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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배구선수, 조국과 인연을 끊기까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 堂井 김장수
1985년 12월 9일, 한 아이는 누나와 부모님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 그 이름은 오경태.
그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너는 훌륭한 배구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기구한 운명은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결국 막아버렸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촉망받는 선수였고, 6학년 때는 모교(母校)를 전국 우승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어머니가 유언으로 남긴 말씀은,
“경태야, 이 엄마가 없어도 굳세게 살아야 한다. 배구 열심히 하고…, 아빠 말씀 잘 들어라….
미선이 너는 동생 잘 보살피고….”
이 말씀을 남기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때부터 경태의 인생은 틀어진다.
아빠가 새어머니를 맞이하셨기 때문이다.
새어머니는 경태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 목적으로 아버지한테 시집을 온 것이었다. 아빠가 경태에게,
“경태야, 이 애비는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 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는 게 어때?
배구 안 해도 되니까 부모 말 들어야지.”
하지만 경태는,
“저는 배구선수가 꿈입니다. 제 꿈을 꺾지 마세요."
새어머니가 한 마디 한다.
“경태 너도 좋은 대학에 가서 부모 호강시켜 드리고 미선이도 시집을 보내야지.
배구는 대학 나와서 해도 늦지 않아.”
경태는 요지부동이다. 자신의 인생의 전부인 배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배구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어요.”
“니는 결국 애비 에미 말 한번 더럽게 안 듣는구나. 미선이 누나랑 이 집에서 나갓!”
그렇게 불호령이 떨어지고, 경태는 미선이 누나랑 짐을 싸들고 나가 버린다.
결국 작은아버지 댁에 찾아갔는데, 작은아버지 내외분은 반색을 하며 반겨주신다.
“아이구, 경태 아니냐? 미선이도 왔네! 무슨 일이냐?”
“아빠랑 새어머니가 배구 그만두라고 해서 나왔어요.”
“몹쓸 인간들 때문에 경태가 고생하네. 얼른 들어와라. 짐 내려놓고 밥 먹어야지.”
그렇게 경태는 새 중학교 배구부에서 활약했고, 고등학생 때는 배구 국가대표가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대성 유니콘스에서 주전 프로선수로 활약, 데뷔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의 간섭이 또 시작된다.
"경태야, 오랜만이구나. 애비다.“
“무슨 일이세요?”
“네 동생들 학비로 쓰게 네 월급 모두 주지 않으련?”
“저도 용돈벌이가 있거든요. 적당히 드릴게요.”
“부모 말도 안 듣는 놈이 무슨 배구선수야! 당장 그만둬!”
그렇게 경태 부친은 전화를 끊어 버린다.
이미 부친과 새어머니는 경태의 꿈을 짓밟기로 작정한 인간들로 전락했고,
경태는 청년가장이 되어 힘들게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경태에게 룸메이트인 성태우 선배가 접근해서는,
“경태야, 이번 경기는 어차피 지는 경기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원금만 5천만 원 줄게.
응? 부탁해. 한번만 우리 바람 들어주렴. 응?”
성태우 선배의 애교 섞인 말투와 만날 돈타령만 해대는 부모님….
이제 오경태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승부조작’의 굴레를 뒤집어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승부조작은 범죄임을 알기에 그는 늘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3년 후, 신일 레이더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경찰이 왔다.
“오경태 씨 맞죠?”
“예. 왜 그러시죠?”
“잠깐 따라오세요. 승부조작 혐의로 체포합니다.”
이제 오경태의 배구 인생은 나락으로 치달았고, 경찰서에서 만난 성태우와 오경태.
“선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저의 배구 인생 끝장낼 생각으로 일을 벌인 거예요?”
“경태야, 미안하다. 사실은 네 부모님이 시켰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예배나 드리러 가자.”
“제 배구인생 끝났는데 그런 얘기가 나와요?”
“네 부모님한테 들으니까, 요즘 교회 가시더라고.
네 부모님께서 네가 예배 열심히 드리고 교회 생활 잘 하면 누명을 벗겨 주신댔어.”
그 뻔뻔스러운 태도! 오경태는 치가 떨린다.
그 동안 믿어왔던 선배와 부모님의 대한 존경과 기대가 이 만남 하나로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선배님 때문이에요. 이제 선배님과 부모, 용서 안 할 거야,”
“용서 안 바란다. 그럼 지옥행이지.”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오경태의 배구인생은 막을 내렸다.
얼마 후 배구연맹에서는 ‘오경태 영구제명’, 성태우 징역 4년, 오경태 징역 2년.
징역을 살면서 조국에 대한 회의와 배구인생의 끝을 장식하는 장면을 회상하면서,
경태는 다시는 한국과 부모님을 용서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잠시 후, 미선이 누나가 면회를 왔다.
“왜 나한테 상의를 하지 않았니? 네가 나하고 상의를 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누나, 미안해.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나봐.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배구 동료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이렇게 된 이상 배구 따위 두 번 다시 하지 말자. 배구 없는 세상에서 새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니?”
“나가면 부모와 담판을 지어야겠어. 자식 인생 망쳐놓고 설치는 부모 따위, 용서할 수 없어.”
그헣게 2년 동안 감옥에서,
경태는 운동과 독서와 외국어 배우기로 한국에 대한 미련과 애정을 하나하나 끊어 나간다.
배구에 대한 미련도 이제는 영원히 버리기로 결심한다.
출소 후, 미선이 누나가 마중을 나왔다.
“경태 왔구나!”
“누나!”
그 동안의 설움이 북받쳐 올라 경태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만다. 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얼마 후 매형이 될 사람인 재 사이판 교포 사업가였다.
“오경태라고 했나?”
“예.”
“경태 자네도 새 삶을 찾을 준비를 해야지. 이제는 배구 없는 세상으로 가지 않겠나?”
잠시 망설인 경태. 하지만 이제 한국에 대한 미련을 끊을 좋은 기회로 알고 대답한다.
“네. 형님을 따라 배구 없는 세상으로 가겠습니다. 가기 전에 부모와 담판을 지어야겠어요.”
한편,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경태의 감옥 수감을 축하하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쳐들어온 경태를 보고 놀란다.
“무, 무슨 일이냐? 경태야?”
“돈 많이 벌어왔니?”
반성도 없이 돈타령만 해대는 부모님, 경태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당신들이 무슨 부모야! 내 배구인생 망쳐놓고 돈을 달라고? 돈 같은 거 없으니까 당신들 각오해!”
“자네 왜 그래? 말로 해결해!”
“경태야, 진정해!”
경태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놔요. 이제는 배구 없는 세상에서 살 생각이야. 부모란 새끼들은 이제 필요 없어!
내 배구인생 망친 인간들이야. 내가 외국에 가더라도 저 지랄할 테고! 저런 새끼들이 무슨 부모야!”
한 맺힌 절규가 동네를 뒤집어 놓는다. 미선이 누나와 매형이 필사적으로 말린다.
이를 지켜보는 동네 사람들도 안타까움 반, 놀라움 반이다.
“경태 참 안됐어요. 부모란 인간들이 경태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으니….”
“천벌을 받을 거여. 저렇게 살고서 천벌 안 받는 인간 봤어?”
동네 사람들도 안타까워하며 한 배구영웅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태는 계속해서 절규한다.
“동네 사람들, 똑똑히 지켜보세요! 저런 새끼들은 부모 자격도 없어!
배구인생 망치려고 성태우 선배를 포섭하고, 교회 안 다닌다고 불이익을 당하게 해 놓고 무슨 부모야!”
곧 경찰이 달려온다. 경태에게 수갑이 또 채워진다. 이 때 경태 부친의 외침.
“저놈 빨리 잡아가세요!”
울부짖는 경태와 안타까워하는 동네 사람들. 그렇게 소란은 끝났다.
얼마 후, 경찰서에서 한 형사가 제안을 한다.
“배구가 그렇게 하고 싶습니까?”
“예. 하지만 이제 미련은 없습니다.”
“배구연맹에서는 영구제명을 시킨 상태라서 다신 배구를 할 수 없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겠습니다.”
“어쩌다가 유명한 배구선수가 이렇게 되었는지…….”
얼마 후, 경태는 결심을 한다.
“사이판으로 이민을 가게 해 주십시오. 제 매형 될 사람이 사이판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기 싫습니다. 누나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이민을 가고 싶습니다.
사이판 섬으로 이민을 가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형사는 결국, 그 부탁을 받아들인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첫째, 다시는 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누님과 매형을 모시고 셋이서 사이판으로 이민을 가되,
다시는 대한민국 땅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 이미 마음은 정했습니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배구를 하지 않을 겁니다.”
얼마 후, 정부에서 회답이 왔다. 사이판 영주권을 가져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조건이 붙었다. 다시는 한국 땅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나의 결혼식은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 때,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인적이 드문 시골로 떠나 소식을 모르는 상태였고,
참석한 사람은 작은아버지 내외분과 사촌들뿐이었고,
배구 관계자 중 유일하게 결혼식을 축하하며 결혼식을 축하한다는 의미의 축의금과
오경태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대성 유니콘스 감독이었다.
대성 유니콘스 감독은 편지에서, ‘배구 없는 세상, 승부조작 없는 세상에 가서 잘 살아라,
다신 한국에 오지 마라’라는 부탁의 말을 전했다.
얼마 후, 경태와 미선이 누나 내외는 사이판으로 떠났다.
경태는 그 후 매형 밑에서 재활용 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그러면서 얼마 후 한 한국 기자를 만나
‘한국과 절교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절연한다.’라는 말을 했다.
얼마 후 한국에서 편지가 왔는데, 한국 국적을 박탈한다는 편지였다.
경태는 ‘차라리 잘 되었다.’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경태는 이후 사이판에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결혼도 하고, 아이 다섯도 낳고,
누나와 매형과 사이좋게 지냈다. 변해버린 경태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1. 아침 7시에 기상
2. 아침 7시 30분에 아침 식사
3. 오전 8시에 출근
4.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재활용 작업
5. 점심 식사
6. 점심 휴식 시간에는 독서와 글쓰기
7. 오후 1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회삿일 하기
8. 저녁 6시 30분에 저녁 식사
9. 휴식, 글쓰기
10. 밤 10시 30분에 취침
경태는 그렇게 배구를 잊어가고 있었고, 시, 소설, 수필, 일기, 극본, 주장 글 등을 쓰며
사이판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렸다.
특히 경태는 소설을 잘 써 훌륭한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국에 없는,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행복을 찾았다. 그런 경태에게 기쁜 소식이 찾아왔는데,
경태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미국을 거쳐 스웨덴에 가서 노벨상을 수령하고 나서,
연설에서 오경태는 이렇게 밝혔다.
“친애하는 세계 국민 여러분, 저 에이브러햄(오경태의 미국 이름)은 배구라는 스포츠에서 실수를 했는데, 배구 없는 세상에서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더군요.
그 때마다 여러 가지 문학 장르를 섭렵하면서 배구라는 것을 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데, 사이판으로 이민을 가자마자 제 발길이 저절로 교회로 인도되더군요.
저를 지금부터는 에이브러햄 오로 불러주십시오. 존경하는 국왕 폐하와 친애하는 세계 국민 여러분,
저는 조국과 인연을 끊기까지, 배구와 인연을 끊기까지 참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준 누님과 매형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신 사이판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는 사이판에서 사이판 문학을 빛내고,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저를 응원해 주십시오.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에이브러햄 경태 오는 사이판을 빛낸 유명한 작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한국 네티즌의 심한 질타를 받았다.
배구가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세계인 앞에서 떠벌리느냐는 둥, 배신자에 전과자가 참 말이 많다는 둥,
경태의 미니 홈피에는 그를 비난하는 한국 네티즌의 질타가 가득 담겼다.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누나가 한 말씀 한다.
“경태야, 이제는 저들 신경 쓰지 마. 너는 조국을 버린 몸이야.”
“나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치?”
“그래. 하지만 한국에는 돌아갈 수 없잖아. 신경 쓰지 말고 애기 엄마랑 밥이나 먹으러 가자.”
경태는 그렇게 한국을 잊어가고 있었지만,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기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에이브러햄 오는 노인이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 병에 걸렸다. 훈장도 몇 개 타고,
이제는 에이브러햄 경태 오를 ‘에이브러햄 1세’라고 부를 만큼 에이브러햄 오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도 세월 앞에서는 병에 걸린 환자였다.
그의 병은 더욱 위독해져 갔지만, 한국에 없는 행복을 찾았기에 마음은 편안했다.
에이브러햄 경태 오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 주시오. 한국에 없는 나의 행복을 찾았으니까.
공원 한 구석에다 묘비 하나만 세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나를 위해주었던 누님과 매형 곁으로,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군요. 장남 사이먼을 후계자로 세웁니다.
주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시고,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 말을 남기고 에이브러햄 경태 오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행복 속에 마감했다. 향년 102세.
그의 유골은 생전 소원대로 태평양에 뿌려졌다. 장남 사이먼 현수 오가 부친의 유골을 태평양에 뿌렸다.
얼마 후, 경태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이브러햄 G. 오, 당신은 조국에서 고통받고 여기로 왔소.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기어이 쟁취한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오.’
-끝-
제가 이러한 소설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하고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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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부모와 조국의 관계를 잘 살펴 용서와 배려 측면을 보강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 사료됩니다.
늘 평안건필하십시오~!
사실 배구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