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달궈진 기온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폭염 주의보가 메시지로 날아든다. 며칠 전 팔순 넘으신 아버지 발가락 치료를 받기 위하여 병원 방향 버스를 기다리다가 정류장에서 쓰러지셨다. 어머니와 통화를 해보니 새벽 시원할 때 고추 따서 씻어 건조기에 넣고 오전에 병원을 가시다가 쓰러지셨다 하시니 아마 날은 덥고 아침 일하고 지쳐서 탈진 하시듯 하시다. 정읍 시골이라 어머니는 전주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해 여동생이 정읍 119에 신고하여 다행히 아버지를 구급차로 이송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패혈증 증세와 양쪽 엄지발가락이 퉁퉁 부어 있어서 엑스레이를 찍어 본 후 결과를 보자고 한다. 아버지는 당뇨병을 앓고 있어 상처가 나면 치료하기 힘든 상태에 있다. 사실인즉 엄지발가락이 피가 통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께서 가끔 쑥뜸을 놓아서 그곳에 염증이 생겼다. 몇 년 동안 치료를 했으나 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발을 자주 마음대로 손대는 바람에 낫질 않고 덧나고 된 거다.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예전에 아버지는 우체국에서 우편집배원으로 근무하셨다. 임시 직원이다 보니 봉급은 정식 직원보다 적은 봉급에 불과했다. 월급을 타면 노란 월급봉투를 마루에 던져 버리고 우체국 다니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버럭 화를 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잘 다독이시고 마음을 안정시켜 우체국 근무를 정년까지 마치게 하셨다. 지금은 우편배달을 오토바이로 하지만 옛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하셨다. 시골길은 험한 산길이라 걸어야 할 곳이 태반이었다. 여름에는 비와 땀으로 신발이 다 젖고 겨울에는 폭설에 신발이 꽁꽁 언 상태로 우편배달을 하셨다. 퇴직 후는 발가락이 굳고 피가 통하지 않는 직업병으로 고생하신다. 이 굳은 발로 우리 오 남매를 키우고 대학 교육까지 마치게 하셨다. 아버지는 외아들 독자다 학교는 삼 년 밖에 다닌 적 없으신 한글과 한문만 조금 아시는 정도다. 당신의 삶과 같은 열악한 환경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교육열이 남다르신 아버지. 나는 지금 병원에서 아버지의 엄지발가락을 들여보고 있다. 발가락이 부어 있어 의사의 소견에 따라서 자를 수도 있다고 병상 설명을 들었다. 퉁퉁 부어 있는 엄지발가락을 보니 아버지 과거의 힘들었던 삶을 말해 주는 것 같아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다. 오 남매의 등짐을 다지신 가장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엄지발가락이 굳어 피가 통하지 않았을 정도의 힘겨웠을 생각하니 우리는 자신만을 생각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았는가 하는 죄스러운 마음이 가슴을 억누른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는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에 쇠약하신 모습이다. 아버지라는 무게 속에서 아버지는 사라지고 부은 엄지발가락이 산처럼 보여 눈앞을 흐리게 하니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 없다.