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사단 창원훈련소(2)
훈련소 내무반은 관물정돈, 총기수입이 고통스럽고, 밖에 나가면 구보와 군가 복창이 고달프다. 연병장에선 엠원 16 개 동작 우로어깨총, 좌로어깨총, PRI, 총검술 등으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종일 황토 바닥에 늬웠다 일어났다 시켰다. 집에선 이불 한번 제대로 개지않던 자식들이다. 그들한테 자고 일어난 모포를 두부처럼 반듯하게 만들라고 하고 제대로 못하면 빳따를 친다. 하루 종일 황토밭에서 들고 다닌 총기는 왜 밤마다 분해해서 기름 치고 수입하나? 그건 시지프 신화 같다. 신화 속 시지프는 죄를 지어 저승에서 거대한 바위를 언덕으로 굴려올리는 임무를 맡았다. 바위는 언덕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저절로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시지프는 헛된 일을 해야하는 죄수였고, 끝낼 수 없는 일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39 사단 훈령병도 시지프 같다. 밤마다 총기를 분해해서 수입해놓으면 이튿날 다시 황토 먼지로 더럽혔다.
다행히 나는 고등학교 육상 선수에다 대학교 미식축구 선수였다. PRI나 구보같은 육체적 고통이야 시시했다. 실존주의 소설에서처럼 오히려 훈련과 기압이 더 심했으면 싶었다. 알제리 외인부대 같이 살벌하면 싶었다. 그러나 훈련 못견디고 탈영한 병사도 있다. 동아대 대학원 다닌다고 징집을 2 년 연기하다 온 친구다. 다른 사람보다 나이 두 살 많고 기혼자인 그는 늙어보이고 동작이 굼떴다. PRI 때 조교들이 단골로 불러내어 틀린 동작 반복시키고 기압주던 고문관이다. 그는 자주 모욕을 당하자 달도 없는 밤 철조망을 넘어 탈영했다. 12월 추수 끝난 들판을 무작정 달리다가 사방 5미터 분뇨통에 ‘풍덩 ’ 빠져버렸다. 똥통은 겉에 풀이 자라 평지 같지만 밑은 오줌이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똥물에 빠지자 그는 사람 살리라는 소릴 쳤고, 초병이 그를 건져왔다. 그는 감방에 보내졌다 .
나는 훈련소에서 그보다 심각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1963년도 대한민국 훈련소 급식 제도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배식되는 식사량이 절대 부족했다. 영외거주 직업 하사관이 쌀과 부식을 집으로 빼돌린다는 설이 있었다. 나는 인간의 성욕보다도 더 원초적 욕망이라는 식욕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거기서 실감했다. 배고품이 얼마나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것인가도 깨달았다.
‘전달! 각 내무반 사역병 5명 선착순으로 식당으로 집합!’
전달 사항은 일, 이, 삼, 사, 오 내무반에서 복창되고, 각 내무반 1 분대가 나가서, 6십명 분 국과 밥이 든 알미늄 양식기 두 개 가득 채워온다. 밥은 반 이상 보리, 국은 시래기 몇 점 뜨있고, 반찬은 설익어 맵기만한 김치 두쪽이다. 각자 침상에 식기와 수저 놓고 일렬로 앉으면, 줄 맞지않는다고 우선 두어명 이마빡 쥐어박고,
‘지금부터 식사를 실시한다. 실시!’
식사 지시 내린다. 그러나 훈련병이 숟갈을 들면,
‘동작 그만, 복창! 복창이 없다. 다시 실시!’
그러면 ‘실시!’ 복창 하고 숟갈 드는데,
‘삼분대 동작 그만! 방금 옆으로 움직인 놈 누구야? 너 말고 그 옆 놈. 침상 아래로 내려와.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쪼그려 뛰기 스므번 실시한다. 실시!’
이런 요식행위를 한 후 급식이 시작된다. 그런데 밥이란게 첫 숟갈을 떠보니 냄새가 돼지 죽통에서 나는 냄새 비슷하다. 도저히 고약해서 먹을 수 없다. 나는 군에 오기 전에는 식욕이 좋아 돌도 꼭꼭 씹어 소화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훈련소 짬빵은 먹을 수 없다. 그래 그 비위 상하는 음식을 수돗가 짬빵통에 버렸는데, 거기서 그걸 나꿔채가는 고참들을 보았다. 그들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약싹 빠르게 신병 짬빵을 뺏다시피 제 식기에 퍼담아갔다. 참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다. 거지도 상거지가 없다. 군에 오면 저렇게 되나? 그들은 먹는 것이 우선이다. 자존심이 없다. 생존 욕구가 최우선이다 . 그들은 살아남는게 중요하고 , 체면 같은 게 없다. 더럽고 비열하고 불쌍했다.
적자생존이라 한다. 그런데 2주 지나자 나도 그렇게 되고말았다. 나는 미식축구 선수다. 2주 후부터 짬빵통 근처서 물총새처럼 재빠르게 신병 밥을 나꿔채곤 했다 . 곰처럼 생긴 동명이도 유도 초단이다. 동작 빠르다. 둘은 남을 밀치고 짬빵 배불리 먹은 후, 웃으며 화랑담배 연기 공중에 내품으며,
‘국가가 입혀주고 재워주고 밥 주고 피우라고 담배까지 주지, 숭악한 촌놈들이 장기하사 말뚝 박고 잘난체 하는 꼴 봐라. 눈꼴 시럽다.’
애꿎은 ST 하사 욕하고 있었다. 냄새나는 짬빵도 그때 쯤은 없어서 못먹었다. 혹시 안면 있는 훈병이 PX 들어가면 염치없이 따라 들어간다. 기어코 빵쪼가리 한입이라도 얻어 입에 넣을만치 우린 치사해져 있었다. 군인이 인간인가? 인간 아니다. 군인은 군인이었다. 내가 건강한 청년에서 배고픈 짐승이 되었던 그때, 내 고등학교 동기들은 한참 학원 등록하고 열올리는 재수생이거나, 갓 대학 입학한 프레시맨 이었다. 그 해 진고는 흉작이어서 S 대 K 대 합격한 사람 겨우 열 명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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