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74:9-11절
제 목 : 표적도 없고 선지자도 없고
일 시 : 2025. 7. 16.
시편 74:9-11/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시편 74편은 매우 슬픈 시입니다. 표제는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저자인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인 아삽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배경이 다윗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삽은 여두둔이나 헤만과 같이 한 부족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아삽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의 배경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왕하25:8-21절 참조).
이 시의 주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표현된 것을 보며 시인은 자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자기민족이 하나님께 속한 기업이며 언약의 백성임을 호소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받은 수치와 능욕은 곧 하나님의 수치이며 능욕이었기 때문에 애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예루살렘이 이방인에 의해서 파괴되고 성전이 불타는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속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시74편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1) 먼저 1-11절까지는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2) 두 번째로 12-17절까지는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온 우주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 18-23절까지는 우매한 백성(바벨론)이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9절에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 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표적(오토테누)이란 4절의 표적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4절에 시74:4/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표적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정복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표적으로 깃발을 세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9절 말하는 표적은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징조로서의 표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징조로서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 선지자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일곱 번이나 기도했을 때 하늘에 손바닥 만한 구름을 보여 주신 것이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통로이자 수단인 성전이나 회당이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본 시편의 저작시기를 마카비(B.C.160-140)시대로 봅니다. 그러나 본 시편이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침공되던 시대에 저작되었다고 한다면, 그 시대에는 다니엘과 에스겔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가 엄연히 살아 있었는데 왜 본문과 같이 선지자도 없으며 라는 말을 했겠느냐? 라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의해서 마지막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다니엘은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었으며(단1:1,6), 에스겔 선지자도 갈대아 땅의 그발 강가 언덕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고(겔1:1), 또한 예레미야는 애굽 땅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렘44:1). 그러니까 이 시가 기록된 시대는 마카비시대(B.C.160-140)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침공당하고 파괴되던 시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3)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아는 자도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지배될 기간이 70년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렘25:1-11). 그러나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처참하리만치 일방적으로 당하고, 또한 바벨론은 점점 더 강성하게 되어서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비록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이 70년만에 바벨론포로에서 회복된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당시 백성들은 이스라엘나라가 회복이 불가능한 암울한 미래를 가졌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10절에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1)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적의 비방은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살륙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전을 훼파한 것 등을 가리킵니다. 비방하겠으며(예하레프)는 무시하다 혹은 비난하다 라는 뜻으로서, 상대방에게 인격적 손상을 가하기 위하여 조롱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2)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능욕하다(예나에츠)란 경멸하다 혹은 멸시하다 라는 뜻으로서, 호의적인 처분이나 봉사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경멸하면서 대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11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이나마 시편 기자가 볼 때,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공의로운 일을 게을리하고 계신 것처럼 생각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인의 이같은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은 결코 자신이 하실 공의로운 일을 게을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목적으로 잠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들의 악행자체는 결국 스스로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것과 같은 파멸로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정해진 때까지 죄악을 방치해 두시다가 그것이 도를 넘어서 죄악이 관영하게 되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공의를 성실하게 실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두 번째 단락인 12-17절에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기적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암울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위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74:12/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어둡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에서는 자신들을 괴롭히고 비방하고 조롱하는 바벨론을 대적해 줄 것을 호소하면서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시74:18-21/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20 그 언약을 눈여겨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21 학대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23 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일종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 그리고 절망적인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74편은 그 시대 사람들이 볼 때 절망적이고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자신들의 왕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자이심을 믿고 악인들을 멸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합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시인이나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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