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8일(월) - 14일(일)
6월 8일(월요일)
1. 멋진 선물이 전주에서 배달되어 왔습니다. 전북겨레하나에서 보내온 선물입니다. 사랑이 담긴 편지와 할머니들 수요시위 가실 때 쓰라고 모자와 제게도 예쁜 스카프를^^ 고맙습니다.
2. KBS월드라디오와 전화인터뷰를 했습니다. 밤 10:20에 전화로 연결하여 지난 주간에 운명하신 고 이효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보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 이순덕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콧줄로 영양식을 하고 계시나 할머니의 얼굴은 살이 올라 예뻐지셨습니다. 배가 고프니 된장국을 달라, 밥을 달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할머니께서 입으로 무엇을 드실려면 재활치료를 받아야만 한답니다. 물을 조금 입에 드리려고 하니 입을 꼭 다물어 버리는 할머니.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여전히 못하고 누워계시지만 다행히 갈수록 건강해져 보여 안심이 되었습니다.
4. 지난 5월 한 달간 정대협 사무처로 전국 각지에서 보낸 서명지가 도착했습니다. 부산 평화나비 대학생들은 평화나비콘서트를 성황리에 치르고 무려 3049명에 달하는 서명지를 전달했습니다.제주 서귀포여성회와 전북 남원에서도 총 500여명이 넘는 서명을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고양국제고, 신명여고, 에모리대학은 1177차와 1180차 수요시위에 참가해 자유발언도 하고 서명도 직접 전달했습니다. 문화행사 부스나 학교 동아리 활동, 그리고 대학생 평화나비콘서트 등을 통해 열정적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받은 소중한 서명용지를 전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 5/6(수) 고양국제고등학교 1,2학년 학생 일동 : 1177차 수요시위에서 308명의 서명전달 - 5/6(수) 신명여고 누리봄 학생들 : 1177차 수요시위에서 686명의 서명전달 - 5/11(월) USF센프란시스코대학 이나영 교수 : 강연 후 15명의 서명전달 - 5/11(월) 전북 남원공설시장 문광형 육성사업단 : 100명의 서명전달 - 5/15(금) 제주 서귀포여성회 : 어린이날 부스행사 후 431명의 서명전달 - 5/15(금) 안양 양명여고, 양명고 학생들 : 489명의 서명전달 - 5/27(수) 미국 아틀란타 에모리대학 : 1180차 수요시위에서 155명의 서명전달 - 5/22(금) 부산평화나비콘서트 서포터즈 : 콘서트 후 3049명의 서명전달
6월 9일(화요일)
1. 경남 양산에 살고 계시는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최옥이 할머니께서 넘어지셔서 머리를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열두 마늘이나 꿰맸다고 하는데, 다행히 뇌에는 이상이 없다 하니 오히려 감사하게 되네요. 무더운 여름에 할머니 꿰맨 상처 염증생기지 않길 바라며,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2. “거기 정 대협이 사무실이죠?” 이 전화는 포항에 살고 계신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전화입니다. 시골에 살고 계신 분들의 경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고 하면 이름이 길기도 하고, 또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동네 분들이 모르길 원하기 때문에 보통 “정대협”이라고만 소개를 드립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성은 정가, 이름은 대협으로 이해를 하고 계셔서 가끔 “정 대협이 시집갔어?” 라고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마침 우리 실무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중에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 대협이 있어?” “네, 할머니 정대협 맞아요.” “나 쌀이 떨어졌어. 올 때 쌀 좀 사와”.... 우리 할머니, 뭔가 필요할 때가 되면 이렇게 사무실에 전화를 주십니다. “네, 할머니 알았어요. 보내 드릴게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셔요?” “아이고, 할머니 정부 지원비는 다 누구한테 주시고... 하하하” 쌀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에게 전화해서 쌀 떨어졌다 하시는 할머니가 우리도 인간인지라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우리끼리만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야기의 결론은 “그렇게 우리에게 전화주셔서 편하게 쌀 떨어졌다고 보내 달라 해 주시는 것에 더 고마워하자. 우리가 할머니에게 할 도리를 다 하자. 필요하다 하시는 것 다 보내드리고, 다른 것도 더 필요한 것 뭐 있는지 여쭤봐서 보내드리고, 직접 방문해서 전해드리기도 하자.” 그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3. 화창한의원의 홍정숙님께서 페이스북을 통하여 보았다고 하시면서 길원옥 할머니의 미국 여정을 위하여 청심원과 청공단을 보내주셨습니다. 할머니들께서 외국에 가실 때마다 잊지 않고 건강을 챙겨주시는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4. 김복동 할머니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나비기금을 보내주면, 정대협에서는 그 기금에서는10원도 경상비로 쓰지 않습니다. 전액 그 여성들을 지원하는 데 쓰입니다." 네. 맞습니다. 나비기금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실무자의 노력도 투여되고 이러저러한 경비가 들지만, 그것은 정대협 경상비에서 사용하고, 나비기금 모금액은 지원사업, 조사연구 사업에 사용되고 있어요. 정대협 활동은 또 그렇게 모금을 통해서 진행하지만 나비기금 목적으로 후원하시는 분들의 후원금은 그대로 목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나비기금 통장 잔고가 쑤욱- 줄어들었습니다. 베트남의 푸엔성과 빈딘성에 생존해 있는 한국군성폭력 피해자 28명에게 6월 지원금 50불씩을 각각 송금했으며, 베트남 빈딘성 성폭력피해자 인터뷰 선물구입비 656,000원을 선 사업진행, 후 지출했습니다. 콩고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임시대피처를 마련하고,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는 우시리카라는 단체에 6-12월 지원금(매월 500불), 3,000불, 성폭력 피해자이면서 활동가인 마시카 씨 단체에3,000불을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총 9,871,52원 지원금이 지출되었습니다. (사진 : 콩고의 우시리카)
5. 독일 언론 DPA에서 쉼터를 방문해 김복동 할머니를 약 한 시간 동안 인터뷰했습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과 위안소에서 겪은 일 또 해방 후 돌아와서의 삶까지를 인터뷰하며 할머니의 용기있는 활동을 독일사회에 전하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는 듣고 가지만 말고 독일정부에 압박하고 널리 알리라고 다시 훈계와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6월 10일(수요일)
1. 수요시위 가시면 안된다는 우리에게 화내시고 결국 출발 - 몸아픈 실무자 이야기 듣고는 저렇게 아파도 가는데 우리 당서자가 메르스때문에 안가면 돼?" 하시고는 아프다고 하는 실무자에게"기운내 이겨내야해 견뎌내야해 - 김복동 할머니 막힌 차를 보며 "비켜! 우리가 먼저 가게. 우리 수요시위 가야해!" - 길원옥 할머니
2. 1182차 수요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오늘 수요시위는 한일공동선언시민실천협의회가 주관을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1182차 수요시위는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주관으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참석하신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로 일분군'위안부'문제 해결을 바라는 세계시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번 수요시위에는 경희대 사학과 5명, 원죄없으신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 3명,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6명, KIN(지구촌동포연대), 한국정신대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일실천협 회원단체들과 이준열사기념사업회, 평화교류협의회, 평화나비네트워크, 채혜진, 김진세, 곽성경, 김영경 등 정대협 자원활동가 등이 함께 했고, 자유발언에는 김민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활동가, 소인정 경희대 사학과 학생,박은혜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대표, 미국자전거횡단팀 트리플에이 프로젝트 백덕열, 신용석 학생이 나서주셨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정대협 홈페이지 수요시위 소식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https://www.womenandwar.net/contents/board/gallery/galleryList.nx?page_str_menu=0204)
3. 수요일마다 땅끝마을 해남에는 나비들이 움직입니다. 해남지역에는 딱 한 분 일본군'위안부'생존자가 살고 계십니다. 바로 공점엽 할머니이십니다. 해남의 시민들이 공점엽 할머니를 지원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과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모임으로 [해남나비]를 만든지 2년이 되어갑니다. 오늘 6월 10일, 수요일에도 해남나비 회원들은 할머니룰 뵈러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르스 때문에 뵙지 못하고 입구에서 할머니께 드릴려고 가져간 배즙과 집에서 챙겨주신 여름이불만 전해드리고 할머니얼굴은 간호사의 친절한 배려로 사진으로 만나 뵈었습니다. 특히 해남신문 박수은기자가 할머니를 뵙겠다고 찾아 왔는데 만나지 못해 아쉬워했습니다. 그래도 사진속 우리 할머니 센스넘치게 브이로 우리모두 안심 시켜주시네요. 찾아간 나비들은 입구의 나무그늘아래세 테이블에 둘러 앉아 얘기나누다 왔습니다. 하루빨리 메르스정국이 안정되어 할머니 얼굴 뵐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여름이불로 바꿔드릴려고 챙겨간 이불이 너무 얇다고 하셔서 도로 들고나와 댁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에고 집에는 그보다 두꺼운 이불이 없다 하셔서 집에 한 번 더 확인 해보고 다음 주 찾아뵐 때 챙겨가겠습니다.
4. 크리스챤모니터 중국특파원이 수요시위도 취재하고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정대협 사무실을 방문하여 윤미향 대표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국을 오기 전에 일본을 방문하여 미리 인터뷰를 진행하고 왔다고 합니다. 인터뷰의 주 내용은 현재 한일관계가 차단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정대협 때문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압력해도 꼼짝하지 않아서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압력할텐데,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은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대협을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어떻게 생각하느냐? 일본인터뷰에서 확인한 것은 8월 아베담화는 ‘식민지’라는 언급도 ‘사죄’라는 언급도 없이 전혀 New Language 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한 시간 30분 동안 인터뷰라기보다 거의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했습니다. 주로, 한일관계 차단의 책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 아베정권의 역사인식이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만 인식과 현실 사이에서 답답함만 더 커진 인터뷰였습니다. 통역은 정대협 인턴 최주안 씨가 맡아서 해주었습니다.
5. 전국여성농민회 언니네텃밭 영광공동체에서 유정란, 우리콩두부, 열무김치, 적양파, 흰양파, 풋고추, 오이, 오디, 깻잎을 쉼터에 보내주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두부와 오디를 맛있게 드시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열무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맛있게 비벼드시고 풋고추도 맛있게 드셨습니다.
6월 11일(목요일)
1.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도 메르스영향으로 관람객이 오늘 하루 종일 4명.... 광복 / 분단 70년 특별전(베트남 성폭력피해자 전시회 포함)도 마련되어 있는데 음...가슴이 아프네요.
2. 평화의 우리 집 2층 베란다 방수공사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베란다의 타일이 일어나서 1층으로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하여 장마가 오기 전에 빨리 작업을 하여야 하기에 첫째 날에는 타일을 뜯어내고 둘째 날에는 시멘트를 발랐습니다. 이제 시멘트가 완전히 마르면 방수칠을 한다고 합니다.올 여름 장마는 걱정없이 지나갈 수가 있겠죠?
3. 또 한 분의 할머니, 김외한 할머니께서 85세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오후 8시40분에 숨을 거두신 김외한 할머니는 1943년에 공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알고 끌려갔지만 북해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셨습니다. 45년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산에서 나무열매를 따 드 시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시고 겨우 고향 안동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할머니는 해방 후에 결혼을 하여 남편과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고 사시다가 노인성질환 치매가 오기 시작하면서 2013년에 나눔의집으로 옮겼습니다. 남편도 고령이어서 할머니를 간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치매를 앓고 계신 중에도 정대협에서 할머니 뵈러 안동 집으로 찾아가면, 가끔, “한동갑 먹은 친구하고 나하고 둘이었어. 매를 많이 맞았어. 매를 많이 맞아서 그 아가 죽었다. 무서운 놈들이야. 얼매나 때리는지..” 라는 말씀을 쏟아내시기도 했습니다. 김외한 할머니께서 운명하심으로써 일본군‘위안부’생존자는 51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편안히 잠드시도록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들어 4분이 가셨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 할머니들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2003년 10월, 금강산인권캠프에 참가했을 때 금강산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아직 숙제를 다 해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해야 할지. 길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저렇게 "우리 문제 우리가 싸워야지 누가 싸우느냐며" 90세 고령의 몸으로 길거리로 나가시고, 메르스 때문에 수요시위 나오지 말라고 했더니 도리어 화내시고 서운해 하시고, 이용수 할머니 역시 전국 각지로 다니시고, 어찌해야 할까요? 혹자들은 "할머니들이 살아있을 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에" "올바른 해결"을 이루기 위해 피해자들과 함께 싸우며 몸부림치며 나가고 있습니다.
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에 이어 김달선 할머니께서 밤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운명하셨습니다. 김달선 할머니는 1925년 경북 포항 한여동에서 3남 3녀중 장녀(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1943년(19세)때 어머니 따라 흥해시장에서 청어를 팔던 중, 길거리에서 일본경찰에게 끌려가 미얀마로 끌려가셨고, 귀국 때까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셨습니다. 1944년(20세) 미얀마에서 두 차례에 걸친 자궁수술 을 하실 정도로 몸이 안 좋으셨고, 1945년(21세) 해방 후에는 마지막 배로 부산에 도착했으나 아파서 2년 동안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그대로 지내시다 1947년(23세)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만났습니다. 이후 생선, 채소, 쌀 장사 등을 하면서 생활해 오셨고, 1996년에 피해자로 신고를 하셨습니다. 2001년에 대구로 이사하시고, 대구에 있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만나게 되어 대구지역 할머니들과 함께 활동해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최근에는 유일한 친정붙이인 14살 아래 막내 여동생이 거주하고 있는 포항으로 옮겨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 6월 11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6월 12일(금요일)
1. 어제 두 분 할머니 돌아가셔서 김동희 사무처장과 양노자 팀장, 안선미 팀장은 포항으로 안동으로 달려가고,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경기지역에 또 한 분 할머니 생을 마감하려 한다는 연락을 가족에게서 받고 윤미향 대표는 용인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들이 약속이라도 하셨을까요? 최금선 할머니가 오랫동안 입원생활을 하고 계신 병원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철저하게 통제를 합니다. 마스크착용을 확인하고, 손을 소독제로 깨끗하게 소독하게 하고, 출입문도 지정된 곳으로만 들어가게 합니다. 중환자실 앞으로 가서 할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려놓은 상태인지라 특별히 면회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상태가 어제부터 갑자기 안좋아졌다고 합니다. 의식을 완전히 놓으셨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일반병실로 옮겨서 할머니 이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들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따님에게 말했다 합니다. 의식이 없으시지만 할머니를 힘껏 불러봅니다. “할머니, 할머니,,,, ” “엄마, 엄마...” “할머니 힘드셔요? 견디기 힘드셔요?” 할머니가 들으실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할머니께 말을 건넵니다. 아직 할머니 손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어제는 너무 차가워서 걱정했는데, 오늘은 다시 온기가 돌아왔다고 따님이 좋아합니다. 인공호흡기로 겨우 숨을 쉬고 계시지만 아직 있는 힘 다해 버티고 계시나 봅니다. 할머니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입양을 해서 키운 따님이 있습니다. 할머니 신고하실 때부터 그 따님과 친하게 지낸 것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따님이 엄마를 흉보고 싶을 때도 전화를 해서 우리에게 흉을 봅니다. 그렇게 해도 그것이 애정의 표시인줄 우리는 알고 있으니 편하게... 우리에게 그렇게 엄마 흉도 편하게 봐주는 따님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따님과 친해졌습니다. 중환자실이어서 계속 할머니 곁을 지킬 수 없어서 중환자실을 나왔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복도 의자에 앉아 한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가 혹시 저 속에서 훌쩍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을 보듬으며 서로가 서로를 격려합니다. 장례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제는 편하게 의논드렸습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도 주저앉지 않으려 합니다. 그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2. 윤미향 대표는 해가 하늘 가운데에서 서쪽으로 기울어가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수원에 살고 계시는 안점순 할머니댁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먼저 할머니께 드릴 한우 불고기감을 구입하고, 구이용으로 안창살, 살치살, 채끝, 등심을 샀습니다. 최근에 할머니가 한밤중에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빈혈과 피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생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쓰러졌다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점순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현재 88세입니다.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열네 살이던 1941년, 동네에서 방앗간 앞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듣고 엄마랑 함께 나갔다가 쌀가마 무게 재는 저울 위에 오르고, 무게가 나간다는 것 때문에 바로 트럭에 태워졌습니다. 그리고 중국 지역에서 일본군성노예 생활을 하셨습니다. 18세이던 1945년에 해방을 맞았지만 바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북경에서 지내다가 1946년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생 홀로 사시다가 현재는 큰조카 내외와 함께 수원에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집 앞에 도착하니 멍멍개가 먼저 반기네요. “웍웍웍...” 할머니 좋아하시는 정관장 홍삼톤 마일드 한 박스를 들고, 지금 막 구입한 갖가지 한우를 들고 할머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가 반가워하며 나오십니다. “오마이가 바쁜데 어찌 왔노. 사무실은 다 편한가? 쉼터 할머니들은 건강하셔?” 궁금한 것이 많으셔서 이것저것 질문들을 쏟아내십니다. 그런데 정말 할머니는 얼굴이 창백합니다. 살도 많이 빠져 보입니다. 걱정이 크네요. 병원진료 예약을 했다가 메르스 때문에 예약도 취소했다고 하니 더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병을 키우면 안되니 조심해서 병원가자고 말씀드리니 나중에 조카 데리고 가겠다고 합니다.
3. 부산에는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 하는 부산시민모임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부산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을 방문하며, 곁에서 말벗도 되어드리고 생활면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할머니들 가족들도 그 분들을 참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2일에도 부산시민모임에서 할머니를 방문하고, 할머니 소식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막달 할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손녀딸 집에 계십니다. 경로당하고 가깝기도 하고 맞벌이 부부인 집에 증손녀 두 명(13세, 9세)만 있으니 좀 챙겨준다고 하십니다. 힘에 많이 부치면 서울로 갈 생각도 드시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다고 합니다. 무릎이 요즘 많이 안 좋으셔서인지 살도 조금 빠지신 것 같습니다. 최옥이 할머니는 이틀 전(10일) 찾아뵈었을 때보다 상처가 좀 아문것 같은데 눈 쪽이 조금 부어 있었습니다.(할머니는 얼마 전 넘어지셔서 머리와 얼굴 쪽을 다치셨습니다.) 많이 더워지기 전에 상처가 빨리 아물려면 입원하시는 게 좋겠다 하니 할머니께서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한다며 한 번씩 병원 모시고 가서 영양제 맞고 소독도 한다고 큰아드님이 얘기해 주십니다. 그만하시길 다행이지만 안타깝기도 합니다.
4. 오전에 서울을 출발한 김동희 사무처장, 안선미 팀장, 양노자 팀장은 안동의료원 장례식장에 모셔신 김외한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왔습니다. 안선미 팀장과 양노자 팀장이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해서 조심조심 달립니다. 메르스 탓에 고속도로도 안동시내도 장례식장도 한산하게 느껴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법회를 드리고 할머니가 주시는 음식도 감사히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내일 발인 후 안동공원묘지에서 안식에 듭니다. 후에 할아버지(남편분)와 함께하는 부부안치묘지라고 합니다. 할머니의 가시는 길 편안하시도록, 모든 한 내려놓고 평안 누리시기를 함께 빌어주세요.
5. 김달선 할머니를 보내드리려고 포항으로 왔습니다. 오랫동안 요양병원 침대생활을 해오신 할머니가 끝내 삶을 내려놓고 영면에 드셨습니다. 이용수할머니도 작별인사를 하러 대구에서부터 와계시고 김달선할머니의 동생분과 가족들이 슬픔을 나누고 있습니다. 김외한할머니와 같은 날 떠나셨으니 마지막 길도 나란히 의지하며 가시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 할머니는 경주공원묘지에 모셔집니다. 할머니가 한도 아픔도 없는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함께 명복을 빌어주세요.
6월 13일(토요일)
1. 세월호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나비기금 모금을 위한 노란 나비와 보라 나비 50개를 손수 만들어 기부해주셨습니다. 정성스런 바느질로 완성된 '나비'는 브로치형과 고리형이 있고, 한 개당 만원으로 이번 주부터 수요시위 현장에서 판매됩니다. 판매금 전액은 나비기금으로 후원되며 전시 성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됩니다. 널리 알려주시고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더불어 세월호 노란리본공작소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2. 이번주간 메르스 때문에 할머니들 걱정하실까봐 전화를 일일이 드리며 할머니와 전화상담을 드렸습니다. 윤순만 할머니는 얼마 전에 넘어지셔서 허리와 머리를 다쳤다고 합니다. 허리가 너무 아프고, 머리는 멍이 많이 들어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는데 다행히 뼈가 상한 것은 아니라서 약을 드시고, 머리는 사진을 안찍어 봤다고 하는데, 일요일엔 나아지셨다고 해서 조금 안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병원이 메르스 때문에 난리라 병원도 못가는 처지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그 외 병원에 계신 여러 할머니들 가족과 간병인들께도 전화를 드렸으나, 메르스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알림 * 18일(목요일) 오후 7시, 정대협 월례세미나를 엽니다. "식민주의와 과거극복의 정치" 주제가 관심이 막 끌어당겨지지 않나요? 2015년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 지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아는 것, 그것도 올바르게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제법전문가 중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이재승 교수님이 우리를 잘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오실 수 있어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 하시는 분들,더 환영합니다. '난 시민단체 활동도 잘 모르는데,...' 상관없습니다. '난 가봤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텐데...' 더더군다나 상관없습니다. 오시면 이제 아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 '나는 뭐 이 정도는 이미 알아...' 하시는 분들도 혹여 계시나요? 내 안에 성을 쌓지 마시고 함께 쌓을 성을 위해 오셔요. 환영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