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가장 잘못 이해하는 단어가 믿음이란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의 의미를 바라는 대상의 확신이나 마음 속 신념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믿음이란 단어를 피스티스란 그리스어로 나타냅니다.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신의 약속을 듣고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나 이해”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의미는 믿음은 내가 소망하거나 바라는 것을 갖는 확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약속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11장17절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이 스스로 자기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는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믿음의 정의입니다.
성경에서는 우선 하나님께서 그 분이 먼저 그의 사람들에게 오셔서 확실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들은 그의 백성이 언약의 성취를 확신하는 것을 믿음의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방주를 산 위에 만들라는 명령에서 시작되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가고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고 생겼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의 믿음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께서 많은 구약의 약속의 징표를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인류를 구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많은 선지자에게 약속하셨습니다.(이사야 59:20, 21, 27:9)
그 메시야이신 예수는 그의 메시야 속성을 말씀과 기적과 삶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이적을 한 단어로 표현했는데 원어 성경(그리스어)에서는 세 단어로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세레미온, 테라스, 두나미스가 바로 이 권응과 이적을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에서 예수께서 “믿음 없는 자들아” 하고 꾸짖는 말씀은 자기 확신이 없는 자들을 책망하시는게 아닙니다. 이는 주님의 이적행위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위의 이적과 권능을 나타내는 단어인 세레미온, 테라스, 두나미스는 각기 다른 뜻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3:54,)에 사용된 능력이란 의미의 두나미스는 하나님과 함께 한 능력을 나타내는 단어이고, 이적을 나타내는 세메이온이란 단어는 어떠한 목적을 보이기 위한 징조란 의미입니다.
사탄도 사용한다는 이적 (마태 24:24)이란 단어인 테라스는 단순히 놀랄만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적(세메이온)은 그 분이 구약의 모든 말씀이 말한 구원자이신 메시야 예수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신 징표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징표를 보이셔도 그들은 단지 예수의 이적을 놀라움(테라스)정도로 보고 예수를 구원자로 보지 못한 완악함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예수께 병 나음을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을 단순한 기적으로 보지 않고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의 징표로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바라는 소망이 아닌 구원자 예수를 우리가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을 단순히 율법준수(우리가 마치 교회에서 예배보고 봉사하는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로만 알고 있었으나 예수는 우리의 삶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사는 삶을 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8,누가복음6:46-49)
갈라디아서 3:23에서 바울은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믿음의 때란 메시야 예수가 오신다는 언약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언약)을 우선 듣고 그 약속의 신실함에 확증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내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2: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갈라디아서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라고 믿음의 출처를 성령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듣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하나님의 의 (언약된 말씀)에서 믿음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성장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원어에서는 에크 피스티스 에이스 피스티스 (믿음의 시작과 믿음의 끝)라고 믿음의 성장을 표현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믿음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그 언약의 말씀의 신실성은 내 마음속에서 내가 강제적인 심리적 효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심으로 자연스럽게 갖는 것입니다.
말씀의 신실성의 확신은 역시 로마서 6장에 나온 말씀처럼 우리의 삶이 세상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누가 14:27)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절대 순종에서 옵니다.(로마서 6장 16절)
우리가 믿음에 대해 심리적인 효과로 많이 이해하여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환경이 힘들어 지면 신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믿음을 얻는 것을 자기 수양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여 불안함을 심리적 효과로 제거할려고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닙니다.
심지어 많은 기독교 서적에서도, 많은 설교자의 설교에서도 믿음을 긍정적 사고하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절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면 성령님의 도움으로 생깁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10에서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라고,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믿음의 완성에 대한 중요한 요인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을 그냥 믿는 게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을 만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는 거룩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우선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그 분의 신실한 말씀을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출처: 웹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