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혹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마음속이야 어찌 정도와 어긋나나요.
- 지천 최명길(1586~1647) ‘권(權) : 일에 따라 변하는 것’ 중에서
권도란 혹 어진 사람도 잘못될 수 있지만,
경도는 사람이 많다 해도 어길 수 없죠.
- 청음 김상헌(1570~1652) ‘경(經) : 변할 수 없는 것’ 중에서
난독(亂讀)한 서지 중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史書) 『연려실기술』이 제일 재미있었다.
인조 시절 병자호란을 기술한 대목에 인용된 이 시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청나라에 대한 항복 문서를 찢었던 사람이 척화파(斥和派)인 청음(淸陰) 김상헌, 그걸 주워서 붙였던 이가 주화파(主和派)인 지천(遲川) 최명길이다.
심양에 끌려가 옥 안에서 두 분이 말씨름 하는 모양새지만 사실은 토론이었다.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게 청음 생각이고, 나라가 싸울 힘이 없어 백성이고 임금이고 다 죽게 생겼는데 척화만 하면 되겠느냐는 게 지천 주장이다.
이 시로 두 분은 마음을 열었다.
당장 어려울 때는 자식이나 마누라 위해 구걸도 해야 하는데 그걸 20대 때는 몰랐다.
나이 들어가니 세상이 마음만이 아니구나 싶다.
젊어서는 명분을 좇았지만 경권(經權), 즉 불변의 법도와 당대의 요청에 맞추는 지혜를 얻고 싶다.
청음 선생 입장으로만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서는 최명길이란 분이 자꾸 생각난다.
김영복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 ‘옥션 단’ 대표
[중앙일보] 입력 2014.10.01 00:21 / 수정 2014.10.0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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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이야기] (42) 청음과 지천 |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
여기 소개하는 한 장의 유묵은 병자호란 때에 척화파를 대표하는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1570-1652)과 백강 이경여(白江 李敬輿: 1585-1657, 鳳巖이란 호도 썼다). 주화파의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 1586-1647)이 심양에 잡혀가 같은 감옥에 있을 때 서로 주고받았던 시고(詩稿·사진)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이 1636년에서 1645년까지 심양에 볼모로 잡혀 갔던 세자가 돌아오면서 어느 덧 일단락이 지어진다. 때는 심양에 같이 잡혀간 청음과 지천 그리고 백강은 처음에는 북관(北館: 심양에 있던 사형수 들을 수용하는 감옥, 보통 추위가 40~50도나 되는 곳)에 있다가 북관보다는 조금 편하고 질자관(質子館: 세자가 볼모로 잡혀 있던 곳)에 가까운 곳에 있던 남관으로 옮기고 난 그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마도 1644년 겨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때, 지천과 봉암 두 상공이 그치지 않고 담배를 태우니,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청음이 짤막한 시를 지어 조롱하였다. 얼음 사발에 꿀물을 눈 속에서 먹고 () / 쇠 화로에 수탄 태우며 연기를 마시니 ()/ 이 두 사람의 풍류와 맛을 누가 능히 알랴 (兩家風味誰能辨)/ 마음속에 물어봐도 웃으며 모른다 하네. (却問靈臺笑不知) 이어 지천이 추운 겨울에 찬 꿀물을 마시는 청음을 조롱해 시를 지었다. 인간 세상 모든 일에 내 어찌 다 관여하랴 (人間萬事吾何與)/ 여름 덥고 겨울 추움 각각 때를 따르듯이 (冬夏氷湯各順時)/ 구구하게 득과 실을 따지질 않아도 (不用區區較得失)/ 끝내는 차고 덥다 마음으로 알지요(終須冷暖自心知). 이 시고는 아마도 청음의 관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청음이 간수하여 가지고 있었던 것이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두 분이 심양감옥에서 서로를 이해했다는 그 유명한 경권(經權)에 관한 시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경권에 관한 시의 내력은 이러하다. 청음이 심양의 남관(南館)에 지천과 같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일찍이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 1586-1647)과 함께 경(經: 변할 수 없는 것)과 권(權: 일에 따라 변하는 것)에 대하여 강론하였다. 지천이 먼저 시를 지어 보냈다. 고요한 상태에서 뭇 움직임을 보니 (靜處觀群動)/ 순리 따라 저절로 돌아가네요 ()/ 끓는 물이나 얼음이 모두 물이요 (湯氷俱是水)/ 가죽 옷이나 베옷이나 옷 아님이 아니죠 ()/ 일이란 혹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事或隨時別)/ 마음속이야 어찌 정도와 어긋나나요 (心寧與道違)/ 그대께서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君能悟斯理)/ 말함과 침묵이 각기 타고난 그릇이겠죠. (語默各天機) 이어 청음이 시를 지어 말했다. 성공과 실패는 하늘의 뜻이나 (成敗關天運)/ 반드시 의리로 돌아 가야죠 (須看義與歸)/ 아침과 저녁을 바꿀 수 있다 해도 (雖然反夙暮)/ 저고리와 치마를 바꿔 입을 순 없죠 (未可倒裳衣)/ 권도란 혹 어진이도 잘못될 수 있지만 (權或賢猶誤)/ 경도는 사람이 많다 해도 어길 수 없죠 (經應衆莫違)/ 이치에 밝은 선비에게 말하노니 (寄言明理士)/ 아무리 급한 때라도 저울질을 삼가 해야죠 (造次愼衡機). 옆에 있던 백강이 시를 지어 두 사람에게 보냈다. 두 노인의 경ㆍ권이 각기 나라를 위함이라 (二老經權各爲公)/ 하늘을 떠받친 큰 절개요, 한 시대를 건진 큰 공이죠. (擎天大節濟時功)/ 이제야 순리 따라 저절로 함께 생각이 같아졌지만 ()/ 모두가 심양 남관의 백발 늙은이가 되었네(俱是南館白首翁). |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87823 |
첫댓글 좋은 자료이군요?
잘 감상합니다. 김영복 씨 실력 정말 대단합니다.
지난 달입니다. 인사동 통문관 앞을 지나는데 그 날따라 셔터가 올라져 있고 불이 켜져 있어 들어갔지요. 1955년판 시집 한 권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 시집(作故詩人選)은 윤동주. 이상. 이육사. 오일도. 박용철. 김소월. 이장희. 홍사용. 이상화. 한용운 시인의 시가 묶여져 있더군요. 꽤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그 책을 쥐고 나왔습니다. 갑자기 통문관이 독립문 만하게 떠 올라서...
50이 넘어서도 아직 經만 쫒고 있으니... ^^;;
一簞食一瓢飮일지언정 맘 편하니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보다.
하하하! '일단사 일표음' 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요? 홍하일 선생!^^
ㅎ 재미나네요~~~~~~~~~~~~^^
본인은 무얼 하나 똑 바로 아는 바가 없어 묻겠습니다. 일단식일표음一簞食一瓢飮이 무엇인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