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사용은 복음의 접근성을 높인다
표준말의 반대말은 사투리다.
교육적∙문화적인 통일을 위해 표준삼아 정한 말을 표준말이라고 하였다.
사전적인 표준말은 아래 두 사전말로 정의한다.
‘표준―어(標準語) [명사] 교육적·문화적인 편의를 위하여 한 나라의 표준이 되게 정한 말.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
(엠파스 사전에서)
‘표준말- 교육적, 문화적인 통일을 위해 표준이 되게 정한 말(연세한국어사전,
두산동아발행)’이라고 했다.
종교는 사회에 순기능과 동시에 역기능을 제공한다.
특별히 설교(강해, 강론)은 표준말을 사용해야 청중의 이해를 돕고
신앙생활의 바른 안내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오늘은 기독교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 중 ‘청빙’, ‘
증경’, ‘
피택’에 대하여 시시시비를 가려 보고자 한다.
언어의 바른 사용은 기독교 신앙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으로의 접근을 친근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단어 외에도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표준말이 아닌 특수집단의 특수 언어가 널리 사용될 때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를 구사함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편안한 접근을 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위의 세 말을 국어사전(연세한국어 사전, 2002년. 두산동아 발행)
과 인터넷 사이트 엠파스의 국어사전 검색창을 통하여 찾아보았지만 ‘
해당 검색어 없음’으로 나왔다.
필자가 이해하는 위의 세 단어를 종교 전문가가 아닌 표준말의 입장에서 찾았다.
1. 청빙 : 우리말 사전에는 뜻풀이가 없다.
대부분 교회 내의 유급직원(목사, 부목사, 전도사, 교육사, 사찰, 사정,
사무직원 등을 뽑을 때 사용하는 말일 것이다.
또 ‘교역자 청빙’이라는 제목(타이틀)으로 신문광고를 내고 있다.
그러나 공채의 경우에는 모집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또 이 말은 우리말로 ‘모심’으로 할 수 있고 ‘초빙’ 또는 ‘모집’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증경 : 이 말도 우리말 사전에는 ‘해당 검색어가 없음’이라고 나왔다.
‘증경’은 교단, 노회, 지방의 회장을 지낸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일반인이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우리말로 직전 ○○회장 혹은 제 ○○대 회장으로,
그리고 전직 ○○회장님으로 하여도 예우상이나 이해 상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3. 피택 : 이 말 역시 우리말 사전에서는 볼 수 없는 낮 선 말이다.
교단 내 일꾼 즉 회장 임원들이 뽑혔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 목사가 ○○교단 제 ○○ 대 총회장으로 당선되다,
뽑히다. 선출되다. “등으로 말할 수 있다면 일반 독자층도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피택’이라는 말로 거리감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4. 사모 : 이 말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스승의 부인 또는 목회자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
사모’라는 말은 교회 내의 어떤 직분도 아니다.
일반 신자는 장로, 권사, 집사, 속장, 구역장과 같은 직분이 아니다.
다만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의 감화를 주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여
신자들을 예수께 접근 시키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은 부여된다.
교인들은 이에 대하여 존경하고 감사 하는 마음으로
목사의 부인을 ‘사모’라 호칭한다.
여기까지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들 스스로가 “우리 집 사모”라고 이야기하거나
목사 부인 스스로가 자신을 “○○교회 사모입니다”라고 높여 부르는데 있다.
이는 공주병 혹은 왕자병 증세 아닌가.
군주시절 나라의 임금도 스스로를 부를 때 ‘과인’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시찰, 사찰과 같은 신세대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독교 내의 언어사용은 복음의 보편적인 접근성을 막게 한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면 더 권위가 있고, 더 은혜롭고, 더 신령하게 느끼는가 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횡행한다면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서구의 교회들처럼 빈 예배당이 늘어갈 것이다.
폴 틸리히는 대중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려고 하나님을 ‘궁극적 실재’라고 하였다.
종교계 언론은 인터넷 의 발달로 더 이상 밀의 종교(Sect)가 아니다.
유명한 설교가는 “
초등학교 4~5학년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교가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했다.
누구나 쉽게 기독교 진리를 접근할 수 있는 언어의 사용으로 ‘
우리들 만의 언어유희’로 그치는 설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사용은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킬 것이다.
언론의 권위는 신문의 발행수와 청취율로 결정된다면,
복음은 가장 친근한 접근 방식과 바른 말의 사용에서 성패가 갈린다.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과거에는 30년을 1세대로 보았으나 ,
현재는 1년도 아닌 거의 시간을 다투며 세대차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