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 재보선 결과에 민주당이 웃고 한나라당이 울었다. 민주당은 축제 분위기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보낸 메시지다. 이번 재보선은 이명박정부에 대한 중간성적 평가 성격을 띠지만 동시에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엿볼 길목이기도 하다.

10·28 재보선의 최대 관심지역은 수원 장안이었다. 한나라당은 기대했고, 민주당은 걱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당 이찬열 후보의 5000여표 차 승리였다.
이 선거의 최대 승리자는 손학규 전 대표다. 스스로 후보가 되는 쉬운 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만드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유권자는 이 선거를 통해 차기 대선에 대한 메시지를 보냈다. 손학규라는 차기 대선요소에 투표한 것이다. 다가올 대선이 한나라당 일방통행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디오피니언의 안부근 소장은 “모든 선거는 대선으로 통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의 여인’으로 통하는 것도 역시 차기요소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세종시 원칙론’으로 파란을 일으키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정수성 후보를 당선시킨 경주 유권자의 선택이나, 무소속 정동영 후보를 당선시킨 전주 유권자의 선택기준도 ‘차기’였다. 이번 재보궐선거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대표도 대선주자 반열로 올라섰다.
중간선거는 ‘분노의 조직화’에 좌우된다
최근 선거의 중요한 경향성은 ‘안티 투표’ 현상이다. ‘A보다 B가 나으니까 찍는다’가 아니라 ‘A가 싫어서 안티A를 선택’하는 모습이다.
선거 막판 유권자에게는 호감보다 분노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투표장으로 가게 만든다. 이른바 ‘분노의 조직화’다.
충청 4군에서 민주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하게 된 것에는 세종시 논란에 대한 지역민의 격렬한 분노가 작용했다. 대학생과 30~40대가 많은 수원 장안에서는 ‘방송인 김제동 퇴출 포인트’가 한몫 했다. 경남 양산에서의 민주당 선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분노심리가 작용했다.
반면 민주당이 당초 내세운 ‘4대강 저지’는 별 호소력이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권자의 분노를 정확하게 파악해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선거의 흐름을 좌우하는 관건임을 보여준 셈이다.
다시 확인된 유권자 견제심리의 위력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주요 선거에서는 ‘시계추 현상’이 나타났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의 큰 선거에서 어느 한쪽이 이기면 다음 선거에서는 반대쪽이 이기는 현상이다. 유권자의 절묘한 균형감각이 선거를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이 각종선거에서 23대 0으로 패배한 것은 시계추 현상이 무너지면서 역으로 만들어진 균형감각이 작동한 현상이다. 2002년 대선 승리는 2004년 총선 패배로 이어지는 것이 수순이지만, 탄핵으로 이 균형감이 무너졌고, 뒤 이은 선거에서 여당은 몰패를 당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압승은 거꾸로 유권자의 균형과 견제감을 작동시켰다.
이번 재보선뿐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 그리고 뒤이은 재보선도 시계추 현상의 틀 속에서 전망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도 구도상 한나라당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간선거에 제3당 설 땅은 없다
안산 상록을 무소속 임종인 후보의 패배, 충청4군에서 자유선진당 참패는 중간선거에서 제3세력이 설 자리가 매우 좁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간선거의 ‘심판’과 ‘견제’ 프레임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강해지고, 양강구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안산의 경우 무소속 임 후보의 지지율은 선거일이 가까워 질수록 떨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재보궐 선거 승리는 ‘민주당이 일궈낸 승리’라기보다 ‘제1야당으로서 수혜’ 성격이 강하다. 만약 제1야당이 다른 당이었다면 유권자들이 그 당을 선택할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실제 민주당 지지도는 선거기간 내내 한나라당의 2/3 수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