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 복자 선조와 주교 후손이 만난 곳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124위 복자 후손으로 교황 맞이한다
1976년 5월, 당시 30대 신부였던 장봉훈 주교는 첫 본당 주임신부로 청주교구 진천성당에 부임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당시 진천본당 관할에 있던 오래된 교우촌 ‘배티’를 알게 되었고 천주교 성지로 가꾸어 가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성지 조성에 필요한 기본적인 부지도 없었고, 성지 개발을 위한 자금도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꿈으로 끝나는 듯 했다. 왜냐하면 1979년 장 주교는 보은성당 주임으로 진천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 주교좌성당 주임신부, 미국 LA 성토마스 한인성당 주임 등 배티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소임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티 성지와 장 주교 사이의 인연은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1993년 장 주교가 당시 교구장이던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초대 배티성지 전담신부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웠지만, 장 주교는 배티에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성지 개발의 종합계획을 수립하며 배티에 얽힌 역사의 기록들 특히 배티에 사목적 기반을 두고 있었던 두 번째 한국인 신부 최양업 토마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 정리해 나가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999년 장 주교는 제3대 천주교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돼 배티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 때까지 장 주교는 알지 못했다. 그가 청춘을 바쳐 심혈을 기울여 온 배티가, 실은 이번에 시복되는 5대조 할아버지 장 토마스가 일군 신앙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오는 8월 16일(토)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할 천주교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브리엘, 67세, 사진)가 같은 날 복자품에 오를 장 토마스(1815-66)의 5대손으로 밝혀졌다. 30년 전에 성인품에 오른 장주기 요셉(1802-66) 성인도 장 주교의 선조다. 장 주교는 신부 시절에 장 토마스가 전교했던 배티에서 사목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장 주교의 가문이 충북에 정착한 것은 천주교를 통해서다. 경기도 수원 느지지(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서 태어난 장 토마스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장주기 요셉 성인의 6촌 형제로, 그와 함께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입교했다. 그들은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교회 일을 돕다가, 요셉은 충청도 배론(현 충북 제천시 봉양면 구학리)에, 토마스는 진천 배티(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토마스는 외아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전교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포졸들이 들이닥쳐 장 토마스와 가족을 모두 체포했고, 진천 관아로 압송된 토마스는 관장의 배교 회유에 그는 “세간과 목숨은 버릴지언정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관군이 주둔하는 청주로 이송돼 문초와 형벌을 받을 때도 “만 번 죽어도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한결같이 대답했다.
장 토마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포졸들은 그를 관군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 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로 끌고 나갔다. 그때 토마스는 자기의 대자(代子)가 배교하려 하자 “주님을 위하여 천주교를 봉행해 왔는데, 이런 기회를 버리고 목숨을 건진다면 장차 천주님의 벌을 어찌 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만류한 다음, 51세의 나이로 칼날 아래 목을 드리우고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장봉훈 주교는 1947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와 광주 가톨릭대(대신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사제품을 받았다. 청주교구 주교좌성당 보좌로 사제생활을 시작한 장 주교는 1993-99년 충북 진천 배티성지 초대 전담신부로 사목하며 성지 조성 사업을 주도했다. 배티는 바로 장 토마스가 정착해 신앙을 전파한 장소였으니, 선조가 씨를 뿌리고 후손이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장 주교는 배티성지에서 사목하던 1999년에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돼 주교품을 받았고, 현재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생명의 복음’ 전파에 앞장 서고 있다. 장 주교는 2010년 7월 9-11일 꽃동네에서 참가자 3천 명 규모의 ‘전국 생명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 청년 대상 생명 연수를 지속적으로 열었고, 새생명프로젝트와 전국장기기증네트워크 등 한국 천주교 생명운동본부의 주추를 놓았다.
장 주교는 “하느님의 종 장 토마스의 후손인 까닭에 교황 성하의 시복식 주례가 더욱 특별하다.”면서도 “꽃동네에서 교황님을 영접해야 하기에 한국 주교단에서 저만 유일하게 시복식에 함께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소회를 전했다. 장 주교의 동생인 청주교구 신자 장현훈(에드워드) 씨는 “불과 1년 전 교황청의 시복 결정이 가시화되면서 시복 후보자들의 가계도를 정리하다가, 장 토마스가 주교님 집안의 선조임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인용 출처: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자, 124위 약전, 장봉훈 주교 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