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作家)로 산다는 것
(시인(時人) 수필가(隨筆家) 소설가(小說家))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서 산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도 지났건만 30도가 넘는 폭염과
한밤중에도 25도가 넘는 열대야가 한창이다.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마스크 쓰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생활로
자리 잡은 지 벌써 반년이 지나 1년이 되어 간다.
숨 막히는 세상에서 산다.
또 웬 장마가 그리 끈질기게 꼬리를 물고 그치지를 않아
결국 이른 봄부터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워오던 고추 등 농작물을
수마가 할퀴어 갔다.
초보 농부는 멧돼지와 장마로 1년 농사를 망치고 망연자실(茫然自失)
할 줄 알았는데, 하룬가 이틀인가 아쉬워하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훌훌 털어 버렸다.
까짓것하고 털어버리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니면 말지 하는 식의 잘못된 사고가 내 몸속에 들어온 것 같아
잠시 움칫 거려본다.
그나저나 올 한 해 동안 평생토록 벼루 던 일들을
뚝딱 해치운 것 같아 한 편으론 시원섭섭하다.
언젠가는 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어 놓았던 수필, 소설 등단을 했다.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만큼은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는데 지금 왠지 밋밋한 느낌이 든다.
좀 더 화려하고 뻑적지근하게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부터 품어왔던 평생 로망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작가라는 명칭으로 불리 우고 그에 해당하는 처세와 삶을 살고 싶은데 말이다.
나를 지금까지 있게 해준 동기가 아주 없진 않았다.
젊은 시절 월간지를 만들던 샘터사에 재직 중이던 큰형님 덕분에
샘터 월간지와 수많은 책들을 손쉽게 구해 읽을 수가 있었다.
신간이 나올 때 마다 형님은 작가의 싸인을 받아 막내 동생에게
가져다주었다.
최인호 선생과 법정스님의 책은 거의 다 샘터사에서 출간했기에 빠트리지 않고
읽었던 거 같다. 그때마다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또 시인 박 영원님의 시집을 접할 때 마다 도전을 받았나 보다.
1964년도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올해 80세가 된 박 영원님은 6촌 형님의 자제니까
나의 조카님이기도 하다.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습에 나도 저래야 되는데 하고... .읍조려 본다.
전 세계에서 작가 등단이라는 제도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있었는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입문하는 등용문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등단 약력이 없으면 정식 문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금 서양은 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추천받는 방식의 등단이 아예 사라져,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 단행본을 출판하면 문인이 되는 방식만 남았다고 한다.
우리 아내 왈 등단하면 변하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망설이다가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항목 중 하나를 이룬 것이라고 궁색한 답변을 했다.
아마도 아내가 묻고 싶은 것은
“글을 쓰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묻고 싶었던 게 아닌지?
“글쎄 베스트셀러 작가는 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는데.”
학창 시절 문예창작을 배워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충동감과 갈증에 허덕이며 버텨온 날들이 있다.
인생 자체가 시가 되고, 수필의 소재가 되고, 소설처럼 살아온 것 같다.
우울을 달고 다니며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우울한 노래만 골라서
부르니 흥을 깬다고 타박도 많이 받았었다.
과거처럼 원고지에 직접 써야만 했다면 아마 나는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니고 볼펜을 잡을 수 있는 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쪽 손 모두 손가락이 굳어가고 있기에 사실상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억지로 안 그런 척 하다가도 볼펜 잡을 일이 있으면 언제부턴가
남들이 볼 수 없는 자리로 옮겨 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고뇌하고 두려워한다.
과연 작가로서의 역량과 자질이 있는 것인가 하고 반문한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소설을 쓸 만큼 관리를 했는지
시를 쓸 때는 시인의 정서와 마음으로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과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달굴 대로 달궈져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시상이 떠오르는 것을, 온갖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야 만이 작품 하나가 탄생 되는 것 같다.
산고의 고통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쉽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언제나 늘 긴장하며 살 때도 잇었다.
소설은 특징 중 하나가 허구를 재미있게 풀어내야 한다.
단순히 사실의 재생이 아니라 산문정신의 토대 위에 있을 법한 일을
그려내는 허구를 사실처럼 그려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방의 대상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장르이다.
또 한 자유롭게 작가의 감정과 세계관을 토로하는 산문이다.
거기에 스릴과 재미가 가미된 플롯으로 짜여 진 허구적인 문학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원고지는 언제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시원하게 넘어가지 아니하고
박혀 있는 가시를 빼내지 못해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없다.
사춘기를 지나며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소설가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소설가를 존경하고 부러워했었다.
김동리, 황순원, 김유정, 이상, 이광수, 박경리, 심훈, ......... 최인호, 한수산
그러면서 소설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날들이 수십 년
나도 모르게 만성적인 열병으로 자리한 채 살며시 다가왔다.
첫줄을 쓰고 더 이상 쓰지 못해 내려놓은 볼펜을 잡고 괴로워했고
수많은 밤들을 하얗게 지새우며 자책감에 눈물 흘려야만 했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내가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때가 되니
소설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추어 본다,
소설이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 사는 모습을 산문형식으로 그려내면 된다는
극히 평범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소설은 바다와 같이 방대한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나
좋은 소재를 구하고 잘 다듬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될까?
시간, 노력 또 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지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작가라는 호칭의 책임감을 걸머지고 가는 길에 걱정도 함께 따라나선다.
가시밭길이 곳곳에 숨어 있겠지만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 보기로 한다.
굿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수필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인 소설가 수필가가 되어 한 편의 멋진 작품들을 갖고 잊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쓴 글을 카페에 올릴 때마다 다시 나는 나를 설득한다.
혹시 오늘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시대정신을 담지 못할지라도
미래의 조금 더 여유롭고 성숙한 나를 만들어 내고
내가 만든 실수는 미래의 내가 잘 수습하게끔 말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써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 나의 숙명(宿命)인 것이다.
나의 오늘까지 책임지어 주시는 주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용기와 자신감을 주신 협회장님 이하 심사위원님들께 진정의 감사를 표 합니다.
또 한 음으로 양으로 나에게 힘을 주는 아내에게
젊은 날부터 꼭 되고 싶었던 소설가가 되었음을 고합니다.
“여보 나 소설가 먹었어. 축하해줘! ”
“글을 쓰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라고는 묻지 말아 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작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기니까.
첫댓글 사진이 예술작품입니다.
순간 포착 아주 잘 하신 작품입니다.
멋진 작품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고 사는 것은 선비입니다.
시도 쓰고 수필 쓰고 소설 쓰고
사진작품 올리면 종합예술인입니다.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시고
멋진 날들 보내세요.
언제나 좋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에 외국생활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들중
하나입니다. 선비는 너무 고독한데 걱정스럽군요. 감사합니다 🙏 💕 😍
저녘 맛있게 드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우리네 인생은 예술의 일부분 이지요. 어떻게 응용을 하느냐에 따라
작가님 좋은작품 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운마음 담아갑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