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 뚝섬 서울 숲 기행
2011, 3, 3 맑음
경쟁을 하듯 강추위가 연일 수은주를 갱신하면서, 계속되는 한파와 예상치 못했던 폭설,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로 우리 주변을 너무나 힘들게 했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의 시작인 3월이 되었다. 나의 내면에서 무엇인가로 향하는 지나친 집착이 이드와 초자아와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싫어하는 나를 불러낸 것은 친구 수경이었다. 3월말로 첫 번째 손자가 태어날 예정인 수경은 바빠지기 전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을 함께 가자며 연락을 해왔다. 또 다른 친구 몇이 함께 동행 하여 우리의 청계천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아침 9시 40분까지 청계천 광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벌써 외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태희는 첫째손녀를 학교 보내고, 둘째 손자는 유치원 보내고 오느라 10시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몇 달 후면 할미가 되는 희자와 선영도 함께했다. 우리 나이를 일컬어 효도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 효도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라고 말 들을 한다. 거기에 손자들까지 돌보아 주어야 하는 세대, 생각해 보면 운이 엄청 나쁜 세대인 것도 같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에 비하면 천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니 그것마저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청계천 입구에 서있는, 스웨덴 출신의 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한 작품이라는 소라 탑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 천변 길로 진입하니 바로 앞에 쏟아지고 있는 시원한 물줄기를 만난다. 여름에 오면 시원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이곳은 야경이 아름다워 저녁이면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화려한 야경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서울의 한 복판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삭막하기 쉬운 도심을 부드럽게 하고 있는 졸졸졸 작은 물소리를 듣다보니 바로 앞에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인 모전교가 나타난다.
다리 옆을 흐르는 물에 아주 작은 피라미 떼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여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기의 크기는 커졌고 나중엔 건져서 찌개 끓여도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물의 흐름에도 리듬감이 있고 물이 맑아서 발을 벗고 들어가고 싶어지는데 며칠 동안 계속되는 꽃샘추위로 쌀쌀한 바람이 불고 햇빛은 있는데 날씨는 을씨년스럽다.
아침에 봄 잠바를 입을까 패딩잠바를 입을까 잠시 고민하다 패딩을 입고 왔는데 역시 잘 입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속도를 내서 걷기 시작하니 이내 땀이 흐르고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어야했다. 걷는 내내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여 잠바를 입었다 벗었다했다. 겨우 한 시간 걷고 벤치에 앉아 가방의 무게도 줄일 겸 각자가 싸온 간식들을 먹자고 한다. 샌드위치, 약밥, 삶은 꼬막, 바나나, 귤 등 가방마다에서 내놓은 간식이 푸짐하다.
여인들의 나들이에는 늘 입이 즐겁다. 먹는 입에, 수다 떠는 입까지…….
다시 걷기 시작. 우리의 목적지인 뚝섬 서울 숲까지 1시 - 1시 30분 도착 예정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맛있는 칼국수를 사먹자는 얘기까지 하면서……. 그동안 쌓인 얘기들을 하느라 나는 계속 주변 관찰을 놓치고 있다. 이곳에도 혹독한 겨울을 보낸 담쟁이넝쿨이 새순하나 나올 생각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서 시멘트벽에 달라 붙어있다. 조금 더 걸으니 예쁜 원앙 한 쌍이 귀족티를 내며 유유히 떠간다. 괭이 갈매기 떼도 개천 저 편에 모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중간 중간 배열된 앙증맞은 돌다리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건너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서울시에선 군데군데 이벤트를 마련하여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체험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역사적 자료로 정조반차도가 있고, 손바닥 크기의 타일에 20만 명의 시민들이 그린 그림을 부조해놓은 소망의벽, 사랑의 자물쇠를 진열하는 곳에는 사랑을 약속하는 이들의 간절함이 모여 있다. 제주시에서 보내왔다는 물 허벅을 지고 있는 제주 여인의 동상이 청계천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서있다. 청계천에는 공중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이용 화살표를 따라 올라간 곳에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건물이 있었다. 지하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표지판을 따라간 우리는 한마디씩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달랑 여자 1개, 남자 1개의 화장실만 준비해두고 사람이 많으면 어찌하려고 이정표를 그렇게 해 놓았을까 하는……. 이런 걸 두고 탁상행정이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청계천은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 구간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 구간으로 5.8km에 이른다. 2005년 10월 1일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청계천 위에 놓인 총 2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정조반차도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를 복원한 도심 속 하천으로 개통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걷는 내내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것들을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청계천의 하루 물 방류량은 12만 톤, 이 어마어마한 물들은 모두 자양취수장에서 끌어오는데 6km의 관로를 따라 뚝도 정수장으로 흘러 정수, 소독 과정을 거쳐 다시 11km의 관로를 따라 청계광장, 동대문, 성북 천 하류, 삼각동 등으로 흘러간다. 24시간 흐르는 청계천을 위해서는 24시간 내내 돌릴 수 있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로 하는데 거기에 드는 전기료는 1년에 약 8억 7천만 원, 하루에 238만원이 소요된다. 출처 - 위키백과
청계천이 거의 끝나가는 두물 다리 옆에 활짝 핀 버들강아지 나무 한 그루가 우리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다. 버들강아지 나무에 바짝 다가가기 위해 강가로 내려가니 한 무리의 청둥오리 떼가 지나간다. 그 뒤쪽으로 청둥오리 세 마리가 헤엄쳐 오는데 수컷은 화려한 깃털 색으로 암컷을 유혹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을 의식하지 못한 척 갖은 몸짓으로 애무를 하고 교미까지 서슴치 않는다. 옆을 따르는 조금 몸이 왜소해 보이는 수컷의 마음은 어떨까 안쓰럽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 크고 강한자만 누리는 게 인간사나 다를 게 없나보다.
살곶이 다리에서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잠시 머뭇거렸다. 서울 숲이라는 이정표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갈대숲이 있는 왼쪽 길로 걷다보니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와 만난다. 지나가는 아저씨께 서울 숲가는 길을 물으니 다시 돌아가서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라고 한다. 되돌아서 걷는데 유난히 시멘트문명을 싫어하는 나의 발바닥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두꺼운 등산양말에 등산화까지 신었는데 유독 혼자서만 발바닥 통증을 느껴 포장도로를 피해 흙 위로만 걷는다. 다리를 건너고 보니 그곳에 서울 숲 이정표가 있다. 다리 저편에도 하나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왼쪽으로 중량천이 흐르는데 물길이 저만치 떨어져 있고 물빛도 흐리다.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어보니 동전만한 물집이 양쪽 발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는데 절뚝거리며 또 걷기 시작한다.
중량천변은 특별히 볼만한 것도 없는데다 강이 멀리 있어 걷는데 만 열중했다. 멀리 괭이 갈매기 떼들이 강바닥에 솟아 있는 바위위에 아무렇게나 무리지어 앉아 있다. 용비교를 지나서 바로 서울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걸 놓치고 말았다. 한 바퀴 돌아 성수대교를 바로 앞에 바라보며 도하터널로 들어가 서울 숲에 도착하니 1시 30분이다. 시간은 예정대로 소요되었다. 지난해 제주올레를 걸을 땐 6-7시간씩, 대청봉을 오를 때는 하루에 9시간을 걸어도 끄떡없었는데 겨우 3시간 30분 걸으며 물집이 생겨 혼자서 곤욕을 치르다니, 겨우 내내 움직이지 않고 방에만 갇혀 있었던 티를 내고 있나보다.
서울 숲은 워낙 넓어 우리는 가장자리만 둘러보았다. 멀리 사슴의 무리가 보이고 조팝나무, 찔레꽃, 진달래의 꽃눈을 만났다. 머지않아 이곳에 환한 꽃 세상이 오겠다. 벤치에 앉아 남아있는 간식 약밥이며 떡이며 오렌지며 커피까지 먹으니 배가 불러 칼국수 생각이 싹 달아났다. 주변 어디에도 식당은 보이지 않은데다 내가 걷는 걸 힘들어 하니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왕십리역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왕십리 지하철역에서 각자 자기 집을 향하여 헤어졌다. 다음 주 목요일 오산대 역에 있다는 물 향기 수목원을 함께 가자는 약속을 남기고……. 그러고 나면 수경의 손자가 응애! 응애! 하면서 세상에 신고를 하지 않을까? 둘째를 낳고 휴직중인 딸이 6월 1일부터 출근을 하면 손녀 둘을 돌보아야 하는 나 또한 앞일이 만만치 않다.
우리시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보아 주어야 하는 "손자행전"은 앞으로도 쭈우욱 숙제처럼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첫댓글 청개천 주변을 리얼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시고
다정한 친구들과의 우정도 곱습니다
거니는 동안의 섬세한 표현도 좋고
시절을 나눔하는 모습도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에고^^
바쁘실텐데 이리 긴 글을 읽으셨군요
감사합니다.ㅎㅎ
한 편의 그림을 그린 듯합니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지만 친구분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걷는 모습 뵌듯합니다
손자 안 봐 주고 사는 것이 복이라는데...
저 한테 긴 글이 많은데
시간 없으실 것 같아 올리지 않으려
산문방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