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우리 집 닭들의 운명은? 직접 낳은 토종닭 알을 먹어보겠다고 시작한 닭 기르기. 지인이 준 중병아리 6마리의 암수를 구별 할 수 없었는데 하루하루 크면서 보니 암탉 3마리에 장닭 3마리다. 사람들은 장닭 성화에 암탉들이 못 견딘다고 이구동성이다. 장닭 한마리가 암탉 20마리를 거느린다는데 암탉 3마리는 괴로워서 못산단다. 그 놈의 장닭 정력도 쎄네~ㅎㅎ
나는 얼마 못가서 장닭 두 마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했다. 남편은 집에 기르는 닭은 절대로 못 잡는다고 그냥 두란다. 그냥 두니 암탉들의 등허리가 벗겨지고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생각다 못해 동네 쥐띠 동갑내기 이웃에게 우리 집에서 닭백숙을 끓여서 한 턱 쏠테니 장닭 두 마리를 잡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좋단다.
눈엣가시 같던 장닭 3마리 중 한마리만 남겨 놓으니 닭들도 오순도순 평화로워 보이고 닭 4마리가 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메추리 알만한 달걀을 하루 3개씩 낳아주니 꺼내 오는 그 기쁨이란...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 집 밥상에 단백질 공급을 확실하게 해주니 닭 4마리가 예쁘기만 하다.(그때 까진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닭이 자기가 낳은 알을 깨 먹는게 아닌가. 덩치가 제일 작은 암탉과 장닭이 알을 깨먹고 내려온다. 닭이 배가 고프면 자기 알을 깨 먹을수도 있다고 해서, 대형 사료통과 물통을 사다놓고 며칠 먹을 수 있는 양을 줘도 여전하다.
달걀을 가지러 가면 껍질만 남겨두고 속을 파먹은 흔적에 속이 상했다. 그래서 촉을 곤두세우고 닭이 꼬꼬댁하면 불이 나게 닭장으로 쫒아가서 어쩌다가 한 알 건졌다. 그러나 그 타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달 이상을 닭장에 신경 썼지만 대부분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비싼 사료 먹여가며 닭은 기르지만 달걀은 사먹는 처지가 됐다. 갓 낳은 싱싱한 달걀구경을 못하니 약이 오르고 2층 닭장 문만 열면 분통이 터진다. 하루는 회초리를 들고 닭을 보고 "너 달걀 깨먹으면 나한테 죽는다." 하며 겁을 주니 닭 4마리가 기절초풍하고 닭장을 날아다닌다. 한대 때리지도 못하고 닭장만 전쟁터가 됐다. 그렇게 엄포를 주고 했지만 닭은 여전히 알을 깨먹는다.
달걀 구경도 못하며 야채 뜯어 먹이고 비싼 사료 주고 하니 그것도 스트레스다. 남편에게 닭이 알을 다 깨먹어 속상해서 못살겠다고 하니 그냥 화초라고 생각하고 기르란다. 말이 화초지 번번이 달걀의 빈 껍질만 보는 나는 열이 오른다. 이후엔 닭 기르기에 흥미를 잃고 닭 없앨 궁리만 했다.
닭고기 좋아하는 막내네 식구가 왔을 때 잡아 주어야겠다고 하니 남편은 딴청만 피운다. 막내 사위한테 닭 잡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못잡는다고 기절할 만큼 놀란다. 막내 딸은 닭고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집에 기르던 닭은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자식들이 왔다가도 해결이 안 되고 그렇게 인도적인(?) 남편에게 당신도 한번 당해봐라 하고 직접 닭장에 가서 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닭이 쪼아먹고 남은 빈껍질만 보고 오기를 한 열흘 하더니 자기도 열이 나는지 이제는 내 마음대로 알아서 하라고한다. 매일 닭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료는 다 먹어가는데 다시 구입하기도 그렇고, 마침 2박 하는 단골손님이 왔는데 시중에 2만5000원, 3만원하는 토종닭을 2만원에 직접 잡아서 백숙해 먹으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황기, 엄나무, 오가피, 약재 장작까지 제공해 준다니 좋단다.
닭이 우리 집에 온 뒤 미운 정 고은 정 나눈 지도 1년이다. 측은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앓던 이가 빠진 것 처럼 시원했다. 인간같은 냉혈동물도 없을 것이다.
단골 손님은 닭을 잡아 가마솥에 두 시간 이상 푹 삶더니 나보고 같이 먹자고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튿날 음식물 찌꺼기통을 보니 닭이 반은 버려져 있었다. 낮에 삼겹살을 너무 많이 구워먹어서 그런가 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닭을 두 시간 이상 삶고 압력솥에 고아도 봤지만 너무 질겨서 반은 버렸단다.
양심이란 놈이 스멀 스멀 올라온다. 닭값을 절반 돌려 주어야 하나 갈등했다. 공짜로 얻어 키운 닭이지만 그동안 투자한 금액이 얼만데 눈 질끈 감고 다 받았다. 아직까지 닭장을 쳐다보면 허전함 보다는 시원한 맘이 든다. 인간은 자기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서슴없이 이별을 고하고도 아무렇지 않을수 있나 보다.
문득 신선한 토종닭 알을 먹어보겠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병아리들과 만났던 첫날이 생각났다. 병아리를 구해준 지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세상 일은 내 맘처럼 쉽지 않다. 닭을 길러서 신선란 하나 받아 먹는 일 조차 말이다. 문득 내가 너무 정이 없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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