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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배규택
고향이야기 22 / 정감록이란?
머리말
누구나
가슴 속에 자신만의 ‘십승지’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억조창생의 삶이 흔들리던 난세에도,
숨 가쁜 디지털 문명을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을
안전한 품을 갈구합니다.
이 글은 수백 년 전
낡은 예언서 한 권에 명운을 걸고
소백산 자락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풍기 금계촌에서
발견한 것은 비단 재앙을 피할
땅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척박한 산비탈을 일구고,
서로의 아궁이를 나누며 피워낸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그 따뜻한 기록의 책장을
이제 여러분과 함께 넘겨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읽으셔서 우리 조상들의
그 불굴의 정신과 노력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희망의 밧줄,
십승지 풍기에 닻을 내리다.
- 황금 닭이 품은 땅,
생명을 품은 사람들 -
"저곳에 가면...
정말 살 수 있을까요?"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아이의 머리뼈가
너무 앙상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의 불길이
조선 팔도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까?"
"어디에 우리가 살 곳이 있을까?"
그때, 누군가 보따리 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정감록』
금지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박한 이들에게
금기는 무의미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그가 한 구절에서 멈췄습니다.
"십승지... 열 곳의 살 수 있는 땅..."
사람들이 숨죽여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첫째가... 풍기 금계촌이라...“
제1장: 흉흉한 세상,
마지막 희망을 찾아서
세상은 끝없는 어둠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폐허였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했지만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병자호란이 또다시 땅을 피로 물들였고,
흉년이 반복되며 백성들은
뿌리째 뽑혔습니다.
아침에 눈 뜬 사람이
저녁까지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던 시절.
오늘 먹을 것이 있다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희망마저 잃어가던 그들에게
『정감록』은
마지막 등대와도 같았습니다.
"십승지... 십승지..."
사람들은 그 단어를
주문처럼 되뇌었습니다.
열 곳의 피난처. 재앙이 비껴가는 땅.
그곳에 가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소문이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도 드물었고,
심지어 그런 곳이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다면
붙잡아야 했기에.
"풍기... 금계촌..."
평안도의 한 노인이
길을 나섰습니다.
"소백산 아래,
두 물길이 만나는 곳이라 했지."
황해도의 한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업고 걸었습니다.
"우리 아이만이라도 살려야 해."
전라도의 한 상인이
마지막 남은 재산을
보따리에 담았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곳에서라면...“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남쪽으로 북쪽으로.
소백산을 향해. 풍기를 향해.
제2장: 소백산 두 물길 사이,
황금 닭을 찾아서
길은 험했습니다.
산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또 건넜습니다.
노약자들은 쓰러졌고,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일으켰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한 노인이 손주를 업고 걷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금계촌이 얼마 안 남았어요."
"내가... 내가 짐이 되는구나..."
"아니에요, 할아버지.
우리 함께 가는 거예요.“
젊은이가 노인을 업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이가
노인의 보따리를 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한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고통을 겪고,
같은 희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
드디어, 소백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기다! 저 산이 소백산이다!"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몇 날 며칠을 걸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발은 피투성이였고,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은 뛰고 있었습니다.
희망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백산 연화봉이
병풍처럼 둘러친 그 아래,
죽계수와 낙동강의
두 물줄기가 감싸안은 그곳...
"저기... 저기가 금계촌인가...“
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무도 확답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느꼈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다..."
정감록의 그 구절을
누군가 되뇌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황금 닭이란 무엇일까요?
보물이 묻혀 있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다'는 것은
이 땅이
생명을 품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알을 품는 어미 닭처럼,
이 땅은 새로운 생명을 키워낼 것이고
그 생명들은
다시 희망으로 부화할 것이라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살았다..."
"여기가... 여기가 바로
하늘이 숨겨둔 땅이구나..."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안 떠나도 되는 거죠?"
아버지는
아이를 꼭 껴안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이제 우리 여기서 살자.
여기가 우리 집이다."
그날 밤, 풍기의 하늘은
유난히 별이 많았다고 합니다.
제3장: 낯선 이들이 일군
'기적의 마을'
하지만 십승지는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풍기 땅에 도착한 피난민들을
기다린 것은 척박한 현실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잘 곳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원래 살던 주민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왜 우리 마을에 몰려오는 거요?"
"우리 땅에서 농사지으려면
허락을 받아야지!"
피난민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것도 미안한데,
짐만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노인이 일어섰습니다.
풍기에서 오래 살아온
원주민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들을 보시오.
저들의 눈빛을 보시오."
사람들이
피난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우리도 언젠가 저럴 수 있소.
전쟁은 아무도 피해 가지 않소.
오늘 저들을 돕는 것은 내일의
우리를 돕는 것이오.“
그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비탈이라도 내어드리지요."
"우리 헛간에서라도 묵게 합시다."
"같이 먹으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 풍기는 문을 열었습니다.
피난민들은
눈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땀으로 갚았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산비탈을 개간했습니다.
돌을 골라내고, 나무를 베고,
땅을 일궜습니다.
손이 부르터지고 등이 휘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곳이 우리를 살렸으니,
우리도 이곳을 살려야지."
평안도에서 온 사람은
메밀 농사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황해도에서 온 사람은
옹기 굽는 법을 나눴습니다.
전라도에서 온 상인은
장을 서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서로 다른 사투리가 뒤섞였습니다.
"그게 머시여?"
"그거 말이냐?"
"그거 말이유?“
처음엔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풍기만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첫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어떤 가족은 굶주림에 떨었고,
어떤 노인은 추위에 쓰러졌습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우리 집 곡식 좀 나눠 가시오."
"우리 아궁이에서 같이 지내시지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게
이웃 아니겠소?"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개간한 땅에서 첫 싹이 돋아났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살았다! 우리가 살았어!"
그해 가을, 첫 수확을 거뒀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충분했습니다.
함께 나눠 먹기에 충분했습니다.
추석날 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원주민도, 피난민도,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누군가 술잔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남았소."
모두가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함께 살아남았소!"
그날 밤, 풍기의 밤하늘에
달이 유난히 밝았다고 합니다.
그 달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십승지는 단순히
지형이 좋은 땅이 아니라는 것을.
십승지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만든 땅이라는 것을.
십승지는 서로를 품어주는
마음이 지켜내는 땅이라는 것을.
풍기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대흉년의 고통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땅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
운명이 아니라, 선택.
기적이 아니라, 연대.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희망의 행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도
풍기를 찾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조선 말기의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1890년대 후반, 평안북도
박천과 영변 일대에서는
"풍기로 가야 산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나라는 흔들리고,
백성들의 삶은 궁핍했습니다.
개화와 외세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피난처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형성된 것이 이른바
'정감록촌'이었습니다.
평안도에서 온 한 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박천에서 농사를 짓던 김씨 집안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낡은
정감록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안의 어른들은
"언젠가 큰 난리가 나면
그때는 풍기로 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정말 그곳에 가면 살 수 있습니까?"
"십승지는
땅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살리는 곳이란다."
결국 그 집안은 1898년,
금계촌으로 이주했습니다.
먼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따뜻한
환대였습니다.
"평안도에서 오셨구먼.
먼 길 고생하셨소.“
"우리 선조들도
300년 전에 이렇게 왔다오.
이제 당신들도 풍기 사람이오."
이렇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금계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정감록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이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산비탈을 개간하고,
터전을 일구고,
베틀로 인견을 짜고
인삼농사도 지었습니다.
풍기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더 흐른
1950년, 다시 한 번 풍기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중 일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정감록 이야기를 기억하며
풍기를 향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온 이씨 가문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1950년 12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오자
이씨 집안의 가장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6촌 일가 40여 명을 모두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어디로 가십니까?"
"풍기로 갑니다."
"왜 하필 그곳입니까?"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남기신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십승지 풍기라고."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낡은 정감록 책과 보따리
몇 개뿐이었습니다.
혹한의 겨울, 40명의 대가족은
험난한 피난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노인들을 업고, 어린아이들을 안고,
서로를 부축하며...
1951년 1월, 그들은 마침내
풍기에 도착했습니다.
금계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오셨구먼.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조선 말에도...
그리고 지금도.“
"정감록을 보고 오셨다면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여기가 그 땅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곳을 십승지로 만드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씨 가문은 그렇게
풍기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을 짓고, 땅을 일구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풍기가 그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금계마을을 걸으면
곳곳에서
이런 가족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6.25 때
함경도에서
정감록만 믿고 내려오셨대요."
"우리 증조할머니는
평안도 박천에서
1900년대 초에 오셨다네요."
"우리 선조는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서 왔다고 전해져요."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하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같았습니다.
살고 싶다는 간절함.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서로를 품어주는 따뜻한 마음.
이렇게 1930년대부터
6.25 전쟁 시기에 이르는
정감록에 대한 믿음 속 이주는
풍기의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북 지역의 면직물 기술을 가진
월남민들이 풍기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가내공업 형태의
인견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풍기 인견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최대의 인견 생산 지역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십승지'라는 예언적 신뢰가
지역의 실질적인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된 독특한 사례입니다.
또한 냉면과 같은 북한 식문화를
이식하여 '서부냉면' 등의 고유한
미식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제4장: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의 불길은 사라졌습니다.
흉년도 끝났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십승지를 찾아 떠돌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치열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전쟁.
다른 형태의 재난.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들.
피곤에 지친 사람들.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지금, 풍기를 찾아옵니다.
주말이면 도시에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금계리의 바람을 쐬러,
죽계수의 물소리를 들으러,
소백산의 품에 안기러...
한 젊은 여성이 죽계수에
손을 담그며 말합니다.
"서울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 경쟁하고, 비교당하고,
지쳐갔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중년 남성이
소백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여기 서 있으니 생각나네요.
우리 할아버지가
이 땅에 정착하신 이야기를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셨다고...
그 용기가 지금 내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걸으며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결혼해서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나는구려.
그때도 이 산이, 이 물이
우리를 위로해줬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구만.“
풍기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품는 마음.
희망을 나누는 정신.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
이제 풍기는
물리적 피난처를 넘어
'마음의 십승지'가 되었습니다.
지친 영혼들이 찾아와 쉬어가는 곳.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는 곳.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 곳.
금계리 마을회관에는
오래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생명의 땅(生命之地)"
누가 쓴 글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네 글자는 수백 년간
풍기가 지켜온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땅.
생명을 품는 땅.
생명을 키우는 땅.
맺음말: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의 의미
우리가 지금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떠올려보세요.
이 땅은 단순히 운이 좋아
십승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정감록이 그렇게
써 놓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이 땅은
우리 조상들이 만든 십승지입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관용.
낯선 이들과 음식을 나눴던 너그러움.
함께 땀 흘리며 땅을 일궜던 연대.
추운 겨울밤 아궁이를 나눴던 따뜻함.
그 모든 선택들이 풍기를
진정한 십승지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공짜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서로를 품어주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승지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조상들이 낯선 이들을 품었듯이,
우리도 우리 곁의 낯선 이들을
품어야 합니다.
조상들이 굶주린 이에게
밥을 나눴듯이, 우리도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조상들이 절망한 이에게
희망을 주었듯이,
우리도 힘들어하는 이에게
위로를 건네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풍기는
진정한 십승지로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
그들이 풍기를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곳 사람들은 나를 받아줄 것 같아."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풍기 사람들의 핏속에는
수백 년 전 십승지를 찾아왔던
조상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품어주었던 조상들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흐릅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고,
끝이 시작으로 바뀝니다.
풍기, 십승지 중의 으뜸인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희망의 역사'를 이어가는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자부심으로 살아갑니다.
소백산이 우리를 지켜보고,
죽계수가 우리 곁을 흐르고,
황금 닭이 품은 생명의 기운이
우리 마을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물려받은
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물려줄 차례입니다.
땅만이 아니라, 정신을.
재산만이 아니라, 가치를.
이름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십승지 풍기.
그것은 단순히 재앙을
피하는 땅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사람들이
만드는 땅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누군가에게 미소 지을 때,
누군가의 짐을 함께 들어줄 때,
누군가의 아픔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십승지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풍기 사람들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여기, 당신을 품을
준비가 된 땅이 있습니다.
여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 생명이
피어나는 땅이 있습니다."
오늘도 소백산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죽계수는 여전히 맑게 흐릅니다.
그리고 황금 닭은
오늘도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
.
.
.
[참고사항]
이 스토리텔링은 풍기 금계촌에
전해 내려오는 기록과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하되,
당시의 시대적 비극과 민중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구성하였습니다.
특히,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풍기의
‘금계포란형’을
단순한 지형적 이점이나
보물이 묻힌 땅이라는 해석을 넘어,
고통받는 이들을 품어
새로운 희망을 부화시키는
‘모성적 생명력’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정감록》이 문헌상으로
확립되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나,
전쟁과 기근, 폭정 속에서
민중들이 도참사상과
예언서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고
생존의 희망을 찾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정감록》의
예언을 현대적 인본주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진정한 십승지는
하늘이 숨겨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절망에 빠진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를 품어준 ‘사람의 따뜻한 연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땅의 기운보다 강한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이며,
운명보다 위대한 것은
서로를 살리기로 한 우리의 선택임을
이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2026.2.18.
베규택
작가노트
암울했던 시절, 고달픈 민중이
붙잡을 수 있었던 실낱같은 희망.
현실적 고통 속에서도
이상적 미래를 꿈꾸며
염원을 담아낸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글과 그림으로 전해지다가,
작자 미상의 누군가에 의해
집대성된 책이 바로
정감록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주를 넘나들고
디지털 문명이
끝을 알 수 없이 확장되는 시대에,
정감록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비현실적인
옛이야기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고향 구석구석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십승지의 자부심을 기리기 위해
이 글을 엮어 보았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