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에 취한 자갈치 뱃고동
초겨울 늦은 오후, 지하철 1호선 자갈치 역 10번 출구 계단을 오르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언제 내렸는지, 약간의 비가 그친 뒤여서인지 공기는 한결 차가웠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저마다 시장 쪽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시장은 여전히 삶의 활기로 북적였다. 상인들의 정겨운 호객 소리, 코를 찌르는 바다 향, 그리고 간간이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까지. 그 모든 조각이 어우러져 이방인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았다. 마치 바다가 거대한 숨결로 시장을 통째로 불러들이는 듯했다.
시장 한 귀퉁이 길가에 앉아 생선을 다듬는 한 할머니의 손길에 잠시 눈길이 머물렀다. 빨간 고무장갑 너머로 드러난 손등에는 세월이 새긴 굵은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칼질은 투박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바다를 받아내고 자식들을 키워냈을 그 손길에는 묵직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자갈치는 이렇듯 누군가의 뜨거운 생으로 달궈지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그스레한 고무대야 속 문어 한 마리가 사력을 다해 땅바닥으로 탈출하려고 몸을 뒤틀고 있었고, 은빛 갈치들은 판자 위에서 막 바다를 뛰쳐나온 듯 눈부시게 반짝였다. 파닥이는 생선들만큼이나 시장 사람들의 눈빛에도 날것의 활기가 가득했다.
골목 건너편 포장마차에서는 빨간 양념을 한, 곰장어가 거센 불길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화르르 불꽃이 튀어 오를 때마다, 석쇠 앞에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치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작은 환호성이, “야아, 오늘 술맛은 진짜 꿀맛이 데이!”
정겨운 사투리가 섞인 그 웃음과 함성마저 자갈치라는 거대한 풍경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바로 그때, 다시 한번 낮고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장의 소란스러운 소음 속에서도 그 울림만큼은 묘하게 귀를 파고들며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홀린 듯 걸음을 멈추었다.
그 뱃고동 소리는 자갈치의 하루를 위로하듯 저녁노을을 길게 불러들이고 있었다.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시장을 바라보며, 나는 이곳이 결국 저 푸르고 치열한 바다와 영원히 이어져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삶의 터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갈치의 저녁이 붉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