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토요漫筆/ 겐세이 속성 /김용원
동네에 떡집이 있었다. 사무라이 집안의 가장은 그의 아들이 그 떡집에서 떡을 훔쳐먹다 들켜 나무람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무라이 아버지는 떡을 훔쳐먹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아들을 그런 일 있었느냐 다그쳤다. 아들은 사무라이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절대로 떡을 훔쳐먹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사무라이 가장은 그의 아들을 데리고 떡집에 가서 물었다. “내 아들이 당신네 떡 훔쳐먹는 걸 봤소?” 떡집 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무라이 아버지는 아들의 겉옷을 벗기고 떡집 주인 앞에서 아들의 배를 칼로 좌악 가른 뒤 위장을 갈라 펼쳐보였다. 위장 속에 떡 먹은 흔적이 없음을 확인시키고 곧바로 떡집 주인의 목을 쳤다. 동네 주민들은 그 ‘정의로운’ 사무라이를 위해 사모비(思慕碑)를 세웠다.
지나가던 과객인 선비가 하룻밤 잘 객줏집에 짐을 풀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 지는 석양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거위가 석양빛에 반짝, 하는 무엇인가를 먹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객줏집에서 난리가 났다. 주인이 금반지를 잃어버렸단다. 그 객줏집에 들어온 바깥사람은 선비밖에 없었다. 그 선비가 금반지를 훔쳐 바깥 어딘가에 숨겨놓았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선비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포졸을 데려오겠다는 객줏집 주인의 말에 선비는 자기를 포박하여 하룻밤 재우고 이튿날 소송하라 사정했다. 그러면서 거위도 묶어 옆에 같이 있게 해달라 했다. 객줏집 주인은 밤이라서 신고를 해봤자 포졸이 올 것 같지도 않는데다 스스로 묶여 있겠다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튿날 새벽 거위의 똥에서 금반지가 나왔다. 주인이 어젯밤 그 말을 했으면 그렇게 밤새도록 고생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 말에 선비는 대답을 주었다. “내가 그 말을 했으면 당장 저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게 아니오. 미물이라도 다 같은 생명인데 그런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건 옳지 않았기 때문이오.” 우리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위의 두 경우를 두고 볼 때 만약 한국의 선빗집 자식이 떡을 훔쳐먹었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어쨌을까? 선비는 우선 자식을 불러들였으리라. 그러고는 훔쳐먹었느냐 물었을 테고 그런 일 없다고 하면 그 떡집에서 떡을 훔쳐먹었다는 혐의를 받을 만한 행동을 했느냐 이어 물었을 터이다. 자식은 아이들과 그 떡집 주위에서 놀다가 갖고 놀던 놀잇감이 떡집 안으로 굴러 들어가는 바람에 들어갔다 나온 적은 있다 한다. 선비 아버지는 이 점을 꾸짖는다. 이르기를 외밭에서는 짚신끈을 조이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랬을거늘 어찌 의심받을 그런 행동을 했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자식을 데리고 가 떡집 주인에게 사과를 했을 것이다. 괜시리 의심을 받게 해서 죄송하다고. 그랬는데도 정이나 떡집 주인이 떡을 훔쳐먹는 걸 봤다고 우기면 말없이 떡값을 물어주었을 것이다.
만약 일본 사무라이가 여관에 짐을 풀고 잠깐 나와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는데 거위가 반짝이는 뭔가를 먹는 장면을 목격했고, 곧 주인이 사무라이를 의심한다면 어땠을까? 사무라이는 당장 거위를 잡아 배를 갈라 반지를 꺼내 보이고 나서 함부로 사무라이 명예를 더럽혔다 하여 그 자리에서 주인의 목을 쳤을 게다.
요즘 일본의 혐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 우쭐대다가 점점 국력이 쇠퇴해 가는데 옛날에 자신들의 식민지였고, 전쟁까지 겪어 세계 최빈국 거지나라였던 한국이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본디 밴댕이속 민족성이 오죽이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그런데다 지진이며 태풍 따위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있는 꼴이어서 속된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일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는 그들을 왜소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왜인(矮人)이라 부른다. 그들은 작지만, 좋은 말로는 다부지고 꼼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안 좋은 말로는 잔인하며 소갈머리까지 좁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갈라파고스 스타일의 독특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지고 있어 관심을 끌게 하지만 인류공동체라는 톱니바퀴의 한 꼭지를 담당하여 순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2차대전 때 그 많은 나라를 침공하고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놓고도 제대로 사과하지를 않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우러나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전후 독일의 행동을 배우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놓고 후욱 불어 댕강 잘릴 정도로 항상 니뽄도를 갈고 있으며 훈도시를 차고 아무데서나 날뛰다 불리하면 자기 배를 갈라버리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답은 하나다. 그들을 터부시하지 않으면서 믿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은 섬 안에서 똘똘 뭉쳐야 살아남는 운명을 안고 산다. 언제 일본 섬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눈길은 늘 대륙을 향하고 있고, 그 교두보 역할이 될 수 있는 한국을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남북한 휴전선이 깨지고 길이 뻥 뚫리게 되면 그들로서는 최악이다. 남북미와 호주 지역만 빼고 나머지 육상으로 그 광활하게 펼쳐지는 미래의 한국을 어찌 두고 볼 것인가. 그들은 우리에게 빚을 진 전과자이면서도 큰소리치고 살아왔는데, 그때쯤 억하심에서 우리가 보복을 가해와도 토끼이빨을 드러내 웃어보이며 허리를 굽실대야 하는 상황을 절대 상상마저도 허락할 수 없으렷다. 그래서 그들은 잘된 호박에 말뚝 박는 심사로 끊임없이 ‘겐세이[牽制(けんせい), 딴지걸다 훼방놓다]’를 놓는 게 유일한 대책일 뿐이니, 어쩌란 말인가.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