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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예단포항에서 만난 사람들
인천대교를 지나 북쪽 바다 끝으로 가면 예단포항이 나온다. 입구에는 아치형 간판이 열렬하게 환호하듯 맞아준다. 횟집이나 기타의 가게가 ㄱ자로 배열되어 있고 너른 주차장 마당을 지나 바닷가 쪽에는 파랑과 분홍색으로 화장을 한 등대 모형이 우뚝 서 있다. 등대 안에는 화장실과 수협 입출금기(ATM)가 있고 그 옆에 난 길로 가면 선착장이 길게 뻗어 있다.
잘록한 장구처럼 생겼다는 무인도인 장고도가 바다 한가운데에 외로이 앉아 예단포항을 사모하듯 바라보고 있다. 썰물 때 보면 손에 잡힐 듯 금방이라도 갈 수 있어 보인다.
▲ 인천대교를 지나 북쪽 바다 끝으로 가면 예단포항이 나온다. 입구에는 아치형 간판이 열렬하게 환호하듯 맞아준다. 사진은 예단포항 전경.
▲ 예단포 항구에 들어서면 예단포 회센터가 눈에 띈다.
옷과 신발에 갯벌의 진흙을 잔뜩 묻히고 끌차에 통을 싣고 오는 어설퍼 보이는 어부가 보여 몇 마디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미혼의 박규철(42) 씨를 보고 이 세상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처럼 여러 가지 모형이 있듯 사람들도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부가 아닌 고척고등학교 일본어 시간 강사로 횟집에서 30만 원에 산 물고기를 방생하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해서 감동했다.
“돈은 잠시 인연을 따라가는 것이라 복이 없으면 번 돈도 지킬 수 없습니다.”
박씨는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데 업장(業障)을 소멸하려고 불교에 의지하여 횟집에서 산 농어, 우럭, 가자미 등을 이번 바다에 방생했다. 그가 살려준 우럭과 가자미가 갯골을 따라 힘찬 연어들처럼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 여러 형태의 생각과 삶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이곳에서 도보로 여행을 한다는 김포에 사는 이도훈(64) 씨를 만났다. 예단포는 집에서 가깝고 편리해서라며 풍경 사진을 찍으러 자주 온다.
“못생긴 얼굴을 찍어 뭐하게요?”
반문하는 웃음 속에는 지난날 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이음길을 하루 30km씩 걸어서 12박 13일에 걸려 다녀왔다는 강인함 대신에 인자한 미소가 보인다.
서울 반포동에서 왔다는 고인수(66) 씨는 살아 움직이는 우럭과 가자미를 보고 방생한 줄은 모르고 무척 신기하다며 좋아한다. 갯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잡아 오고 싶은 모양이다.
“부부인가요?”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여성에 대해 묻자
“아니요. 오늘 여기 와서 처음 만났어요. 하하~”
진한 농담을 하여 한바탕 웃었다. 부부가 주로 서해가 좋아서 을왕리나 무의도 등에 자주 간다고 알려준다.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로 예단포에는 처음 왔는데 산책로는 걷기 좋지만 짧은 편이고 젊은이들을 오게 하려면 근사한 카페가 있거나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야 한다며 오래 머무르기에는 좀 부족해 보인다는 고언을 해준다.
▲ 조진만 생가터 정자. 우리나라 제2대 대법원장을 했다는 조진만 생가터에 정자가 위풍당당 서 있다.
▲ 예단포 둘레길은 해안으로 걷는 길이 정말 예쁘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회센터 옆으로 계단이 보여 올라가니 예단포 둘레길로 미단시티 공원이다. 우리나라 제2대 대법원장을 했다는 조진만 생가터에 정자가 위풍당당 서 있다. 그 시절 영종도는 다리가 연결되지 않아 배를 타야만 나올 수 있는 오지였기에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다. 요즘은 부모나 조부모의 재력, 또는 학벌이 좋을수록 자녀들도 좋은 대학에 간다니 개천에서 용 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해안으로 걷는 길은 정말 예쁘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앞에 신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해변으로 내려가고 싶어진다. 마침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가다가 평촌에서 왔다는 최승애(61), 지미경(53) 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한 동네 헬스장에서 만났다는 강미화(61), 송미경(50) 씨와 네 명이 모임으로 영종도 호텔에 묵기 위해 왔다가 최승애 씨의 추천으로 예단포에 왔는데 제주 올레길처럼 예쁘다고 방방 튀어 오르며 좋아한다.
그녀들의 환한 미소와 웃음소리는 재잘재잘 소풍 나온 병아리들처럼 싱그럽다.
송미경 씨는
“이곳은 제주 뺨치게 예뻐요.”
를 연발했고 강미화 씨는
“나이 먹으니 남편이나 자식들도 이제 안 놀아줘서 마음 맞는 헬스장 멤버와 이리 오니 참 좋네요.”
소녀처럼 해맑은 모습을 한 그녀들은 물이 차면 바다가 더 멋지다며 다음에 봄, 여름에 초록으로 싱그러울 때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 예단포 둘레길
▲ 평촌에서 왔다는 최승애,강미화,지미경,송미경 씨. 이들은 헬스장 멤버다.
경사가 진 바위는 돌계단처럼 무늬가 주르륵 나 있어 매우 신비롭다. 해변을 끼고 돌아 나오니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하다. 빈공간을 찾느라 헤매는 차량이 보인다. ‘갯마을’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점심으로 꼬막비빔밥과 영양굴솥밥을 시켰다. 예전에 왔을 때도 음식이 맛있었다. 아가씨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사장을 엄마라고 부르던 것이 생각났는데 오늘도 여전히 모녀가 분주하게 일한다. 김경순(59) 씨는 순박한 모습으로 딸은 주말에만 나와서 도와준다고 한다.
▲ 예단포 해안
주로 점심 장사만 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식당을 쉬기도 했다며 낙지와 소라가 들어간 비빔밥은 예단포에서 잡힌 것만을 사용하여 안 잡힌 날에는 그 메뉴를 할 수 없다고 밝힌다. 깔끔한 반찬에 맛이 좋다. 가격도 저렴해서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어촌계에서 계원들에게 13년 6개월 동안 땅은 무료이고 건축비만 내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이다.
가마솥밥이 뜸을 들이느라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동안 어떤 손님이 반찬을 다 먹어버렸다고 말하자 사장은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무료해서 반찬을 다 드시니 딸에게 천천히 내라고 했거늘~ 하하~ 농담이에요.”
손님도 사장도 웃는다.
“어머, 그래도 어머니 도와주는 따님이 참 효녀네요.”
하자
“에구, 공부만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을 토로하자 이 말에 옆에서
“공부가 다는 아니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김장하는데 통만 들어달라고 부탁해도 놀러 가기로 했다며 도망가더라고요.”
손님과 사장이 모두 입을 모아 공부가 다가 아님을 인정하는 한 마디씩을 나누었다.
▲ 김경순 ‘갯마을’ 사장
▲ ‘갯마을’식당의 음식
갯마을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식들 이야기도 터놓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다. 고구마, 검정콩, 대추, 당근, 옥수수 등이 굴과 함께 익어 나온 구수한 밥은 어찌나 맛있던지 기자는 굴을 좋아하지 않지만 먹고 감탄을 쏟아냈다. 장사에도 정성과 인정, 양심이 들어가면 맛이 난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곳을 다시 찾을 날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련다.
예단포는 영종도 안에 있는 작은 항구로 밀물일 때는 장고도가 물에 동동 떠 있는 형국을 볼 수 있다. 가끔 많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배가 선착장에 닿으면 관광객들은 눈의 호사를 누리며 바다 경치와 함께 덤으로 파닥이는 물고기를 구경하며 즐거워한다.
글·사진 현성자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