강 유역의 정착민은 조선시대 물길을 따라 물상권을 가진 이주민과 남한강 주변 절경을 찾은 유람객과 교섭하면서 수도권 정황에 민감하여 ‘충청도 양반’의 기질을 보인다는 점이다. 상층문화 또는 가층문화를 염두에 두면 주변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경제교류사 측면에서 보면 풍족한 문화적 혜택을 확보하였다고 생각한다. 남한강 유역의 거성(巨姓)집단이나 사족(士族)층에서는 수도권의 고급문화를 누렸고, 이러한 불교.유교적 문화는 기층문화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김생.강수.신립.임경업 등을 기리는 전통도 이와 관련이 있다. 가층문화에서 기호학파의 학맥과 우륵 중심의 예술적 흐름이 전통 향반의 고장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 좋은 예다. 이른바 보수적 학풍과 관습을 받아들이는 ‘대접 규범’은 예향(藝鄕)의 자연친화적 풍류와 줄서기의 대응적 내향성이라는 두 성향을 형성하였다. 중원일대의 사람들은 교류문화에 대한 적응력과 현실대응력이 강하다. 남한강 사람들은 과거 중앙중심의 문화여건에서 변경의식이 싹텄지만 이들은 대체로 시대별로 ‘꼬장한’ 정신문화를 계승해 왔다. 남한강 유역에 양반들이 사회적 거주가 장기화되면서 지배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이후에 중원문화의 정신적 일면과 전통적 상징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상류 쪽은 센 기질과 순박성이 어우러져 있는데 비해 하류 쪽은 비공격적이고 평온한 기질을 보여준다. 이를 친교적 교류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주의 자린고비라는 언어전승처럼 인색하거나 약다는 성향을 드러내지만, 충청도 양반 또는 청풍명월이라고 하듯이 민속소에 두루 나타나는 인성은 주변적 대응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민속의 교류성과 이원성 곧 열린 강의 상징과 닫힌 산의 경계선이 기질을 형성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수계 중에서 남한강 유역의 지역민은 여느 지역보다 반상의식(班常意識)을 잠재적으로 지닌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중원지역 전승문화는 한반도 중심부 또는 북방계 중부문화의 집결지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중원 사람들의 기질은 대응적 경향이면서 근본을 따지는 상승적 성향을 띠는 것이다. 지역 어른집단의 모범에 따르는 내향적 선비정신이 나타난다. 중원지역의 교역민속(交易民俗)과 친교적 삶은 강과 연결된 옛길이 미치는 내륙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운과 조운은 한정적인 면을 보이지만 선상의 교역은 연중적이고 이른바 강변문화를 형성하였다. 배를 이용한 물자교류는 전승문화의 기반과 성격에 작용하였다. 조운이 가흥창, 흥원창 등 포구를 이용하였고 선상 역시 목계, 양진 나루처럼 상업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남한강 유역의 중원문화는 충북문화의 전통성과 현재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오늘에 살릴 수 있는 창조적인 계승작업이 필요하다. 충북문화의 소단위를 금강유역 권역, 중간 권역, 남한유역 권역으로 인식하여 집중적인 차별화 작업이 요구된다. 충주 중심의 남한강 유역 문화관광 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관련 지자제 단체장의 협력이 필요하다.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등 관련 단체장은 이러한 문화산업에 마인드를 가지고 물길을 묶을 수 있는 기획을 해야 한다. 육로와 수로를 연계하여 집중 개발해야 한다. 이름하여 남한강 문화체험 코스라고 하여 한반도 핵심문화의 길을 관통하는 사업이 전개되어야 한다. 충북문화의 한 축인 중원문화의 지역성을 충청 또는 호서라는 이름으로 대표성과 연계될 수 있다. 충청성 또는 호서성이라는 성향은 문화층위의 지역화에서 나온 것이다. 충주, 음성, 괴산, 제천, 단양 등이 두루 이런 인식에서 지역문화론을 논의해야 한다. 개념 집착보다 실천의 문화창달을 위주로 한 발전 전략이 요구된다. 한 단계 좁혀 민속문화의 지역화를 살필 필요가 있다.
3. 무엇을 제천문화의 대표적 상징성으로 해야 할 것인가.
충청문화, 충북문화, 호서문화 등의 이름에 대한 출발점은 제천 의림지다. 이 시대의 지역 담론을 집약해서 말하기 위해 ‘내제(奈堤)’를 들먹인다. 제천문화의 두 축은 남한강 본류의 청풍강 일대, 그 지류인 제천천과 의림지를 정점으로 한 내륙일대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 청풍문화제와 의림문화제가 있었듯이 청풍문화와 의림문화가 중원문화권역이면서 사군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지속과 변화를 보여주면서 오늘의 제천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청풍문화는 ‘강’이란 열린 공간과 의림문화는 ‘산’이란 닫힌 공간으로 인해 둘의 관계는 수로문화와 산간문화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천문화의 기반에는 개방적인 듯하면서도 지리적인 배경 때문에 ‘안으로 챙기는’ 현실 대응성이 짙게 나타난다. 이러한 성격을 제천문화의 주요 상징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지역문화의 상징화 작업은 취향문화(趣向文化) 시대에 우선하여 강조되어야 한다. 첫째, 한벽루는 열리고 닫히는 이중의 풍류미가 있다. 신화 없는 양반문화의 고장에 선비의 기개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누구든 받아들이는 듯하면서 서열의 권위성을 은근히 내비친다. 비숍 여사가 말한 청풍인의 꼬장한 장난기가 있으면서 사귀면 의리가 느껴지는 제천의 국보급 건축물이 아닌가. 한벽루는 시(詩)의 박물관이다. 둘째, 덕주사 마애불은 창석리 인골과 제천사람들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제천의 선사시대 사람들의 얼굴은 오늘날 제천 얼굴이라고 확언할 수 없으나 한강을 주도했던 이 지역의 얼굴이 미륵불 ― 한산사 석상 ― 장곡리 부처(사라졌지만 찾아야 할 유산) 등에 새겨져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선사시대 사람 얼굴을 알 수 있는 곳이 제천 황석리 뿐이다. 셋째, 의림지는 한국 최고의 농경문화의 자존심의 얼굴이고 용신당의 인위적 조성물이다. 천지와 백록담이 자연적 물 유산의 으뜸이지만 신석기 이후 ‘농사’의 혁명적 상징물로서 원형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구나 칠성봉과 용두산으로 연결하는 풍수개념의 활인지(活人地)라는 측면에서 매우 소중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또 순채의 원조 서식지, 소나무와 버드나무의 상생지(相生地), 박수검 학맥의 터전, 의림지 기줄다리기 현장 등 무수한 문화양태를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농업사 박물관이 아닌가. 넷째,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모태는 황강서사이고 그 중심인물은 권상하(權尙夏 : 1641~1721)다. 황강영당으로 지금은 알려져 있으나 본디 ‘한수재’는 기호학파 이이 ― 송시열로 이어지는 충북학맥의 전당이다. 이 곳에서 이른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가 배출되었고 이들이 실학파 지식인의 본원적 스승들이다. 또 이 곳의 영향으로 정철과 윤선도와 겨룰만한 옥소 권섭이 나왔다. 그의 시문학은 청풍강이 텃밭이었다. 다섯째, 의병의 진원지는 자양서사였고 그 활동의 본거지는 박약재였다. 자양서사는 자양영당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수재와 더불어 제천지역의 지식인 배출의 요람이었다. 유중교 ― 유인석 ― 이정규로 이어지는 걸출한 인물들에 의해 오늘날 대학 수준의 교과과정을 통해 ‘선비의식’을 고취하였다. 두학 박약재는 검은 돌 강치네 터전에 내려오던 최고의 서당이었는데 이강년 등 의병장들의 작전 모의 처였고, 나중에 『창의사실기』가 집필.편찬된 곳이다. 자양영당의 춘.추향제와 과거 향음례는 조선적 문화의 원형성을 간직한 것이기에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배론성지는 외래문화의 지역화에 모범적 사례다. 황사영 백서,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 등의 유산은 지역민의 옹기굽기와 상부상조의 품앗이 등 생활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희망의 ‘배’터에 자리한 배론은 지역적 여건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복음’의 씨앗뿌리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운 제천의 또 다른 성소(聖所)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인 출신 최초의 목사라고 말하는 최병헌이 제천출신이라는 데도 이런 사연과 아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일곱째, 박달재 서낭당, 오티리 오티별신제, 만지실 공알바위 수구제 등은 이 지역 고유의 원초적 사유체계를 보여주는 전승물들이다. 박달재 금봉이와 박달 이야기는 김취려 장군 이야기와 함께 ‘고개’의 단절과 방어길이라는 이미지와 연결하여 지역적 폐쇄성과 교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봉이와 박다리의 캐릭터 개발도 이에 연유하고, 박달재 계승화도 박달재가요제, .울고 넘는 박달재. 창극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오티리 별신제는 제천지역의 마을신앙을 가장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별신제의 원형성을 ‘억세게’ 지켜 왔다는 데 의의가 크다. 만지실 공알바위는 성(性)신앙의 최고 걸작품이면서 지금도 섬기는 자연신앙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
4. 왜 문화의 전략화에 의병.의림지.청풍명월 등의 이미지가 필요한가
지역문화의 세계화는 지역 특유의 전통문화의 유지보존과 창조적 계승, 그리고 독창적 개발에 있다. 문화자원에 대한 문화공학(文化工學)적 인식이어야 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이다. 지역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차별성을 창조하고 계승하여 이를 전국적으로 또는 세계적으로 널리 인식시키고, 인정받는 시점이야말로 21세기의 문화적 경쟁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 남을 수 있다. 제천 사랑이 21세기 살맛나는 제천 만들기의 정신적 힘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야 한다. 제천지역 전통문화를 대상으로 세계화의 방안을 모색할 때, 무엇보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에 있다. 축제를 통한 지역문화의 인식 확대와 그 보급선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천다운 문화를 가꾸기 위해 문화적 분별력과 내성(耐性)을 갖춰야 한다. 제천지역의 축제는 기왕의 의림문화제와 청풍문화제가 합해져 제천의병제(義兵祭)로 거듭 태어났다. 제천지역 축제에 ‘의병’을 특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의병문화제는 희생제의(羲生祭儀)라는 신화적 구조와 도덕성이라는 현실주의의 구조가 있다. 제천지역의 역사적 전통을 감안하여 관광축제화, 교육축제화, 향토가꾸기 축제화가 되어야 한다. 의병제를 떠올리면 제천의 이상적인 시상(市像)이 이미지화될 수 있도록 관련 문화유산을 현대 감각적으로 재창조되어야 한다. 이밖에 겨울에는 의림지 중심의 대보름 공어 축제, 봄에는 청풍명월 축제, 여름에는 순채 축제나 청풍강의 수상 축제, 박달재 산림과 약초 축제 등을 통해 사계절 순환식 향토축제를 가꾸어갈 수 있다. 세명대학교 청룡축제도 지역민과 연계하여 더불어 문화를 가꾸어 가는 대학축전이어야 한다. 이를 전문성 있게 이끌어갈 문화공동체가 필요하다. 지역문화의 집결지라고 부를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시민운동도 필요하다. 바람직한 지역문화운동은 낡은 사회제도나 오도된 문화,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민 주체의 활동이다. 청풍면 읍리 580평의 청풍문화재단지에 10억 원을 들여 연면적 180평 규모의 향토유물 전시관을 개관하고 있다. 제천의 유형문화유산이 청주박물관에 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나 본격적인 박물관이 없다. 제천에는 의림지 중심의 농업문화사 박물관, 청풍문화재단지 중심의 선비지향 특화박물관, 자양영당이나 남산 중심의 의병사(義兵史)박물관, 약초시장이나 세명대학교 한의학 연구소와 관련한 약초 및 한약 박물관, 점말동굴, 황석리 등의 박물관 부속 지역학교와 선사유적 박물관, 박달재 중심의 산간문화 박물관 등이 건립되어야 한다. 또 지역언론에서는 21세기에 걸맞는 정보화와 지역의 문화가 어울리는 기획물이 마련되어 향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곳에서 전통문화강좌, 역사교실 등을 개설하여 시민과 관광객은 물론 다음 세대의 인재를 교육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를 주도하는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과 시민의 전통문화에 대한 생활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도시를 계획화하는데 전통문화의 보존과 개발에 대한 상생적 시각이 논의되어야 한다. 기왕의 도시계획에서 문제점을 문화창출과 연계하고 제천다운 도시구상이 이루어져, 수준 있는 제천 21세기 문화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시민단체나 봉사단체, 교육기관에서는 참맛나는 제천 가꾸기를 위해 출향인사(出鄕人事)는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문화의 긍지와 홍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달재의 명소화 계획과 더불어 박달이와 금봉이를 캐릭터로 하여 기왕의 인물마인드를 개발해야 한다. 문화유산을 관광화하여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유무형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정비해야 한다. 문화 유적지를 테마 투어코스로 개발하고 지역 인물의 선양 이벤트를 개최함으로써 관광객 또는 시민들에게 전통문화 체험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제천 관광사업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하되, 전통문화의 창조적 재현을 통해 외지인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사군(四郡)문화의 연계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려 왕건 촬영장과 청풍호반의 고사분수 등을 활용한 기반시설의 체류형 관광단지 만들기가 필요하다. 제천 모든 지역을 연계할 수 있는 제천 십경(十景)도 다시 조성해야 한다. 남한강 상류 문화 답사 및 관광의 중심지가 ‘제천’이 되도록 여건 및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은 주체성 있는 향토 가꾸기의 덕목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인간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마당에 반드시 ‘충북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의 평생교육원 문화강좌, 향토문화학교 운영이나 제천문화원 내의 제천 문화교실을 여는 것 등이 그 대안이다. 세계화 교육도 자라는 세대 곧 초ㆍ중ㆍ고 제천의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를 염두에 둔 건강성, 도덕성, 세계성 등과 같은 인성교육(人性敎育)에 달려 있다. 그들은 향토애를 가지고 미래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지역의 주체다. 그들은 지역화를 주도하고 살맛나는 제천의 세계를 여는 인재다. 미래를 준비하는 건강사회는 그들의 인성교육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문화의 독자적 창출은 큰 데 있지 않고 작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긴 안목을 가지고 교육과 문화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살기 좋은 제천의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는 이를 통해 지역 또는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나아가 이러한 전통문화유산을 통해 새로운 제천문화를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전통문화의 고부가 가치는 엄청난 지적 재산이다. 제천시 사업으로 무형문화에 관해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해서 그 결과를 자료센터에서 분류, 정리, 보존, 출판하고 이와 관련된 민속지도를 작성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안목과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창조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세명대학교와 대원과학대의 전문성을 활용하며 제천지역의 전통문화를 개발하되 그 정체성의 진단이 수준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적 깊이로 인문학의 활용, 시대적 변화인 정보기술의 요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제천 전통문화의 창조적인 작업을 누가 봐도 옛것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과 색채감각이 이를 받쳐주어 고품질의 문화상품으로 탄생할 것이다. 제천문화의 현안과 대책은 법고창신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천박한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전통문화의 인간애를 지켜갈 때 제천문화의 미래가 있다. 전통문화를 마음 깊이 느끼면 미래가 보인다. 천박한 자본주의 욕망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조선적 환경친화의 세계관으로 살았던 ‘선비’라는 이름의 옛 선인처럼 문화의 친자연화, 몸과 마음의 상생화(相生化) 등 근본과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문화를 디자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지역민은 ‘특정’ 지적 욕망을 꿈꾸는 자가 아니라 우리 것의 창조적 현현(顯現)을 통해 절제적 수양과 공덕의 욕망을 홍익인간의 실천 작업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돈 위주의 근대화 논리를 비판하고 서구적 문화의 유입으로 우리의 장점을 잃은 측면을 회복하며 21세기 한국문화형 찾기와 제천다운 지역문화의 모형화를 만들어 활성화하고 전통문화를 화두로 삼아야 한다. 그 곳에 의병이 살아 있고 의림지와 청풍명월이 명상의 아름다운 대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5. 왜 민족문화의 상생적 지역화는 공동선 추구에 초점이 있는가
충북 지역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일은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라는 것도 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21세기형 지역문화의 현안과 대안을 민주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 지역문화의 정체성 인식은 고정불변의 고착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의 열린 공동체 경험과 실체 속에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천지역은 수려한 백두대간의 터전에서 월악산과 연계된 남한강(청풍강)의 문화발상의 젖줄과 농경문화의 상징인 의림지를 정점으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여 왔다. 이 지역의 고유문화와 천혜의 자연자원을 묶어 충북 북부 사군(四郡)문화 또는 호서(湖西) 문화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여건을 바탕으로 지역민의 문화적 여건을 바탕으로 지역민의 자긍심과 자존을 높이고 애향심을 살리고 미래지향의 지역사회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는 지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자주성을 유지하며 연대.협력을 촉진시키려는 지역주의(regionalism)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보편주의와는 상대 개념으로 지리적.행정적 분야에 의해 나눠진 일정지역의 사회를 뜻한다. 따라서 지금 여기의 제천 지역사회는 자생적 단위가 아니고 인위적 단위로 성립되었다. 지역사회의 정체성 확보도 이런 점에서 자연적 지역과 인문적 지역, 이 둘을 상생적으로 조화된 고장의 유기체로 인식해야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지역문화는 지역감정을 배제한다. 지역자존, 지역가꾸기, 지역사랑, 지역교육 등의 지역문화의 핵심항목이다. 지역발전은 지역감정이 앞서기보다 이성적.합리적 태도가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지역문화의 복사품은 중요하지 않고 특화를 통한 법고창신화의 길이 요구된다. 지역사회개발과 문화재는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중앙과 지역, 개별과 보존, 전통과 현대, 지역화와 세계화라는 상충적인 개념에서 ‘지역발전 방향’이라는 공동의 인식이 내재한다. 지역사회가 공동운명체라는 명제가 두루 통하듯이 지역문화와 문화재는 지역정신의 공급처이며 동시에 지역발전의 에너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천지역 문화의 활성화는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강화시키고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데 일체감과 공감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단체는 지역사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구성원 간 합리적인 의지로 더불어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앞선’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제천문화의 정체성 찾기는 의림지 소나무처럼 편견 없는 모임에서 지역 마인드를 부각시킬 수 있는 공동체 담론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여론을 수렴하고 이를 집약하여 다시 제공 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 지역문화의 지킴이 또는 일꾼들은 지역사회의 눈높이를 조절하고 지역사회 구성원간에 상생적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같은 지역문화 현장을 찾아가는 행사가 중앙 중심의 획일적 사고에서 나와서는 감동이 없다. 새마을운동이 물질적인 풍요 부문은 정책적으로 획일화되어 성공하였으나, 정신적인 실천 부분은 정신적인 실천 부문은 지속화되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 문화의 획기적인 변환은 위정자를 잘 만나야 이룰 수 있었지만 21세기 취향문화 시대에는 문화자원화에 대한 주민들 위주의 상생적 공감의식이 절실하고 지역문화 주도자들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발품’의 뛰는 감각이 요구된다.
이창식 - 강원 삼척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동대학원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민속학회, 한국민요학회 이사로 있으며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민속문학이란 무엇인가>(공저), <한문의 세계>(공저),<새로 읽는 향가문학>(공저),
첫댓글 2004년 5월 세명대에서 있었던 세미나 주제발표로 기억되는데, 글의 출처도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창식 - 강원 삼척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동대학원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민속학회, 한국민요학회 이사로 있으며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민속문학이란 무엇인가>(공저), <한문의 세계>(공저),<새로 읽는 향가문학>(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