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坡州) 유적지(遺蹟地) 탐방(探訪)
<3> 자운서원(紫雲書院)<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5호>
자운서원(紫雲書院) / 강인당(講仁堂) / 동재(東齋/立志齋) / 서재(西齋/修養齋)
자운서원(紫雲書院) 문 / 율곡 사당(祠堂) / 자운서원 묘정비 /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율곡기념관에서 건너다보이는 나지막한 자운산(紫雲山)의 산 자락 숲속에 자운서원(紫雲書院)이 있다.
조선 광해군 7년(1615), 이이(李珥)의 사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원을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는데 효종 1년(1650) ‘자운(紫雲)’이라고 사액(賜額)되었고 그 후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를 추가 배향(配享)하여 선현(先賢)들의 배향(配享)과 지방유생교육(地方儒生敎育)의 장(場)으로 활용되었다.
건물들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는데 중·보수(重·補修)를 하고 관리를 철저히 한 모습으로 깔끔하여 옛 건물 같지 않아 보이지만 고목들이나 석조 비석들은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넓은 뜰을 지나 석조계단을 오르면 서원(書院)으로 들어가는 자운문(紫雲門, 外三門)이 보이고 문을 들어서면 유생(儒生)들이 기거하였던 아담한 건물인 동재(立志齋)와 서재(修養齋)가 있다.
거기에서 다시 20여 돌계단을 오르면 유생들을 강학(講學)하던 강인당(講仁堂)이 있는데 건물의 뜰 앞 좌우에는 수령(樹齡) 500년이 되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서 있어 역사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강인당(講仁堂) 앞뜰에는 사원 건립의 내력을 기록한 거대한 석조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인당(講仁堂)을 지나 뒤뜰에서 다시 20여 돌계단을 오르면 날렵하게 서 있는 내삼문(內門三)이 보이는데 문을 들어서면 바로 율곡의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을 모신 문성사(文成祠) 건물이다.
<4> 율곡(栗谷) 가족묘원(家族墓院)
묘원 입구 여현문(如見門) / 가족묘원 / 신사임당 부부(夫婦) 묘
자운서원에서 나와 조금 내려오면 왼편 언덕 밑으로 율곡의 가족묘원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골짜기 입구에는 여현문(如見門)이 서 있는데 이곳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율곡의 가족묘원이 있다.
율곡 이이(栗谷李珥) 부부의 묘를 중심으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을 비롯하여 후대 자손들까지 일가친척 10여 기(基)의 묘가 안장되어있는 묘원(廟院)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申人善)이고 당호(堂號)가 사임당인데 시임당(媤任堂), 임사재(妊思齋)로도 불렸다.
율곡 이이(栗谷李珥)의 가족묘원(家族墓院)을 둘러보며 조금 의아한 점도 있다.
언덕 맨 위에는 이이와 첫째 부인 곡산노씨(谷山盧氏)의 합장묘가 있고 그 바로 밑에는 이이의 맏형 부부합장묘, 그 아래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 맨 아래쪽에 이이의 맏아들 부부 합장묘가 있다. 상식(常識)으로는 맨 위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문중(門中)에서 율곡의 명성을 과대평가하여 묘원을 조성한 것은 아닌지?
이 네 개의 묘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둘째 부인, 장손 부부, 5대손 부부의 묘가 있고 오른쪽에는 딸 매창의 시부모, 큰 누님과 매부, 딸 매창의 차남, 이이의 8대손 묘가 있어 모두 11기(基)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