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건너는
허 열 웅
인류는 수천 년간 교통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다리를 건설했다. 다리는 바다나 강, 냇물을 건너기 위한 건축물이지만 그 보다는 만남과 소통, 그리고 인정人情과 물류物類가 연결되는 통로가 된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충북 진천 농다리를 건너보았다. 충북 지방문화재 28호로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洗錦川에 축조된 돌다리로서 사력암질의 돌을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쌓기 하여 교각이 만들어져 있었다. 교각부터 상판석까지는 붉은 색을 띤 자석을 이용하여 외부 충격에 흔들림이 적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또 한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물리게 하여 쌓았는데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빠른 유속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나더라도 떠내려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그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다리로부터 상류 30~40m가 폭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다리 하류도 마찬가지였다. 지형을 이용한 과학적인 지혜가 유형문화재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천년을 유지해오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쌓은 기술과 주변 환경을 관찰해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다리는 징검다리로 시작하여 외나무다리, 섶다리, 돌다리, 시멘트 다리에 이어 철다리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다리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하고 현존하는 모습과 그 내력을 읽을 수도 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가 있는가 하면, 홀어머니가 강 건너 친구 집에 놀러갈 수 있도록 밤새껏 놓은 효자의 징검다리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개성에 있는 ‘선죽교’는 고려말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철퇴를 맞아 피를 흘린 역사의 다리다. 성종 때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하는 승지로 허종과 그의 아우가 어전회의에서 뽑히자 앞날을 예견하여 다리를 건너가다가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어 그 일을 면하게 되었다. 그 후에 폐비에 관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나 두 형제는 무탈하였다하여 형제 이름을 붙인 다리가 ‘종침琮琛교’다.
삼국지를 읽으면 장비가 적은 숫자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리위에서 긴 창을 들고 크게 위협하여 조조군사를 물리친 다리가 ‘장판교’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계인 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르는 공동경비구역 서쪽에 흐르는 사천에 있다. 1953년 포로송환 당시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몇 년 전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할 때 북쪽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 해협을 연결하여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보스포푸스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는 사람이 건너다니며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는 길목이었다. 금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금문교’를 지나며 태평양의 거센 물결을 바라보았다. 세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다리,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다리가 노을 속에 슬픈 영혼처럼 아득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다리는 이곳과 저곳을 잇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그 형태와 용도에서 멋진 구조물로 만들어져 미적 감각을 나타낸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다리로 꼽히는 건축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면서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다는 점이다. 며칠 전 건넌 진천 농다리는 선조들의 지혜가 차곡차곡 쌓여 천년의 숨결이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었다. 최근에 건너가본 미국의 금문교는 기술과 자본이 조합된 건축물로 건설당시 세계 최강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하였다. 석양에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런던의 타워브리지는 대영제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반포대교는 물을 끌어올려 다리 양쪽에서 뿜어내는 분수가 특징이어서 아름다운 밤의 정경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무대였던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는 르네상스 양식의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 동안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꿈속에 그리던 다리가 실제로 보았을 때 크게 실망을 가져오는 곳도 있다. “미라보 다리아래 센 강은 흐르고/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라는 시가 흐르기 때문에 환상으로 떠올랐던 미라보 다리였다. 영화 ‘퐁 네프 여인들’로 잘 알려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퐁 네프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리의 모양도 평범했지만 세느강 역시 상상했던 것 보다 폭도 좁고 수량도 적어 한강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 되는 작은 강이었기에 나의 기대가 함께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다리는 육지와 육지, 섬과 섬,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도 있다. 친한 사이가 아닌 사람을 꼭 만나야할 경우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또 서로 이해가 엇갈린 사람 사이에서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여주며 중요한 다리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다리는 이동의 수단보다는 정신적인 연결로 이어질 때 더 빛을 발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정치적 이념과 세대차이의 꽉 막힌 통로의 다리가 넓혀지고, 갖은자와 가난한자의 인정의 다리가 많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교통의 편리를 위한 다리보다는 사랑과 정이 흐르는 교감交感의 다리가 더 많이 연결되기를 기원해본다. 허술한 듯 보이지만 지혜로 쌓고 연결하여 천 년을 지켜온 진천의 농다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