伯夷 叔齊 백이 숙제
ㅡ 고사리(高事理)는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뜻으로 하늘로 뻗어가는 기운의 모습을 하고 있고
손의 모습과 흡사해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백이숙제 사당에는
백세청풍이제지비(百世淸風夷齊之碑)
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백세청풍은 ‘백 세대에 걸쳐 부는 맑은 바람’
이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후세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을 의미한다.
‘맹자’에는 ‘백이·숙제는 성인 중에도 맑은 분
(夷齊聖之淸者)’이라고 기록돼 있다.
1.왕의 장자로 태어나다
백이는 상(은)나라 말기 고죽국의 제7대 군주였던 아미(亞微)의 장자이다. 국성(國姓)은 자(子), 성은 묵태(墨胎), 이름은 윤(允)이며,
자는 공신(公信)이라 했다.
아우로 숙제와 아빙(亞憑)이 있다. 대체로 은나라 말에서 주나라 초기에 생존했던 것으로 본다.
7대 고죽국 군주는 생전에 숙제에게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후계자를 정하기 전에 예법에 따라 장자인 백이가 즉위해야 했다.
왕이 백이를 후계자로 지목하자 백이는
“마땅히 생전 부친의 뜻에 따라 군주 자리를
숙제에게 물려줘야 한다”며 사양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백이의 아우 숙제를
다음 왕으로 삼으려 했다.
숙제는 “내가 군주가 되면 형제의 의리와 예법에 맞지 않는다”하고 거절했고,
백이는 아버지의 유훈이라며 도망쳐버렸다.
동생 숙제도 왕위를 내던지고 도망쳤기에 고죽국 사람들은 둘째아들 아빙을 왕으로 모셨다.
2.수양산에서 세상을 등지다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희창 주 문왕(周文王이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의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희발)이 즉위하여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채
상나라 정벌에 나서고 있었다.
이에 형제는 무왕의 수레를 막고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무왕의 군사들이 형제를 해치려 했으나 강자아(강태공)가 이들이
의인(義人)이라며 막았다.
주 무왕이 결국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치욕이라며 수양산에 은거하며 고비(薇, 산나물의 일종)를 꺾어 먹다가 굶주려 죽었다.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
백이와 숙제의 정절과 가치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조선시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은 그들이 먹었던 고비는 누구 땅에서 난 것이냐며 두 사람의 정절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대체로 두 사람을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로 칭송했다.
죽기 전에 부른 노래 채미가
백이와 숙제가 죽기 전에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를 <채미가> 또는 <백이조(伯夷操)>라 한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를 꺾는 도다.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고도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虞),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버렸으니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5.관련 유적
백이와 숙제가 은거했던 수양산의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섯 설이 있다.
첫째는 요서(遼西) 지방에 위치한 양산(陽山),
둘째는 허난(河南) 언사(偃師)에 위치한 수산(首山), 셋째는 산시(山西) 화순(和順)에
위치한 양구산(陽區山),
넷째는 산시 포반하곡(蒲坂河曲)에 위치한
뇌수산(雷首山) 혹은 수산(首山),
다섯째는 산시(陝西) 기산(岐山) 서쪽에 위치한 수양산(首陽山),
여섯째는 간쑤(甘肅) 농서(隴西)에 위치한
수양산(首陽山) 등이다.
고대 상(商)나라 말~주(周)나라 초
출생-사망 미상
네이브지식인
첫댓글 고사리의 유래를 알고보니
나물의용도에도 어쩜!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부처님초하루제에도 제사에도 생일에도
생활속에 의미있는 날!
챙겨보는 나물의 순위에 꼭들어가는것 같습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들 손으로 참많은 일들을 해냅니다.
고사리같은 아기손부터시작해서 삶의 길을 알아볼수 있는 거칠어진 손 고운손 . . .어쩜 우리들 인생과도 같은 . . .타고남이 거칠어도 마음자리 닦아가듯 고운손으로 다듦어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