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聽塗說(도청도설)
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소문. 길거리의 뜬소문, 또는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로 남에게 전함.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니 큰 길에서 듣고 작은 길에서 말하며, 길에서는 듣고 가만히 있다가 말하니 경박한 행동이 그지 없음을 의미함. 街談巷說(가담항설). 流言蜚語(유언비어). 口耳之學(구이지학).
論語(논어) 陽貨篇(양화편)에서 나오는 말로, 孔子(공자)는,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德(덕)을 버리는 것이니 말을 전하는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말을 지어서 말하니 또 듣고 말을 지어서 만들어 말을 전하면 상대방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길에서 말한 말은 잘 들어서 그 말을 이해하여 좋은 말은 깊숙이 간직하고 반성하고 自我(자아)를 발전하는 덕을 밝히는 자료다.
길거리에서 건성으로 듣고 다른 사람에게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이치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 : 도청이도설 덕지기야).
공자가 제자들과 학문을 하는 목적은 성현들의 지식만을 전수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론 못지않은 행동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배움의 길은 이론과 행동이 병행하여 좋은 성과가 있을 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몸을 닦고(修身 : 수신), 집안을 정제하고(齊家 : 제가),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 치국), 천하를 평정해서(平天下 : 평천하) 天道(천도)를 地上(지상)에 펴는 것을 이상으로 한 공자는 엄하게 자기를 규율하고 仁德(인덕)을 쌓아 실천해 갈 것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後漢(후한)의 班固(반고)의 漢書(한서) 藝文志(예문지)에서는, 무릇 小說(소설)의 시초는 군주가 일반 서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시킨 데서부터 시작된다. 세상 이야기나 거리의 소문은 道聽塗說(도청도설)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荀子(순자)의 勸學篇(권학편)에서는. 小人(소인)의 學問(학문)은 귀에서 들어와 바로 입으로 빠지며(口耳之學 : 구이지학) 조금도 마음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입과 귀 사이는 약 네 치(口耳四寸 : 구이사촌), 이 정도의 거리를 지나게 될 뿐으로서 어찌 7척의 신체를 미화할 수 있겠는가?
옛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연마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지금 사람은 배운 것을 남에게 알려, 자기 것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데 반해, 소인들의 학문은 인간을 못 쓰게 만든다.
진정한 군자란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고 물으면 묻는 것만 대답한다.
오른쪽에서 들은 말을 왼쪽으로 전하는 수다쟁이와 정보통이 많은데, 이런 인간들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자기의 학문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자 소위 衒學的(현학적) 행위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乂子(예자)와 毛公(모공)이 이웃에 있었다.
예자는 문하에 숱한 제자를 둔 박식한 사람이고, 모공은 무사안일 허송세월 게으름뱅이였다. 모공은 애자가 교육비도 덜 받으면서 제자를 기르고 벼슬을 하라고 하여도 하지 않는 애자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 같이 보였다.
하루는 모공이 심심하던 차에 시가지를 지나 시장터를 이리저리 다니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 귀를 기울였다.
그는 듣자마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자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볼 거야 하며 곧장 애자의 집으로 달려가, 애자를 보자마자 오리 한 마리가 알을 한꺼번에 200 개를 낳았다고 했다.
어떻게 한 마리가 날 수 있느냐고 믿지 않자, 그럼 열 개인가? 그래도 여전히 믿지 않자, 이번에는 정말이야, 어떤 사람의 집에 고깃덩어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그 크기가 20장(60m)이나 된데. 애자가 믿지 않았다.
모공은 그제야 길거리에서 누군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사실을 실토하였다(道聽塗說 : 도청도설). 그 후 애자는 모공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자들에게 모공처럼 道聽塗說(도청도설)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성완용/ 법고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