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순희 권사님!
뒤늦게 무녀도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의 수필원고를 보냅니다.
긴 문장이어서 자문을 구합니다.
좀 줄여보려고 합니다.
200자 원고지로 약 28매 정도 되는데요
몇 페이지 정도면 적당할른지요.
읽어보시고 메시지 좀 주세요! 샬롬!
무녀도(巫女島) 시간여행 -이관수-
세상에서 어느 누가 지나간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특별한 계기로 아내와 나는 함께 잠시 옛날로 되돌아가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지역들 중에 가장 오래 산 곳이 15년의 세월을 담은 무녀도다.
그 섬은 가장 활동적인 나이에 물과 전기가 없던 시절부터 적응하며 살았던 곳이다.
여러 해 후에 전기가 들어오고 냉장고 티브이 세탁기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직접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담임목사로부터 주일예배의 집례와 설교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는 가겠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다! 라고 믿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무녀도의 고군산중앙교회 교육관에 입실했다.
우리의 사택으로 본 건물을 지을 때가 생각난다.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썰물에 물이 빠진 바다 모래톱에서 모래를 퍼 날랐다.
나갈 때는 보트를 타고 가지만, 돌아올 때는 모래부대에 자리를 양보하고 헤엄쳐서 돌아왔던 추억이 새롭다.
남녀 청년들이 수영대회라도 하듯 바닷물을 가르며 첨벙거렸던 것이다.
연탄가스로 고생하며 살림하던 옛 사택에서 다시 밤을 새우며 회상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정든 교회를 방문하도록 배려한 담임목사와 성도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섬을 떠난 지 사반세기나 되었지만 그 때 그 사람들 중 몇몇은 여전히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주방에 수저가 몇 벌이 있는지 다 안다고 과장표현은 못해도,
특별한 사연은 여전히 기도제목으로 공유하고 있다.
몸은 떠났으나 심정적으로 여전히 섬을 떠나지 못한 이유가 뭘까?
말도교회의 김상남 목사 내외가 찾아와서 잠시 추명순 전도사님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군산군도의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 이렇게
9개 섬의 교회설립에 관한 내력을 말하려면 추전도사를 빼놓을 수 없다.
금식 아닌 굶식을 밥 먹듯 하면서 기도와 전도를 쉬지 않았던 그분의 순교적인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섬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동화작가 유재하 목사는 추 전도사 추모 글에서 백색순교자 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추전도사는 기도의 동지나 다름없는 선유도의 김금순 집사 댁에서 동숙하며 힘을 얻었다고 했다.
때로는 둘이서 함께 다니며 전도했고, 기록엔 없지만,
그들을 받아들인 가정에서 교회가 먼저 시작(가정교회) 되었다고 하겠다.
여러 날 만에 찾은 마을정자에서 몇몇 아낙네들과 시간을 보내며
“내일 또 멀리 다녀올 겁니다.” 라고 했더니 한 아낙이 "잘 놀다 오세요!" 라며 반색한다.
"놀러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갑니다. 목사가 설교하는 건 일하는 거나 다름없지요."
목사가 사례비를 받는다면 정말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감당할 일이다.
기도하며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 조차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설교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설교한 대로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설교자의 설교내용과 실제생활에 괴리(乖離)가 있다면 얼마나 큰 모순(矛盾)이겠는가.
어느 설교자가 교회의 청중들에게 큰 은혜를 끼쳐서 교회가 부흥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교인 하나가 포장마차에 들렸는데, 그 목사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더란다.
당연히 목사에게 항의를 했더니, 목사 왈 "나는 설교로 당신들에게 은혜를 끼쳤고,
교회는 부흥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 라고 했더란다.
결국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한 그 목사가 사임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설교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후영교회에서 대한기독문인회 모임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참석할 수 없다.
만남이란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고, 소통의 귀한 창구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만남이란 것도 위대한 창조주의 섭리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만나야할 사람을 만나보는 일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문인회의 만남과 무녀도의 만남에 경중을 가릴 수 없지만 하나를 택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다.
시공간에 움직일 수 있는 "나" 라는 존재는 유일한 "하나"이고 "한 곳" 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무 것두 몰라! 누구지? 아이구, 사모님! 얘길 하니까 알것네!" H어머니는 94세라고 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행사 때는 빠짐없이 참석했었으니 교인이랄까 아니랄까.
작은 어촌에서 교회를 다니던 아니던 친절하게 지냈던 이들을 만나니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보고 싶던 이들 몇몇은 이 땅을 떠났다는 소식도 듣게 되니 허탈하고 아쉽기 그지없다.
그중 몇 명이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새벽이면 집집마다 돌며 젊은이들을 깨워 새벽기도회를 채웠던 천대자 권사는 만날 수 있으리라.
그분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는데, 성경을 더듬더듬 읽고 흥얼흥얼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을 따라 부르시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근 십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지내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는
"그래도 그이가 없으니 하전하다, 허전하다" 하시던 푸념 아닌 푸념도 털어놓으셨던 분이다.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요양원에 들어갔고, 누구는 아프고, 누구누구는 재혼했고...
오래간만에 정든 섬을 찾아와 보니 이런저런 사연들이 태산처럼 쌓였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려니 해야 할까보다.
고군산중앙교회 초창기 최인식 목사 때부터 교회를 지킨 박경애 권사를 모개미 마을 보건소 앞에서 태워 오가면서
옛날로 다시 돌아가 본다.
그미는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신앙생활을 지속하더니 결국 핍박하던 남편을 교회로 인도했다.
언제던가, 초등학교에서 일한다는 S씨를 제방길에서 만났을 때 멋쩍은 듯 머리를 극적이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군산에 나가면 나도 교회를 다녀요!"
박 권사의 큰아들 송영호는 내가 쓴 글 '무녀도 아이들'의 주인공이다.
보고 싶다며 찾아와 어릴 적 추억을 나누었다.
서문교회(여진헌 목사)에서 섬 아이들을 초청해 여름성경학교를 한 적이 있다.
"서문교회, 기억이 나요!" 어떤 해에는 신광교회(김창배 목사) 초청으로 무녀도와 말도교회 아이들이 함께 서울구경도 했다.
영호가 말을 이었다. "KBS방송국엘 갔는데 강부자 님이 저를 끌어안고 불쌍하다며 막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그 탤런트 강부자 님은 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국회의사당, 63빌딩, 남산타워 등 서울아이들도 못 가본 곳을 다 다녀보았다고도 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고, 결혼해서 남매를 두었다.
3대가 날 보겠다며 숙소인 교회교육관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손자에게 말했다.
"니 아버지가 내가 쓴 글 '무녀도 아이들'의 주인공이란다." "아, 정말요?" 이름이 근혁(21) 이라고 했다. "그럼, 정말이지!"
네 번 째 주일엔 은산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다시 무녀도로 직행했다.
그날은 무녀도의 저녁예배 후, 선유도교회 사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서울신대 '19총동문대회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한 오흥덕 목사와 류순화 사모의 환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나는 누구인가? 설교 중 예화로 사용한 내용이다.나는 이종덕 강태복 님의 아들, 한 아내의 남편, 3남매의 아버지,
2며느리의 시아버지, 5아우들의 형, 1여동생의 오빠, 서문교회 명예목사, 대한기독문인회 회원 등...
이런 식으로 열거해 보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설명되질 않는다. 빠진 게 뭘까?
열거한 모든 것들은 세상에 있는 동안만 설명할 수 있는 내용들이고 다 소멸할 것이 아니던가.
기독교를 알기위해서나 기독교인이 되려면 성경을 다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박사라도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도 있지 않던가.
어떤 이는 어떤 성화(성경그림)를 보고 감동받고,
어떤 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가대의 찬양에 감동받고,
어떤 이는 진실한 기독교인의 언행과 행적을 보고 감동받고,
어떤 이는 전파를 통해서 들은 복음방송으로 감동받고,
어떤 이는 성경 66권 중에서 단지 한 구절을 통해서 감동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요르단 마다바의 노동자인 칼리드는 꿈에 나타난 예수를 보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내게 주신 하나님말씀을 철석같이 믿는다.
"하나님이 세상을(관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1b) 아멘!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지속될 나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무녀도 있을 때 자동차로 교인들을 태우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차를 구입하기도 전에 청주지방으로 이동했다. 단 하루뿐이지만 그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노령에 접어든 신자들을 위해 서두리와 모개미 마을에 차량운행을 하는데 잠시 기사노릇을 해보았다.
"이 목사님 차를 타니 너무 좋네!" 김하숙 집사가 한마디 하며 내렸다.
주말마다 토요일에 내려갔다가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에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경차라고 하는 RAY를 몰고 오가며 공주휴게소와 부여백제휴게소를 이용했다.
다섯 번이나 고군산군도를 드나들면서 옛날을 회상하며 시간여행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초대하고 배려해준 담임목사와 반갑게 맞아준 교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뭐라 표현할 수 있겠나.
주일학생으로 만났던 어린이들은 청년이 되어 마을을 이끌고, 젊은이들은 중장년이 되었다.
이미 새만금 제방과 고군산대교를 건너 육지로 연결되었지만 변신을 계속하는 무녀도!
무녀봉 밑자락에 만들어놓은 저수지 주변은 커다란 수련장이 들어서고,
교회 뒷동산에는 신시도에서 건너오는 케이블카의 종착지가 된다고 했다.
"여보, 하나님께서 이러라고 우리를 오래도록 살게 하시나봐!" "그런가봐!"
우리는 승용차 안에서 마주보고 맞장구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쪼록 무녀도의 고군산중앙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더욱 성장하고 발전해서,
영적선도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觀-
첫댓글 기독문학22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