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사가독서와 21세기 연구교수
작자미상, ‘독서당계회도’, 비단에 수묵, 91.3×62.2㎝,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나는 2021년 60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였다. 학위를 받은 다음 해 운 좋게 한국연구재단에서 모집한 1년짜리 연구교수에 합격해서 월급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은 우리나라의 모든 학문과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기초연구지원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서 연구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셈이다. 실용학문이나 이공계가 아닌 기초학문이나 인문학 분야는 연구자들이 계속 연구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많은 연구자가 배출되지만 그들을 받아줄 만한 학교나 연구소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서 등장한 기관이 한국연구재단이니 우리 같은 인문학자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다행히 그다음 해에는 지원금도 훨씬 많고 기간도 5년인 연구교수에 합격했다. 나이 제한에 딱 걸리기 1년 전에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했으니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늦복이 터졌다.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는 나처럼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한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해 제작한 그림이다. 요즘 같았으면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사가독서는 조선시대 때 유능한 문신들을 선발해 일을 잠시 쉬게 하고 책을 읽으며 학문에 전념하게 한 인재 양성책이다. 요즘 교수들에게 주어진 안식년과 비슷한 제도라고 하겠다. ‘독서당계회도’는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연간에 제작된 그림으로 16세기 한강변의 두모포(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의 실경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지금도 서울 용산구 한남교차로에서 성동구 응봉사거리까지의 도로를 ‘독서당로’로 부른다. 그림에는 관복을 입은 계원들이 두모포와 접한 한강에서 응봉을 배경으로 뱃놀이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독서당계회도’ 부분
‘독서당계회도’는 당시 문인들의 계모임을 묘사한 계회도의 원칙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그림은 상단·중단·하단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에는 계모임의 제목을 적었고 중단에는 당시 계모임이 이뤄졌던 장소와 풍경을 그렸다. 하단에는 참석자 12명의 이름과 호, 본관과 생년, 사가독서한 시기와 과거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의 인적사항, 즉 좌목(서열)을 적었다. 그들 모두 20~30대의 젊은 관료들로 주세붕, 송인수, 송순 등 낯익은 이름들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처럼 나이 많은 박사는 연구교수에 지원해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나이, 이름, 학교 등 모든 인적사항을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지원서를 심사했기에 나한테까지 기회가 주어졌다. 이 그림은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서 2022년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작품이다.
독서당은 미래가 창창한 유능한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독서를 하게 하는 제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야장천 놀게 놔두지는 않았다. 독서당 자체가 국가에서 설치한 관아였다. 국가의 세금으로 주는 휴가인 만큼 밥값은 하는 게 당연했다. ‘휴가받은’ 관원들은 날마다 출근하듯 독서당에 가서 독서를 했고 매번 시나 글을 지어야만 했으며 한 달에 세 차례씩 등급을 매겼다. 연구교수들도 1년에 한 편씩 등재지에 논문을 실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독서당계회도’와 필자 사이에는 490여 년이라는 시간 차가 존재하지만 국가의 지원으로 학문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듯 그림 한 점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제도와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림 감상은 유장한 역사공부이고 삶의 확인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